지난 여름방학 중 상당한 시간을 홍대 아마추어 관현악단의 연주회를 위한 리허설에 투자했다. 그렇게 돼서 방학 동안 알바라도 하려던 계획도 접어야 했고, 학기 중에도 여전히 돈 걱정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해도, 가끔 배춧잎이나 낙엽이 지갑에서 발견될 때면 가끔은 입과 위장에 '호사스런 관용' 을 베풀어줘야 겠다는 식으로 생각을 하고 그걸 실천에 옮겼던 때가 몇 번 있었다. 그 장소는 연습 장소인 홍대 캠퍼스의 으리으리한 개선문풍 정문 건물에 위치한 '자르디노' 라는 곳이었고.
'자르디노' 는 학생식당이라고 보기는 힘든 것 같지만, 엄연히 홍대 건물 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교외 음식점이라고 부르기도 좀 애매한 위치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홍대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은 한 호텔이 홍대와 일종의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고 입점시킨 펍 레스토랑이라고 하는데, 물론 학생식당의 저렴함에는 확실히 뒤지지만 그렇다고 홍대 주변의 음식점과 비교해 보면 그렇게 미칠듯이 비싼 음식값을 과시하는 곳도 아니었다.
대충 보니 그 호텔의 한식당과 양식당, 중식당의 메뉴 중 손이 좀 덜 가고 대중적인 메뉴를 골라서 축약시켜놓은 형태였는데, 들어가기 전에 취급하는 메뉴들의 플라스틱 모형이 있어서 그걸 보고 뭘 먹을지 결정하면 되는 식으로 디스플레이되어 있었다. 간혹 새로운 메뉴가 추가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그 디스플레이에 나온 메뉴는 사시사철 계속 서비스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메뉴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기 때문에, 카운터에서 번호와 수량을 이야기하고 돈을 지불하면 영수증과 식권 역할을 하는 작은 종이 두 장이 나온다. 영수증을 보면 메뉴 가격과 함께 일종의 봉사료 혹은 부가가치세가 같이 계산되어 나오는데, 디스플레이와 메뉴판에 적힌 가격에는 지불하는 모든 가격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별도로 팁 같은 것을 줄 필요도 없다. 추가되는 비용은 대개 메뉴당 500원이었던 것 같다.
항상 돈까스와 오무라이스 두 가지 분야에서 군침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터라, 소위 '양식' 계열 메뉴 모음인 '헬시파티오' 만을 집중 공략했다. 우선 첫 번째로 먹어본 메뉴는 일석이조 식의 컨셉이었던 돈까스 오무라이스(5500\).
오무토 토마토나 포무노키 같은 전문점에 가보질 못해서 이게 정말 진짜 오무라이스의 진수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 비싸지는 않은 중가대 식사로는 꽤 적절한 맛과 양이었고. 헬시파티오 메뉴에는 거의 대부분 위의 셋팅대로 수프와 피클이 같이 서빙된다.
두 번째로 먹었던 것도 역시 오무라이스. 해산물 토마토소스 오무라이스(5500\)다. 메뉴 이름 그대로 오무라이스와 함께 토마토 소스에 볶아 조린 해물과 야채가 같이 나오는데, 다만 디스플레이와 달리 홍합은 없었다. 카운터에 가서 보니 홍합 대신 오징어가 증량되었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봤는데, 조금 아쉽기는 했어도 맛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다만 같이 딸려나온 수프가 심각한 노란색이어서 '이거 설마 단호박 수프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미심쩍은 기분을 좀 밀어내고 한숟갈 떠먹어 보니 달달했다. '진짜 단호박 수프네' 라고 판단했지만, 그래도 맛 자체가 호박죽 삘로 괴이하지는 않아서 그냥 다 먹었다.
세 번째 가서 주문했던 훈제치킨 오무라이스(5500\). 이것 역시 솔직한 메뉴명 답게 오무라이스에 훈제 닭다리 한 조각이 곁들여진 것이었다. 이번에도 수프는 역시 단호박 수프였고. 다만 치킨의 경우 '들고 뜯어야 제맛' 이었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어서 포크로 정말 어렵게 발려먹었다(뼈붙은 고기는 손에 집어들고 살이며 연골, 힘줄 등을 싹싹 발려먹는게 거의 본능이 되어 있다. 그래서 갈비 먹으러 가면 그 뼈뜯는 집착 때문에 많이 못먹는다고들 한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는 맨 마지막으로 먹어본 독일식 소시지 함박스테이크(6000\). 이것 역시 메뉴 이름 그대로였는데, 밥이 적게 나오더라도-실제로 진짜 조금 나온다-본 메뉴를 좀 제대로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주문했다.
다만 소시지는 디스플레이에 나온 것과 달리 숏다리였고, 함박스테이크도 확실히 작았다. 이건 진짜 양으로 따져 먹기에는 적었는데, 다행히 먹을 때가 그렇게 배가 고프지는 않던 애매한 시간이었고. 맛은 함박스테이크에서 가끔 질긴 부분이 나온 것을 빼면 대체로 괜찮았다.
헬시파티오에는 이외에도 4500~5000원 선의 스파게티도 있고, 아직 먹어보지 못한 5800원짜리 오무라이스도 두 종류 있다. 큰 구분의 메뉴는 헬시파티오 외에 동서양 퓨전요리만 모은 '퓨전 왕후', 한식 메뉴만 분류한 '웰빙이원' 두 가지가 더 있고. 그 외에도 카운터 바로 뒷쪽에는 커피나 여러 음료류를 테이크 아웃할 수 있는 코너도 있다.
그리고 자르디노는 아니지만, 홍대 쪽에는 와플 매니아라면 아마 한 번쯤 들어보거나 사먹어봤을 가게도 있다. 홍대 정문에서 좌측에 있는 놀이터 축대에 자리잡은 와플 가게인데, 겉보기에는 허름한 노점이지만 갈 때마다 줄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다. 그냥 크림과 사과잼을 발라주는 일반 와플과 다섯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스쿱으로 떠서 끼워주는 아이스 와플 두 가지가 있는데, 가격은 모두 600원.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아이스와플을 청해서 먹어봤다. 다만 하도 사람이 많다 보니 와플은 아직 뜨끈한 상태였고, 허겁지겁 먹어도 아이스크림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무튼 가격 대 성능비로는 이 집을 능가할 와플집은 없을 듯.
공연도 끝났으니 이제 홍대 쪽에 갈 일은 기껏해야 코믹월드 예매권 사러갈 때밖엔 없게 됐는데, 물론 심신은 피곤했지만 리허설 끝나고 꼭 두 캔씩 뽑아다가 집에 모셔놓고 마시던 데자와(500\)나 저 아이스와플을 먹을 기회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못내 아쉽다.
*자르디노의 경우, 홈페이지도 있다. 약도나 사진 첨부된 메뉴, 가게 내부 등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한다면 클릭.
**그리고, 이 글의 내용과 상관없이 별도로 쓴소리 하나. 자르디노 외에도 같은 홍대 홍문관 16층에 '라스텔라' 라고 하는 일종의 자매 격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는데, 얼마 전 이글루에 그 곳의 홍보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블로그가 개설되어 음식 밸리에 당당히 포스팅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엄연히 자신들의 홈페이지도 있는 레스토랑이 왜 굳이 이런 블로그 서비스에 이글루를 개설해 홍보를 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글루의 약관에 보면 분명히 '블로그의 상업적 이용' 에 대해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음에도, 이러한 '노골적인 상업용 이글루' 가 계속 눈에 밟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그 이글루가 없어진 것이 다행인데, 물론 누가 신고를 했는지 아니면 레스토랑 측이 찔려서 스스로 이글루를 접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해당 레스토랑 운영진들의 작태는 마음에 안들지만 어쨌든 예정대로 이 글을 올릴 수 있었다. (만약 그 이글루가 그대로 있었다면, 나는 이 중심 포스팅은 아예 빼버리고 그에 대한 장문의 비판 글을 밸리로 보내버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삭제된', 혹은 '삭제 당한' 상업적 이글루 외에도, 내가 차단 목록에 올린 그러한 의혹의 블로그는 부지기수다. 식당에서부터 부사관 시험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에 걸쳐 암약하고들 있는데, 아마 그 블로그들을 모두 신고해서 없애버린다면 내 차단목록도 한 100개 쯤은 줄어들 텐데. 최근 마이 밸리의 섣부른 개편과 관련해 욕을 많이 먹은 운영진들이지만, 추가로 상업적 용도로 개설하는 이글루들에 대한 강경한 제재 조치를 확실히 취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