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지레-에밀 앵겔브레슈트(Désiré-Émile Inghelbrecht, 1880-1965)라는 인물은 어지간한 클래식 애호가 아니면 꽤 낯선 이로 여겨질 텐데, 일단 옛 LP 팬들의 말로 들어보면 모노 녹음 시대에 드뷔시 관현악 작품을 탁월하게 다뤘던 지휘자라고 한다.
지휘자로서의 명성이야 그렇다 쳐도, 성씨부터 일반 프랑스인이 쓰는 성 같지는 않다. 대체 어떻게 읽는 지도 잘 모르겠는데, '앵겔브레슈트' 라는 것도 대충 때려맞춘 발음이다. 그리고 저 괴이한 성에서 인물의 혈통이 어떻게 됐는지도 알 수 있고.
앵겔브레슈트의 할아버지는 영국인이었다고 하는데, 프랑스어로 영국을 '앙글테르(Angleterre)' 라고 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아버지가 파리 오페라극장 관현악단에서 비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었고 어머니도 피아노 실력이 수준급이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쉽게 음악을 접하고 배울 수 있었다.
결국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웠는데, 이후 음악원 수업과는 별도로 지휘를 배우기 시작했다. 졸업 후 잠시 작곡가로 촉망받았지만, 이후 지휘 활동에 주력해 샹젤리제 극장 관현악단과 파들루 관현악단 등의 지휘자를 역임했다. 특히 드뷔시와 생전에 각별한 친교를 맺었고, '성 세바스티안의 순교' 같은 작품의 경우 초연 때 합창 지휘자로 출연하기도 했다.
드뷔시 외에도 플로랑 슈미트나 여타 동시대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 초연과 재연에 적극적으로 참가했으며, 라벨과 슈미트, 파야 등이 주축이 된 전위 예술인 모임 '르 아파쉬(Les Apaches)' 와도 관계를 맺고 있었다. 파들루 관현악단 재임 중에는 녹음 활동도 시작했고, 주로 드뷔시를 위시한 프랑스 작곡가들의 관현악 소품과 보로딘, 바그너 등의 곡을 취입했다.
1934년에는 프랑스 체신성 장관의 발의로 창단된 프랑스 국립 방송 관현악단의 초대 상임 지휘자로 발탁되었는데, 1940년에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파리에서 비시 괴뢰정부 지배 하의 마르세유로 임시 피난해 악단을 재조직해야 했다. 하지만 그 재조직을 인가받는 조건으로 비시 정부의 대독 협력 방침에 따라 유태인 단원들을 해고해야 했는데, 이것이 훗날 문제가 되기도 했다.
2차대전 종전 후에는 다시 샹젤리제 극장 관현악단으로 옮겨갔고, 프랑스 국립 방송 관현악단 등 전임 악단도 객원으로 지휘하면서 위축되었던 프랑스 근현대음악의 보급을 재개했다. 특히 HMV(현 EMI) 계열 음반사들이었던 프랑스 컬럼비아와 뒤크르테-톰송, 파테 마르코니, 미국 캐피털 등에 드뷔시 관현악 작품과 관현악 반주 성악 작품의 상당수를 녹음했고, 그 중 몇 가지는 프랑스 디스크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다.
앵겔브레슈트의 녹음들은 대부분 모노 녹음이지만, 종전 후 제작된 음반들은 대부분 테이프 녹음의 도입으로 상당히 깔끔한 음질이어서 EMI를 통해 LP와 CD로 수월하게 복각되었다. 최근에는 테스타먼트에서 최신 기술을 사용해 복각한 CD들이 다시금 나오고 있는데, 이렇게 지휘자로는 꽤 중요시되는 인물이지만 그가 작곡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작곡가 앵겔브레슈트가 남긴 작품들은 대부분 가곡이나 실내악, 피아노곡, 합창곡 등인데, 뒤랑이나 알퐁스 르뒥, 살라베르 등 프랑스 유명 음악 출판사에서 지금도 악보가 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연주되는 빈도는 본국인 프랑스를 포함해 아주 적은데, 음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딱 한 곡은 낙소스 뮤직라이브러리를 통해 들어볼 수 있었는데, 1920년대에 작곡된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소나티나였다. 스웨덴의 비스(BIS)에서 나온 CD를 통째로 올려놓은 것이었고(음반 번호는 BIS-CD-650), 앵겔브레슈트 외에도 이름도 생소한 프랑스 작곡가들인 장-미셸 다마즈, 조셉 로베르, 카르멘 페트라-바사코폴과 일본 현대 작곡가의 대표 격인 다케미츠 도루의 플루트+하프 2중주용 작품들이 같이 수록되어 있다.
ⓟ 1995 BIS Records AB
소나티나라는 장르 명칭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0분 약간 넘는 정도로 비교적 짧은 곡이지만, 앵겔브레슈트가 동시대 음악-특히 선배였던 드뷔시-의 영향을 얼마나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지 확인시켜주고 있다. 드뷔시가 즐겨 쓰던 온음 음계나 5음 음계를 마찬가지로 애용하고 있고, 하프 주법의 경우에도 (물론 피아노로도 연주할 수 있다고 주기되어 있지만) 드뷔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연주자들은 캐나다 출신의 플루티스트 로버트 에이트킨(Robert Aitken)과 하피스트 에리카 굿맨(Erica Goodman)인데, 특히 에이트킨의 경우 모차르트 같은 고전시대 작품에서부터 다케미츠 등 현대 작품에 이르는 광범위한 플루트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는 인물이다. 낙소스의 일본 작곡가 선집 중 다케미츠 실내악 작품집에서도 연주를 들을 수 있는데, 무반주 플루트 독주곡의 최대 난곡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목소리' 같은 작품에서는 달인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에이트킨과 굿맨 콤비는 이외에도 비스에서 여러 기획 음반을 출시한 바 있는데, 곡들이 꽤 무궁무진한 것을 보면 플루트와 하프 콤비는 모차르트의 협주곡 외에도 다른 시대와 작곡가들에게 나름대로 매력적인 편성으로 여겨진 것 같다.
이 소나티나 외에도 낙소스 뮤직라이브러리에 올라와 있는 음원 중에는 ATMA 클래시크에서 나온 'Nursery' 라는 피아노곡 묶음도 있는데(음반 번호 ACD22266), 프랑스 아이들에게 애창되던 민요들을 바탕으로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저 곡의 경우 아직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앵겔브레슈트가 쓴 작품 중 가장 초기에 발표되어 호평을 받은 출세작이라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저것도 들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