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경단이라고 하는 것을 일본에서 당고라고 부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팩트(?)를 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클라나드의 주제곡 '당고 대가족' 덕분이었다. 그건 그렇고, 한국식 경단이야 먹을 기회가 많기는 한데, 일본식 당고를 먹어본 적은 없었다. 6호선 상수역 근처에 가게가 하나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들어왔지만, 칙칙한 남자 혼자 가서 뭘 하겠냐는 식으로 체념하고 있었다.
하지만 5월 말에 여기를 뜨고 나면 최대 반 년 동안 먹고 싶어도 못먹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서, 5월 첫째 주 토요일에 한 번 가봤다. 꽤 유명한지,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상수역 당고집' 혹은 '홍대 당고집' 이라고 치면 지도도 뜰 정도였다.
우선 홍대 쪽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 다소 멀기는 하지만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용무를 본 뒤, 어울마당로를 따라 걸어갔다. 가던 도중에 시음 행사를 하길래 참가해서 받은 캔커피. 가격이 좀 센 브랜드라, 공짜로 득템한 것이 꽤 기분이 좋았다.
길을 가로지른 횡단보도를 두 차례 건넌 뒤 당인리사거리에서 남쪽으로 골목처럼 좁아진 2차선 길이 나왔는데, 세븐일레븐 반대편의 오른쪽 인도를 따라 계속 걸어갔다.
그러다가 위의 부동산이 보이는 골목 오른쪽으로 꺾어 몇 발짝 옮기면,
이렇게 간판도 없는 당고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간판 말고 이 집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포인트는 집 앞의 개집과 거기에 있는 개 한 마리다.
다소 따분한 듯 집 속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개.
개집 바로 옆에는 이런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개 이름이 '제현이' 인가 보다.
가게 앞에는 이렇게 화이트보드에 써넣은 메뉴판이 나와 있었다. 하지만 아직 크게 배고프지는 않았고, 당고집이라고 한 만큼 당고를 먹기로 작정하고 왔기 때문에 별로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가게 안은 전체적으로 목제 가구들로 마감한 소박하고 단순한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었고, 대략 여덟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길다란 탁자 하나와 2인용 테이블 대여섯 개 정도가 있어서 그리 크지는 않아 보였다.
자리에 앉으니 자동적으로 제공된 물병과 컵. 당고는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유리 진열장에 종류별로 차곡차곡 늘어놓고 있었다. 총 네 종류였는데, 5000원짜리 세트 메뉴로 네 가지 맛을 다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트라고 해서 저렴하지는 않았는데, 위의 메뉴판을 보고 계산해 보면 알겠지만 그냥 네 종류의 가격을 합한 것이다.
떡이니까 그리 퍽퍽하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행여 너무 달거나 할 까봐 균형을 맞출 뭔가가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같이 시킨 뜨거운 말차(3000\). 티백 녹차야 많이 마셔볼 수 있지만, 이렇게 가루낸 녹차를 타서 마시는 것도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심하게 떫지는 않았지만, 원체 뜨거운 데다가 열전도율 작살인 도자기 컵에 담긴 탓에 컵을 쥐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당고 4종 세트. 오른쪽부터 간장당고, 단팥당고, 녹차당고, 딸기당고 순으로 담겨져 나왔다. 간장당고에는 시럽처럼 약간 끈적한 간장 소스가 발라져 나왔지만, 동그란 당고의 모양새 때문에 이내 받침접시로 다 흘러내렸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달착짭짤한' 간장 소스나 소금 사탕 같은 독특한 일본식 미각에 익숙하지는 않은데, 특히 요리에 단 맛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다과류에 짭짤하거나 매운 맛이 섞이는 것은 정말 적응하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간장당고는 약간 유니크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는 묘한 맛이었고.
나머지 당고 세 종류는 생각보다 달콤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달달한 다과류라는 나의 고정관념을 충족시켜줬다. 다만 이게 정말 일본식 당고라는 전제 하에서, 그리고 내가 멋대로 상상한 당고의 이미지에 비춰보면 식감은 그리 쫄깃하지 않았고, 당고 네 알의 합체도(?)가 꽤 높은 편이라 대나무 꼬치에서 빼먹기가 약간 귀찮았던 점도 좀 걸렸다.
어쨌든 그렇게 뜨거운 차를 식혀가며, 그리고 당고 한알 한알을 아주 천천히 맛보면서 나름대로의 망중한을 즐길 수 있었다. 당고는 포장해 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니, 행여 6개월 뒤 잠시 돌아왔을 때 기회가 된다면 간장당고 빼고 세 종류는 한 번 더 천천히 음미해 보고 싶다.
그러고 나서 다시 밖으로 나왔는데, 개나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덕에 한참을 '제현이' 와 보냈다. 머리 쪽은 멀쩡했지만, 어째 몸의 털과 피부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욕구불만인지 호기심 때문인지 개집에 둘러쳐진 대나무 발을 씹고 있는 '제현이'. 개가 대나무를 소화시킬 수 있을까? 아무튼 계속 뜯어말려도 열심히 씹고 있었다. 이미 9년 전에 떠나보낸 강아지 생각에 약간은 야릇한 기분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