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

웨일즈의 10000명 대합창.

머나먼정글 2007. 8. 17. 15:18
과거에 식민지 여럿 거느렸던 나라 치고 '중화주의' 에 빠지지 않은 나라가 별로 없을텐데, 영국도 마찬가지다. (아니, 유럽 제국들 중에 가장 심했으면 심했지.) 그런 점과 '입헌군주제' 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탓에, 호감이 가면서도 때로는 싫어지는 나라가 되고 있고. (상징적인 의미던 실질적인 의미건, 군주라는 직종은 개인적으로 '엿이나 먹으삼' 임)

그런 맥락에서 바라다 볼 수도 있는 앨범이 EMI에서 하나 나왔었는데, 제목부터 '뭔가 쓸데없이 거대하다' 는 느낌이 드는 '10000 Voices' 였다.

ⓟ 1992 EMI Records Ltd.

영국 하면 요전에 들렀다가 간 맨유나 첼시, 아스날 등등에서 보듯 축구가 꽤 인기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물론 그 축구 말고도 흔히 이야기하는 '럭비' 도 동양권 국가에서는 생소한 종목이라서 그렇지 영국 현지에 가보면 축구 못지 않게 인기가 높다고들 한다.

그래서 자기네들 식민지였던 소위 '영연방' 국가들끼리 럭비 챔피언십도 매년 개최하고 있는데, 군대에서 X뺑이 치던 사이에 뉴질랜드 어학연수 갔다 왔던 근육질 동생 말을 들어보니 저 럭비 챔피언십 열리는 날이면 2002년 월드컵 때와 맞먹을 정도의 열기가 시내를 온통 휘감는다고 할 정도다.

1953년에 개최된 그 챔피언십에서 웨일즈랑 뉴질랜드 대표가 겨룬 날이 11월 22일이었는데, 그 당시에 뉴질랜드가 워낙 강팀이라서 웨일즈가 경기 내내 맥을 못추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기 종료 10분 가량을 남겨 두고 웨일즈 응원석에서 갑자기 자신들의 국가-영국은 지방마다 준국가 격인 노래가 하나씩 있음. 웨일즈는 내 아버지의 땅(Hen wlad fy nhadau)-를 비롯한 전통 민요를 일제히 합창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던 것이었다.

그 노래에 '필 충만해졌는지' 결국 그 마지막 10분 동안 웨일즈가 거꾸로 뉴질랜드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는데, 그 즉흥적인 합창에 착안해서 몇십년 뒤인 1990년에는 웨일즈 대 프랑스 럭비 경기의 개막식 행사를 위해 영국 각지의 아마추어 남성 합창단을 마구 끌어모아 대규모 임시 합창단 조직을 만들어서 공연하기도 했다.

이어 1992년 5월 23일에는 아예 10000명이라는 인원으로 카디프 암즈 파크(Cardiff Arms Park)의 내셔널 스타디움 한켠을 꽉 채우고 공연을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합창단의 이름은 'côr y byd', 영어로는 'The World Choir' 로 정해졌고. 그리고 저 엄청난 인원들을 반주할 악단으로는 웨일즈(Welsh), 북아일랜드(Irish), 스코틀랜드(Scottish)와 콜드스트림(Coldstream, 잉글랜드) 네 곳의 근위 연대(Guards Division) 소속 군악대들이 소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