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에서 배출된 유명 작곡가를 꼽으라면, 아마 첫 번째로 드보르작이 나올 것이다. 그 뒤로는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 중 '블타바(몰다우)' 로 유명한 스메타나, '영리한 암여우 이야기', '예누파' 등의 오페라와 '신포니에타', '타라스 불바' 등의 관현악 작품으로 이름을 남긴 야나첵도 거론될 것이고.
체코에서는 저 3인에다가 비교적 현대에 속하는 인물인 보후슬라프 마르티누(Bohuslav Martinů, 1890-1959)를 더해 '체코 4인방' 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마르티누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지방의 경계에 있는 마을인 폴리츠카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해 열다섯 살 때에는 고향에서 공개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그 이듬해인 1906년에 프라하 음악원에 들어가 바이올린을 전공했지만, 학습 내용과 교육 방식에 실망을 느껴 그만 두고 독학으로 연주법을 습득했다.
1차대전 중에는 고향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면서 작곡을 시도하기도 했고,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입단해 연주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23년에는 프랑스에 유학해 알베르 루셀에게 배웠는데, 이 기간 동안 재즈와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등의 음악에 자극받기도 했다.
학업을 마친 후에도 계속 파리에 머물며 작곡 활동을 했지만, 2차대전 발발 후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망명 생활 중에는 주로 뉴욕에 머물렀고, 초기 전자악기 중 하나인 테레민을 위한 작품을 작곡하기도 했다.
마르티누는 종전 후 귀향하고자 했지만, 고국이 소련의 사주에 의한 쿠데타로 인해 사회주의 국가가 되자 포기하고 계속 외국에 머물렀다. 말년에는 위암 등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었고, 유럽 각지에서 요양 생활을 하다가 스위스의 리슈탈에서 세상을 떠났다.
다리우스 미요와 함께 현대음악계에서 이례적인 다작가로 유명했는데, 여섯 곡의 교향곡과 다섯 곡의 피아노 협주곡, 각기 두 곡 씩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첼로 협주곡, 오보에 협주곡, 하프시코드 협주곡, 일곱 곡의 현악 4중주, 각기 세 곡 씩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첼로 소나타, 비올라 소나타, 플루트 소나타, 하프시코드 소나타, 피아노 소나타, 열다섯 곡의 오페라와 열네 곡의 발레, 다섯 곡의 칸타타 등 거의 모든 장르에서 400여 곡의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마르티누의 작품이 한국에서는 그다지 연주가 활발하지 않은데, 음반 매장에서도 비교적 인기가 없는 작곡가라고 한다. 나도 지금까지 들어본 작품이 '9중주(Nonet)' 딱 한 곡 뿐이고.
9중주(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호른-바순-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라는 편성은 실내악계에서 그리 일반적인 편성이 아니고, 오히려 실내 관현악 쪽에 가까운 대규모라고도 볼 수 있다. 저 편성으로 최초의 곡을 쓴 사람이 루이 슈포어였는데, 그 뒤로 저 편성을 자신의 작품에 적용한 이들은 조지 온슬로, 프란츠 라흐너, 요제프 라인베르거, 새뮤얼 콜리지-테일러, 니노 로타, 그리고 마르티누가 전부다.
마르티누의 9중주는 1959년에 작곡되었고, 초연은 임종 1개월 전인 7월 27일에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체코 필 단원들로 구성된 9중주단의 연주로 이뤄졌다.
흔히 마르티누의 작풍은 신고전주의 기반의 명쾌한 형식에 재즈와 고향의 민속 음악, 스트라빈스키의 리듬과 드뷔시의 음색 등이 녹아 있다고 평가된다. 이 9중주에서는 저 요소들 중에 민속 음악이 유달리 강조되어 있는데, 아마 타국에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쓰여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발랄하면서도 변박이 많이 들어가 복잡한 춤곡 리듬을 앞세운 1악장과 3악장 사이에 배치된 2악장에서 그러한 '망향' 의 감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첼로로 시작되는 울적한 인트로와 웅변조로 나타나는 호른의 짧은 솔로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어떤 자료에서는 3악장 말미에 스메타나의 오페라 '팔려간 신부' 서곡의 초반부 음형도 이용하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더욱 더 심증이 굳어지는 셈이다. 프랑스 유학 후 전쟁과 빈곤 등으로 인해 제대로 찾아가지도 못했고, 전쟁 후에는 체제와 이념의 갈등으로 인해 돌아갈 수 없는 땅이 된 고향에 대한 마지막 인사로 작곡된 것이다.
음반은 그래도 구색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는데, 내가 구한 것은 명동 부루의 뜨락 중고 코너에 있던 앙상블 빈-베를린(Ensemble Wien-Berlin)의 도이체 그라모폰(DG) CD다. 위에 언급한 9중주 편성의 최초 작품인 슈포어의 것이 같이 커플링되어 있는 물건인데, 빈 필과 베를린 필의 수석 주자 출신들의 앙상블이라 그런지 매우 안정된 연주다.
ⓟ 1989 Deutsche Grammophon GmbH
앙상블 빈-베를린은 원래 목관 5중주단 편성이지만, 같은 악단 출신 현악 연주자들을 더해 7중주 이상의 대편성 실내악을 연주하기도 한다. 이 앨범의 참가 연주자들은;
볼프강 슐츠 (플루트, 빈 필 출신)
한스외르크 셸렌베르거 (오보에, 베를린 필 출신)
칼 라이스터 (클라리넷, 베를린 필 출신)
귄터 회그너 (호른, 빈 필 출신)
밀란 투르코비치 (바순, 빈 교향악단과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 출신)
게르하르트 헤첼 (바이올린, 빈 필 출신)
볼프람 크리스트 (비올라, 베를린 필 출신)
게오르크 파우스트 (첼로, 베를린 필 출신)
알로이스 포슈 (콘트라베이스, 빈 필 출신)
다만 저 DG 앨범은 폐반 혹은 절판됐는지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렇다고 나머지 앨범들인 팀파니나 비스 등에서 나온 것들도 쉽게 입수할 수 있는 품목들은 아니다.
이상하게 고전 시대 이후의 다작가들은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작품을 너무 쉽게쉽게 쓴다는 편견 때문일까? 마르티누와 쌍벽을 이루었던 미요나, 교향곡을 67곡이나 작곡한 아르메니아 혈통의 미국 작곡가인 앨런 호바네스도 몇몇 곡을 제외하면 '매너리즘' 을 이유로 까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20세기 음악 전반에 그다지 익숙치 않은 이들에게는 그 '다작가' 들의 작품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거나, 그 물량 공세에 일찌감치 기가 죽어버리는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 곡들을 다 들어보라고 권하는 사람도 없으니, 그 중 몇몇 곡들이라도 찾아 들을 수만 있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