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초네(canzone)' 라는 이탈리아어 단어는 비슷한 의미인 '샹송' 과 함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뜻이 축소된 경우인데, 그냥 직역하자면 한국어의 '노래' 라는 단어일 뿐이다. 하지만 칸초네가 뭔지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대개는 이탈리아 민요 혹은 속요라는 대답이 압도적일 정도다. 가장 최근에는 아마노 코즈에의 '아리아' 에서 운디네(수상안내인)들이 부르는 노래도 칸초네라고 설정되어 있고.
다만, 그러한 일반적인 축소 의미의 칸초네는 원래 이탈리아 남부에서 파생된 장르이므로 '칸초네 나폴리타나(Canzone Napolitana)' 라고 하는 것이 정답이다.
이탈리아도 일종의 '지역 감정' 이라는 것이 심한 나라라고 하는데, 실제로 밀라노나 토리노 같은 북부 도시와 나폴리나 팔레르모 같은 남부 도시에 모두 가 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소위 이야기하는 '사투리' 나 '지방색' 외에도,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주로 북부 지방에 부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사회적/경제적인 요인도 있고.
칸초네 나폴리타나(이하 칸초네)는 샹송과 마찬가지로 '고전적인' 의미와 '현대적인' 의미가 판이하게 다른데, 고전적인 의미의 칸초네는 르네상스 시기에 플랑드르 악파 작곡가들이 나폴리에 터를 잡아 만들기 시작한 가곡을 의미한다. 물론 가곡이라고 해도 슈베르트 류의 진지한 것이 아니라, 요즘의 '가요' 개념과 비슷했다고 하고.
현대적인 의미의 칸초네는 19세기 중반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한 노래들인데, 오늘날 칸초네 하면 절대 다수가 이 시기 이후 작곡된 곡들이고 '나폴리 민요' 라는 의미로 통용되기도 하는 노래들이기도 하다. 특히 나폴리 어민들을 중심으로 열리던 아마추어 가요제인 '피에디그로타 가요제' 가 프로 가수들의 경연으로 바뀌면서 상업성과 세련미가 가미되었고, 곧 나폴리 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주요 음악 장르로 발돋움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오페라 무대를 휘어잡던 이탈리아 출신 성악가들도 칸초네를 거의 필수적으로 독창 리사이틀의 레퍼토리로 선정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적극적인 공연으로 대중음악에서 예술음악이라는 '감투' 를 쓰게 된 곡들도 있었다. 가령 '푸니쿨리 푸니쿨라' 같은 곡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초기 교향시인 '이탈리아에서' 에 인용해 유명하고, '오 나의 태양(오 솔레 미오)' 은 한국이나 일본 등 동양 국가들의 음악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를 획득하고 있다.
국내에 소개된 성악가들의 칸초네 음반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주세페 디 스테파노의 앨범(EMI/Testament)일텐데, 스테파노는 나폴리 출신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가까운 지방이었던 시칠리아섬의 카타니아 태생이었기 때문에 어느 이탈리아 가수보다 칸초네의 정서를 잘 살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칸초네 음반은 나폴리는 커녕 이탈리아 사람도 아닌, 에스파냐 출신의 카레라스가 부른 것(필립스)이다. 백혈병으로 쓰러지기 전이었던 1980년에 런던에서 녹음한 앨범인데, 주로 20세기에 창작된 '최신곡' 들을 선곡했다. (물론 19세기 작품인 '푸니쿨리 푸니쿨라' 와 '오 나의 태양' 도 수록되어 있음)
*수록곡 리스트
루이지 덴차 (Luigi Denza, 1846-1922): 푸니쿨리 푸니쿨라
살바토레 카르딜로 (Salvatore Cardillo, 1874-1947): 무정한 마음
빈첸초 다니발레 (Vincenzo D'Annibale, 1894-1950): 오 태양의 나라
로돌포 팔보 (Rodolfo Falvo, 1874-1936): 그녀에게 내 말 전해주오
가에타나 라마 (Gaetana Lama, 1886-1950): 조용히 부르는 노래
E.A. 마리오 (E.A. Mario. 본명은 조반니 에르메테 가에타 Giovanni Ermete Gaeta, 1884-1961): 먼 산타 루치아
에르네스토 디 쿠르티스 (Ernesto di Curtis, 1875-1937): 너는 왜 울지 않고
에두아르도 디 카푸아 (Eduardo di Capua, 1864-1917): 오 나의 태양
루이지 덴차: 그녀에게 입맞추리
리베로 보비오 (Libero Bovio, 1883-1942) & 에르네스토 탈리아페리 (Ernesto Tagliaferri, 1889-1937): 열정
주세페 치오피 (Giuseppe Cioffi, 1907-1976): 5월의 밤
엔리코 카니오 (Enrico Cannio, 1875-1949): 그대에게 반하여
에르네스토 디 쿠르티스: 돌아오라 소렌토로
모든 곡은 비슷한 시기에 녹음한 토스티 가곡집과 마찬가지로 전곡이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English Chamber Orchestra)의 반주로 녹음됐고, 관현악 편곡과 지휘는 각각 피터 호프(Peter Hope)와 에도아르도 뮐러(Edoardo Müller)가 담당했다. 편곡은 비교적 소박하고 가볍게 되어 있는데, 만돌린이 거의 모든 곡에 첨가되어 이탈리아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병으로 쇠약해지기 이전의 카레라스였던 만큼 목소리에 확실히 힘과 열정이 살아 있다. 어떤 때는 그러한 패기가 좀 지나치다는 감도 있는데, 오히려 그런 점이 노래들의 감성 표현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스테파노의 음반도 나쁘지는 않지만, 너무 미성으로만 부른 감이 없지 않다)
저 앨범은 1990년대 중반까지 라이센스 테이프와 CD로도 출반되어서 비교적 어렵잖게 구할 수 있었지만, 2000년대 들어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몇몇 곡 만이 컴필레이션 앨범에 실려 출반될 뿐이었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아쉬운 대목이었는데, 다행히 황학동 중고음반점에서 CD를 구할 수 있었다.
ⓟ 1994 Philips Classics Productions
다만 예전에 나왔던 라이센스반과는 커버 아트가 천지차이였는데, 정식 발매분은 아니었던 것 같고 네스카페 카푸치노가 크게 인쇄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어떤 행사의 경품으로 나왔던 물건으로 추측된다. 어떻게 보면 '카레라스의 굴욕' 이라고까지 생각되는데, 그래도 구할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 다행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저 앨범보다 더 구하기 힘들다는 토스티 가곡집의 CD도 탐나는 물건인데, 언젠가는 신품이던 중고품이든 구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계속 중고음반점을 뒤지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충분히 긍정적이라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