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소개한 두 개의 LP들도 꽤 희소 가치가 있는 물건들이기는 했지만, 이번에 소개할 것은 그 의미가 매우 각별한 음반이다. 지금 열리고 있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예술감독이기도 한 강동석이 다름 아닌 도이체 그라모폰(DG)에 녹음한 앨범이기 때문이다.
DG에 음반을 취입한 한국 바이올리니스트는 내가 아는 한 세 명 뿐이다. 김영욱이 오코 카무 지휘의 밤베르크 교향악단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 1번을 취입했고, 데카 전속이었던 정경화가 잠깐 외도 형식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레스피기의 소나타를 녹음했고-피아니스트는 크리스티안 치머만-, 그리고 강동석이 낸 이 앨범이 전부다. (시리얼 넘버: 2530 761)
ⓟ 1976 Polydor International GmbH
LP 커버에서 보이듯, 이 앨범은 1976년에 벨기에에서 열렸던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쿨과 깊은 연관이 있는 물건이다. 엘리자베스 콩쿨은 폴란드의 쇼팽 콩쿨,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 콩쿨과 함께 세계 3대 음악 경연대회로 유명한데, 여기에 강동석이 참가해 3위로 입상한 것이었다. (한국인으로 3위권까지 입상한 사례 중 최초임)
강동석은 1967년에 미국으로 유학해 줄리어드 음악원과 커티스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당시 미국 바이올린 교수 중에서 도로시 딜레이와 쌍벽을 이루던 이반 갈라미언의 제자였다고 한다. 이미 미국 각지의 콩쿨에서 1등상을 휩쓸었고, 칼 플레슈 콩쿨(2등)과 몬트리올 콩쿨(2등) 같은 명망있는 경연에서도 입상했기 때문에, 이 엘리자베스 콩쿨 도전도 상당히 화제가 되었다.
커버 뒷쪽의 라이너 노트를 보면, 당시 소련에서 상위권 싹쓸이를 위해 유능한 연주가를 대거 투입했음을 알 수 있다. 5월 29일에 치러진 결선에 오른 12명의 바이올리니스트들 중 세 명이 소련 국적이었고, 그들이 1위와 2위, 4위를 차지했다.
강동석은 결선에서 조르주 옥토르(Georges Octors)가 지휘하는 벨기에 국립 관현악단(Orchestre National de Belgique)과 협연했는데, 콩쿨을 위해 신작으로 위촉된 자클린 퐁탱(Jacqueline Fontyn, 1930-)의 '2악장의 바이올린 협주곡(Concerto for violin and orchestra in two movements)' 과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 LP 커버 뒷면. 결선 공연 장면이 찍혀 있다.)
당시 벨기에 언론들이 실은 평론들에는 '소리가 좀 가늘었다' 는 비판도 있었지만 대체로 호평이었다고 하는데, 순위를 떠나 쟁쟁한 소련 연주인들 틈바구니에서 입상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콩쿨 규정에 따르면 1위와 2위 입상자에게는 각각 20만 프랑과 15만 프랑의 상금과 트로피, 입상 기념 단독 연주회와 벨기에 5대 도시 순회 공연 외에도 음반 제작을 알선해 주도록 되어 있었는데, 3위의 경우에는 12만 프랑의 상금과 트로피, 단독 연주회와 순회 공연 무대는 주어지지만 음반 제작이라는 혜택은 없었다.
하지만 콩쿨 심사 위원이었던 예후디 메뉴힌(Yehudi Menuhin)이 DG 측에 음반 제작을 적극 권유한 것 같은데, 실제로 라이너 노트의 말미에는 메뉴힌이 콩쿨 후인 7월 18일에 직접 쓴 추천사가 들어 있다.
"나는 지난 5월 브뤼셀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쿨에서 심사 위원의 자격으로 강동석의 연주를 처음 들었다. 그는 첫 번째 연주자였으며, 닷새 후 열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연주를 듣고 난 후에도 그의 섬세하고 우아한 소리는 나의 귀와 마음을 울렸다.
그의 연주는 무한한 민감함과 엄격한 정확성, 그리고 우아함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가 프랑스의 청중들에게 가장 열광적인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앨범에는 녹음 제작 스탭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만, 녹음 일자나 장소는 전혀 표기되어 있지 않아서 이 녹음이 결선 때의 실황인지, 아니면 콩쿨 후 열린 입상 기념 연주회의 실황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기념 연주회 때의 실황인 것 같은데, 콩쿨 당시의 녹음에 미리 DG의 스탭을 기용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음반은 김영욱 이후로 한국 바이올리니스트가 두 번째로 DG에 음반을 취입한 매우 희귀한 사례지만, 유감스럽게도 LP 발매 이후 DG 본사에서 CD 재발매를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에서도 이 녹음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 정도이니, 상당히 섭섭하다.
강동석은 콩쿨 입상 이후에도 낙소스와 팀파니 등의 음반사와 삼성뮤직-현 E&E 미디어-등에서 계속 음반 녹음을 했지만, 메이저 레이블과 녹음한 것은 저 DG 음반 외에는 없는 실정이다. 물론 '메이저 레이블 녹음=1류' 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만큼 귀중한 녹음이므로 어떻게든 재발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