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드물게 영화관에 가는 나로서는, 개인사에 남을 세 가지 사건이었다. 혼자서 처음 영화보러 간 것,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는 것, 그리고 영화 보면서 처음으로 질질 짰다는 것.
조선적 동포 또는 재일 조선인이라는 존재는 요 근래에야 한국에 그 실체가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나도 예전에 바이올리니스트 정찬우의 CD를 소개하면서 쓴 적이 있었고. (관련 글)
일본 사회에서 민감하다 하면 민감한 이 주제를 'GO' 나 '피와 뼈', '박치기' 같은 재일교포 3세들이 만든 극영화에서 다루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디어 평양' 이나 이 '우리 학교'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우리 학교' 는 그러한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들 중에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관람한 작품이었다. 감독이 일본 북부 혹가이도(홋카이도의 조선식 표기) 조선초중고급학교의 학생들과 몇 년 동안이나 같이 어울려 살면서 찍은 영상들로 만든 것이었는데, 당연히 전문 배우는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학생 '동무들' 과 교원들, 그리고 드물게 보이는 일본인 후원자와 교원(체육교사)들이 주인공 겸 조연을 자연스레 맡고 있다.
예전에 인터넷이 '막히기' 전에도 이런저런 소위 '친북사이트' 를 서핑해 봤기 때문에, 그들이 어떠한 일을 하고 어떠한 상황인지를 아주 대충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접한 그들의 일상은 소위 '사상적' 이거나 '정치적인'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북에서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편향성은 있다고 해도, 그 사고의 흐름이나 유연함은 확실히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교포라고는 해도 학교 수업 시간을 빼면 거의 일본 사회 속에서 지내기 때문에, 학생들의 조선어 실력은 좀 어눌한 편이다. 무의식적으로 일본어가 섞여 나오기도 하고,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북식 표현도 종종 등장한다. 굳이 자막을 넣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은 '자율 경쟁' 을 통해 소조(동아리에 해당)를 조직하면서 우리말 100% 운동이라던가 교내 합창제, 대운동회 등의 행사를 상당히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조선학교는 대체로 초중고 과정이 하나로 묶여 있는 탓인지, 일단 입학하게 되면 최대 10년도 넘게 졸업할 때까지 같은 학생들과 선생님들 속에서 생활하게 되기 때문에 이런 결속과 응집이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됐다. 이러한 '정' 은 영화 마지막에 가서 매우 감동적인 장면으로 나타나게 된다.
물론 재일 조선인으로서 받는 차별도 종종 나타난다. 미사일 발사로 인해 북일 관계가 악화 일로를 치닫는 동안 학교에 걸려오는 일본 우익들의 협박 전화, 학생들의 조국 방문 후 니가타항에 입항하는 만경봉호를 겨냥한 일본 극우 단체의 시위-아이러니하게도 북한 노래인 '승리의 열병식' 을 틀어놓고 조롱하고 있었다-가 이들의 불안정한 지위를 별도의 설명 없이도 잘 보여준다.
인터하이 같은 일본의 전국 학생체육 행사에도 조선학교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로 취급되는데, 이 영화에서도 다뤄지고 있다. 역도부와 농구부, 축구부의 경기 장면이 비춰지는데, 갈 수록 학생이 줄어드는 탓에 운동부도 후보 선수가 모자랄 정도로 열악한 상황임에도 상당한 열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열성' 은 단지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랫 동안 핍박받고 살아온 자신들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에 대한 일종의 '보답' 으로서 나타나고 있었다. 최근의 한국 체대들의 폭력 신고식 사건이 자연스레 연상되었는데, 진정한 스포츠 정신은 이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감독이 한국 국적이라 학생들의 '조국 방문' 에는 직접 참가하지 못했지만, 학생들에게 들려 보낸 카메라에 찍힌 북한의 모습이 꽤 오랫동안 나오고 있었다. 텔레비전으로 많이 봐왔던 김일성광장, 주체사상탑, 만경대, 판문점 같은 '혁명사적지' 나 옥류관, 고려호텔 등의 모습도 나왔지만, 현지 안내원들과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장면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적어도 그 학생들에게 있어서 '조국' 은 이념과 사상, 체제를 떠나 이러한 따스함으로 다가왔던 것인데, 원산항에서 작별하는 순간에는 아쉬움에 울면서 계속 갑판 위에서 손을 흔드는 학생들 때문에 결국 나도 눈물을 쏟고 말았다. 지난 2년간 군에서 거의 일방적인 시각으로 받아온 대적관 정신교육의 단단한 껍질에 금이 가는 것 같았다.
영화는 계속 되었다. 암 말기에도 불구하고 기력이 되는 한 계속 진행한 한 노교원의 마지막 수업 장면이 비춰졌고-결국 영화 촬영 중 타계했다고 한다-, 고급부(고등학교)의 졸업식 장면이 이어졌다. 몇 년 동안이나 같이 생활하면서 쌓여온 '정' 이 이별의 순간에 울음섞인 고별사 낭독으로 절정에 달하는데, 이 장면에서 또 질질 짜고 말았다.
에필로그는 영화 편집 중에 일본에서 날아온 학교 교원의 편지 낭독으로 되어 있었다. 그 때는 일본이 북의 미사일 발사 문제와 납치 일본인 문제를 걸고 넘어지며 재일교포들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을 자행하던 때였는데, 그 교원은 영화 제작을 독려하면서도 일본 내의 조선인에 대한 협박과 폭력이 끊이지 않는 현실을 같이 적고 있었다.
민족주의는 편협하고 구시대적이라는 생각이 최근에 번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과연 그 '민족주의' 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라는 반문을 하고 싶어졌다. 하인스 워드나 조승희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호들갑과 수치심, 그리고 재일 조선인에 대한 '조총련계' 나 '북한 국적' 같은 오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단지 권력에 의해 멋대로 꾸며진 '배타적이며 국수적인, 좁은 의미의 민족주의' 였다는 것을 잘 설명해 준다.
이국 땅에서 오랫 동안 해당 국가의 권력에 탄압받고, 한국에서는 체제 문제로 '빨갱이' 로 몰리면서도 계속 자신의 뿌리를 자각하려는 재일 조선인, 재러 고려인, 재중 조선족들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관심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인데, 그 시기에 맞춰서 제대로 나온 다큐 영화였다. '디어 평양' 같은 아직 보지 못한 다큐 영화들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가고 있는데, 행여나 DVD라도 나오면 사서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