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
공연후기-뮌헨 실내 관현악단 고양 연주회.
머나먼정글
2007. 4. 1. 17:52
결론부터 DC 스타일로 말하자면, '떡실신' 당했다. 실력이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어울림누리의 음향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점을 미리 지적해두고 싶다. 요전에 고양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회 때도 느낀 것이었지만, 음들이 사방으로 마구 흩어져 버린다. 특히 현 파트가 그랬는데, 그 때는 아무래도 지방 악단의 한계 같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공연장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 같다.
프로그램은 여러 정황을 고려해 편성된 것 같았다.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1번은 열외로 치더라도, 슈만의 첼로 협주곡 솔리스트가 경남국제콩쿨 1등상 수상자였던 줄리 알버스였던 점과, 윤이상 작품 가운데 연주자들이 가장 꺼리는 대난곡인 '교착적 음향' 이 2부 첫 곡으로 짜여져 있던 것은 분명히 통영 국제 음악제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곡이었던 그리그의 홀베르그 모음곡도 올해가 그리그 서거 100주년인 만큼, 그 의미도 각별했고.
첫 곡인 모차르트에서는 홀의 음향 문제와 좀 오바스럽다고 여겨졌던 지휘자 알렉산더 리브라이히의 지휘 동작, 그리고 정격 연주와의 퓨전으로 들렸던 독특한 해석 때문에 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연주 중에 간간히 미소를 지으며 즐기듯이 연주하는 단원들의 모습은 '이들이 여간내기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했다. (그러고 보니 디베르티멘토라는 단어 자체가 '여흥 음악' 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니)
두 번째 곡이었던 슈만 협주곡은 원래 2관 편성의 본격적인 관현악을 동반한 작품이지만, 이번 연주회에서는 순수하게 현악 만으로 편성된 악단인 만큼 아예 스트링 전용으로 편곡된 버전을 사용했다. (편곡자는 확인하지 못함) 관악 파트가 독립적으로 흐르는 부분은 대개 제 1바이올린이나 제 2바이올린이 디비지(divisi. 스트링의 각 파트가 세분화되는 지점을 지시하는 용어)되어 연주했는데, 그럼에도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알버스의 독주는 그렇게 호쾌하지는 않았지만, 난곡임을 감안하면 그리 밋밋하지도 않았다. 다만 3악장에서 일부 악절을 빼먹는 실수가 보였고, 리브라이히와의 의견 조율인지는 모르지만 관현악이 두드러지는 부분에서는 독주가 오히려 스트링에 묻어가는 특이한 해석도 있었다.
2부의 첫 곡이었던 문제의 '교착적 음향' 은 듣는 내내 '참 잔인하다' 는 생각이 들게 했다. 특히 이 곡의 초연 리허설 때 첼로 파트에서 불만이 심했다는 일화가 실감났는데, 첼로 독주도 아니고 합주 파트에 그렇게 격한 글리산도나 까다로운 엇박 연주를 요구한 곡은 처음 들어봤다. 심지어 이론서에서도 보지 못한, 손가락으로 현을 (퉁기는 게 아니라) 두드리는 식의 '핑거 트레몰로' 같은 주법까지 등장했다.
악보를 보지 못해 연주가 성공적이었는지 어쨌는지는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특별히 어긋나거나 하는 부분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이 연주가 세계에서 네 번째로 시도된 '교착적 음향' 의 연주라는 점에서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다.
*참고로 '교착적 음향' 의 연주는 식스텐 에얼링 지휘의 북독일 방송 교향악단 초연, 고프레도 페트라시 지휘의 베를린 필 공연, 박태영 지휘의 서울 바로크 합주단 공연, 그리고 이 뮌헨 실내 관현악단 공연이 내가 아는 전부다. 작곡된 지 무려 40년도 넘은 작품이 말이다!!!
공식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인 홀베르그 모음곡은 윤이상에서 거의 '두들겨 맞은' 귀를 진정시키는 효과를 주면서 차분하게 들었는데, 대체로 빠른 템포임에도 여전히 연주는 정밀했고, 동시에 스칸디나비아 음악 특유의 긴 호흡과 야릇한 정서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곡인 리고동(rigaudon)에서 민속 춤곡 풍의 흥겨운 악상을 잘 살려낸 바이올린과 비올라 수석 주자들의 연주가 빼어났다.
연주가 끝나고 일반적인 관례인 커튼 콜 세 번에도 계속되는 박수에 리브라이히가 다시 나와서 어눌한 한국말로 감사를 표한 뒤, 앵콜로 버르토크의 '루마니아 민속 춤곡' 을 연주한다고 했다. 발췌 연주인가 했지만 전곡을 다 연주했는데, 원곡 자체가 상당히 짧은 모음곡 형식이므로 큰 부담은 없었다.
앵콜까지 다 끝났음에도 계속해서 갈채가 이어지자 리브라이히가 다시 나와서 예의 버르토크 마지막 곡을 또 연주했는데, 초반에 살짝 기본 비트만 주고는 그냥 악단이 자율적으로 연주하게끔 하는 '카를로스 클라이버식' 쇼맨쉽도 보여줬다. (물론 나중에는 다시 지휘하기는 했지만) 통영에서 바로 올라온 탓에 여독을 걱정하기는 했지만, 피곤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즐기면서' 연주하는 모습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그리고 올해 지금까지 들었던 공연 중에는 가장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들의 음악에 대한 태도 같은 것에도 꽤 감명을 받았고. 특히 프로그램 노트에 적혀 있는 리브라이히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아직도 예술지상주의에 젖어 있는 한국 음악계의 주류들이 반드시 새겨 들어야 할 쓴소리다.
"클래식 음악에서 '마에스트로 이미지' 는 구시대적이라 생각한다. 지휘자라는 것과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는 것은 음악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간적인 면에 있어서도 어떠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쟁점이 되는 이슈들에 대해서 관객, 그리고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어울림누리의 음향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점을 미리 지적해두고 싶다. 요전에 고양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회 때도 느낀 것이었지만, 음들이 사방으로 마구 흩어져 버린다. 특히 현 파트가 그랬는데, 그 때는 아무래도 지방 악단의 한계 같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공연장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 같다.
프로그램은 여러 정황을 고려해 편성된 것 같았다.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1번은 열외로 치더라도, 슈만의 첼로 협주곡 솔리스트가 경남국제콩쿨 1등상 수상자였던 줄리 알버스였던 점과, 윤이상 작품 가운데 연주자들이 가장 꺼리는 대난곡인 '교착적 음향' 이 2부 첫 곡으로 짜여져 있던 것은 분명히 통영 국제 음악제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곡이었던 그리그의 홀베르그 모음곡도 올해가 그리그 서거 100주년인 만큼, 그 의미도 각별했고.
첫 곡인 모차르트에서는 홀의 음향 문제와 좀 오바스럽다고 여겨졌던 지휘자 알렉산더 리브라이히의 지휘 동작, 그리고 정격 연주와의 퓨전으로 들렸던 독특한 해석 때문에 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연주 중에 간간히 미소를 지으며 즐기듯이 연주하는 단원들의 모습은 '이들이 여간내기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했다. (그러고 보니 디베르티멘토라는 단어 자체가 '여흥 음악' 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니)
두 번째 곡이었던 슈만 협주곡은 원래 2관 편성의 본격적인 관현악을 동반한 작품이지만, 이번 연주회에서는 순수하게 현악 만으로 편성된 악단인 만큼 아예 스트링 전용으로 편곡된 버전을 사용했다. (편곡자는 확인하지 못함) 관악 파트가 독립적으로 흐르는 부분은 대개 제 1바이올린이나 제 2바이올린이 디비지(divisi. 스트링의 각 파트가 세분화되는 지점을 지시하는 용어)되어 연주했는데, 그럼에도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알버스의 독주는 그렇게 호쾌하지는 않았지만, 난곡임을 감안하면 그리 밋밋하지도 않았다. 다만 3악장에서 일부 악절을 빼먹는 실수가 보였고, 리브라이히와의 의견 조율인지는 모르지만 관현악이 두드러지는 부분에서는 독주가 오히려 스트링에 묻어가는 특이한 해석도 있었다.
2부의 첫 곡이었던 문제의 '교착적 음향' 은 듣는 내내 '참 잔인하다' 는 생각이 들게 했다. 특히 이 곡의 초연 리허설 때 첼로 파트에서 불만이 심했다는 일화가 실감났는데, 첼로 독주도 아니고 합주 파트에 그렇게 격한 글리산도나 까다로운 엇박 연주를 요구한 곡은 처음 들어봤다. 심지어 이론서에서도 보지 못한, 손가락으로 현을 (퉁기는 게 아니라) 두드리는 식의 '핑거 트레몰로' 같은 주법까지 등장했다.
악보를 보지 못해 연주가 성공적이었는지 어쨌는지는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특별히 어긋나거나 하는 부분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이 연주가 세계에서 네 번째로 시도된 '교착적 음향' 의 연주라는 점에서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다.
*참고로 '교착적 음향' 의 연주는 식스텐 에얼링 지휘의 북독일 방송 교향악단 초연, 고프레도 페트라시 지휘의 베를린 필 공연, 박태영 지휘의 서울 바로크 합주단 공연, 그리고 이 뮌헨 실내 관현악단 공연이 내가 아는 전부다. 작곡된 지 무려 40년도 넘은 작품이 말이다!!!
공식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인 홀베르그 모음곡은 윤이상에서 거의 '두들겨 맞은' 귀를 진정시키는 효과를 주면서 차분하게 들었는데, 대체로 빠른 템포임에도 여전히 연주는 정밀했고, 동시에 스칸디나비아 음악 특유의 긴 호흡과 야릇한 정서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곡인 리고동(rigaudon)에서 민속 춤곡 풍의 흥겨운 악상을 잘 살려낸 바이올린과 비올라 수석 주자들의 연주가 빼어났다.
연주가 끝나고 일반적인 관례인 커튼 콜 세 번에도 계속되는 박수에 리브라이히가 다시 나와서 어눌한 한국말로 감사를 표한 뒤, 앵콜로 버르토크의 '루마니아 민속 춤곡' 을 연주한다고 했다. 발췌 연주인가 했지만 전곡을 다 연주했는데, 원곡 자체가 상당히 짧은 모음곡 형식이므로 큰 부담은 없었다.
앵콜까지 다 끝났음에도 계속해서 갈채가 이어지자 리브라이히가 다시 나와서 예의 버르토크 마지막 곡을 또 연주했는데, 초반에 살짝 기본 비트만 주고는 그냥 악단이 자율적으로 연주하게끔 하는 '카를로스 클라이버식' 쇼맨쉽도 보여줬다. (물론 나중에는 다시 지휘하기는 했지만) 통영에서 바로 올라온 탓에 여독을 걱정하기는 했지만, 피곤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즐기면서' 연주하는 모습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그리고 올해 지금까지 들었던 공연 중에는 가장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들의 음악에 대한 태도 같은 것에도 꽤 감명을 받았고. 특히 프로그램 노트에 적혀 있는 리브라이히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아직도 예술지상주의에 젖어 있는 한국 음악계의 주류들이 반드시 새겨 들어야 할 쓴소리다.
"클래식 음악에서 '마에스트로 이미지' 는 구시대적이라 생각한다. 지휘자라는 것과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는 것은 음악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간적인 면에 있어서도 어떠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쟁점이 되는 이슈들에 대해서 관객, 그리고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