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

이북식 '민족기악' 을 듣다.

머나먼정글 2007. 2. 23. 18:58
1980년대부터 '객석' 등 몇몇 예술잡지에서 (굉장한 용기를 내서) 북한의 음악에 대해 소개하기 시작했을 때, 그 루트는 절대 다수가 일본을 통해서였다. 카라얀 콩쿨에 1위 없는 2위로 입상해 화제가 된 지휘자 김일진을 인터뷰한 것도 일본에서였고, 조선 국립 교향악단이 본격적으로 국내 잡지에서 다루어진 것도 일본 공연(1992) 때 도쿄 등지에 상주하던 기자들이 쓴 리포트가 최초였다.

이는 일본 교포 사회의 기묘한 특수성 때문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미 바이올리니스트 정찬우와 관련해 쓴 글 등에서 밝힌 바 있으므로 더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특수성' 은 1955년에 조선적 교포들만의 예술단체인 '재일조선인중앙예술단' 의 창단으로 예술 방면에서도 구체화 되었고, 이 단체는 1974년에 현재의 명칭인 '금강산가극단' 으로 개명되었다.

금강산가극단은 이미 남한에서 몇 차례의 공연을 가졌고, 윤도현 밴드와의 합동 공연 등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국악 쪽에서도 가극단 전체는 아니지만, 장새납 주자 최영덕이나 대피리 주자 리재호, 지휘자 김경화 등이 '겨레의 노래뎐' 등의 공연 시리즈를 통해 남한의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한 바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금강산가극단은 주로 무대예술 형태의 공연에 치중하는 단체다. 그 때문에 북한의 여러 예술단이 가진 편제를 많이 참고하고 있는데, 성악가나 기악 연주가, 무용수, 공연 기획/제작자 등 공연에 관계된 거의 모든 직책의 인물들이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중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가극단의 기악, 특히 '민족기악' 을 위주로 하는 민족기악중주단이다. 소해금, 단소, 고음저대, 저대, 대피리, 저피리, 가야금, 옥류금 등 북한에서 개량한 악기 위주로 편성되어 있는데, 대해금과 저해금은 아직 보급이 안되어 있는지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로 대체하고 있다. 중국(1986), 러시아(1987), 미국(1999) 등 외국에서도 공연을 가졌고, 남한에서도 위에 쓴 바 있듯이 2000, 2002, 2003년에 공연한 바 있다.

2004년에는 중주단 단독으로 일본 각지를 돌며 공연을 가졌는데, 공연 직전인 3월에 도쿄 긴자에 있는 스튜디오 온쿄 하우스에서 공연 레퍼토리 위주로 녹음을 한 바 있었다. 이 녹음이 그해 말에 순회 공연 종료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CD로 출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