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
잊혀진 명연-8.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머나먼정글
2007. 2. 3. 14:14
이번에 선정된 음반은 물론 지금(2007년 2월 현재) 구하기가 쉽지 않거니와,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물건이다. 더군다나 1941년 녹음이라는 빈티지 아이템이고. 하지만 이 음반을 선정한 이유는 바로...
주인공들이 잘생겨서
...솔직히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미녀/미남 가수들이 표지를 떡하니 장식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었을까.
ⓟ 1988 EMI Records Ltd.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가 남긴 유일한 오페라가 바로 이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éas et Mélisande)' 인데, 초연은 고사하고 작곡 당시부터 온갖 스캔들에 시달렸던 작품이었다. 여주인공인 멜리장드 역의 가수를 둘러싸고 원작자인 모리스 메테를링크와 드뷔시가 벌인 줄다리기-결국 드뷔시가 의도한 대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메리 가든(Mary Garden)이 무대에 섰음-, 보수적인 비평가와 청중들이 일제히 행한 비방과 중상모략의 종합 선물 세트가 이 오페라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이 오페라의 음악이 불러 일으킨 대담한 혁신에 대해서도 비난했고, 동시에 이 오페라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를 어설프게 모작한 것이라는 식의 모순된 입장까지 표명했다. 하지만 드레스 리허설과 첫 날 공연에서의 온갖 소동과 냉담한 분위기는 이내 젊은 층의 애호가들과 예술가들이 보여준 열광적인 성원에 파묻히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이 오페라도 이제는 '보수적인' 작품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고, 프랑스 오페라 역사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걸작이 되어 있다. 하지만 CD나 DVD는 그 명성과 평가에 비하면 그다지 많지 않은데, 내가 음반 가게들에서 본 것도 기껏해야 카라얀, 아바도, 그리고 이 CD가 전부였다.
이 음반은 위에 쓴 대로 1941년에 무려 한 달 동안(4월 24일-5월 26일) 파리 음악원 강당에서 녹음되었다. 물론 최초의 전곡 녹음이었는데, 1941년이라면 독일이 이미 프랑스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고 페탱 휘하의 비시 괴뢰정부를 수립시킨 뒤의 일이었다.
녹음에 참여한 주요 가수들은 다음과 같다;
멜리장드: 이렌느 요아힘(Irène Joachim, 소프라노)
펠레아스: 자크 장상(Jacques Jansen, 바리톤)
골로(Golaud): 앙리 에추베리(Henri Etcheverry, 바리톤)
주느비에브(Geneviève): 제르멘느 세르네(Germaine Cernay, 메조소프라노)
아르켈(Arkel): 폴 카바넬(Paul Cabanel, 바리톤)
이뇰드(Yinold): 르일라 벤 세디라(Leïla Ben Sédira, 소프라노)
그 외에 단역으로 양치기(Un Berger) 역에 에밀 루소(Emile Rousseau, 베이스), 의사(Un Médecin) 역에 아르망 나르송(Armand Narçon, 베이스)이 참가했다. 합창단은 이본느 구브르네 합창단(Chœurs Yvonne Gouverné), 관현악은 그냥 '교향악단(Orchestre Symphonique)' 으로만 표기되어 있고, 지휘는 로제르 데조르미에르(Roger Désormière)가 맡았다. 녹음 프로듀서는 루이 베이츠(Louis Beydts)로, 오페레타 등의 작곡가로도 활동했던 인물이다.
2차대전 때 추축국 점령하의 모든 나라가 그랬듯이, 독일의 물자와 인력 공출은 프랑스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연히 이러한 녹음 작업도 온갖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EMI가 복각한 이 CD의 속지에서 자크 장상은 '커팅용 왁스도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프로듀서는 녹음 전에 세심하게 전곡을 4분 단위로 나누어 놓아야 했다. 녹음 때의 실수를 가능한한 방지하기 위해 음악원 시절 지도 교수였던 비쇠르의 피아노 반주 리허설이 매 세션 직전마다 이루어졌다' 고 쓰고 있다.
두시간 반이나 걸리는 이 대작 오페라를 최초로 전곡 녹음한다는 계획은 (점령하에 있다고는 해도) 프랑스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건 일이었을 것이고, 한 달여에 걸친 녹음이 끝난 뒤 1942년에 마침내 파테 마르코니에서 레코드가 나왔다. 하지만 물자 부족과 독일 측의 정치적 견제로 인해 아주 적은 수의 음반만이 유통되었을 뿐이었다. 전쟁 중에 두시간 반도 넘는 대규모 오페라의 레코드(SP로 총 10장)는 대단한 사치품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연주자들은 드뷔시 특유의 음악어법을 최대한 세심하게 그려내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고, 카라얀이 섣불리 이 작품의 특징이라고 했던 '애매함' 은 찾아보기 힘들다. 프랑스인 가수들만의 강점인 정확한 딕션과 표현력에 녹음 당시의 긴장감이 섞여 들어간 노래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 명연기다. 음질과 시대적인 문제를 일단 접는다면, 웬만한 경쟁반들은 단숨에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녹음에 참여한 가수들이 그 뒤로는 이 명연을 뛰어넘는 녹음을 거의 남겨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 전쟁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아힘과 장상은 장수해서 위에 쓴 대로 1988년에 이 녹음을 EMI에서 CD로 복각해 내놓았을 때 회고담을 속지에 기록할 수 있었지만, 세르네는 수도원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가 녹음 2년 뒤인 1943년에 불과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카바넬은 전후에도 계속 활동을 했지만 역시 녹음이 별로 없고, 에추베리와 세디라는 인터넷에서도 프로필 하나 찾기 힘들 정도다. 가수들 뿐 아니라, 지휘자에게도 불행은 끊이지 않았다. 데조르미에르는 1950년대 초반에 실어증 증세를 보여 음악계에서 은퇴해야 했고, 결국 10여 년 동안이나 폐인 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렇기에 이 녹음은 그 가치가 더 귀중해지는 것이다.
(↑ 로제르 데조르미에르)
EMI의 복각판 CD는 이 오페라의 전곡 외에 여백을 메꾸기 위해 매기 테이트(Maggie Teyte)가 알프레드 코르토(Alfred Cortot)의 반주로 부른 드뷔시의 가곡 14곡(1936년 녹음)과, (어쩌면 이 오페라 전곡 녹음보다 더 귀중할지도 모르는) 메리 가든이 드뷔시 자신의 반주로 부른 멜리장드 아리아 한 곡과 아리에타 세 곡(1904년 녹음)이 커플링되어 있다. (참고로 드뷔시가 피아노 롤이 아닌, 음반에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녹음한 것은 이것이 유일한 기록이다.)
다만 이 EMI CD 세트도 이제 절판된 것 같고, 복각 음반계의 신예로 떠올랐던 안단테(Andante)가 새로운 정규 복각판을 내놓을 것이라고 한다. 하이 퀄리티를 기대하는 사람은 솔깃할 소식이다. 그리고 EMI 세트도 절판됐다고는 해도, 아직 몇몇 세트가 살아남아 유통되고 있으므로 구할 수는 있다. (내가 산 세트는 회현 지하상가에서 구한 중고품이지만, 속지 상태도 괜찮고 거의 신품에 가깝다.)
(↑ 1952년 공연 때의 요아힘과 장상)

...솔직히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미녀/미남 가수들이 표지를 떡하니 장식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었을까.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가 남긴 유일한 오페라가 바로 이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éas et Mélisande)' 인데, 초연은 고사하고 작곡 당시부터 온갖 스캔들에 시달렸던 작품이었다. 여주인공인 멜리장드 역의 가수를 둘러싸고 원작자인 모리스 메테를링크와 드뷔시가 벌인 줄다리기-결국 드뷔시가 의도한 대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메리 가든(Mary Garden)이 무대에 섰음-, 보수적인 비평가와 청중들이 일제히 행한 비방과 중상모략의 종합 선물 세트가 이 오페라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이 오페라의 음악이 불러 일으킨 대담한 혁신에 대해서도 비난했고, 동시에 이 오페라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를 어설프게 모작한 것이라는 식의 모순된 입장까지 표명했다. 하지만 드레스 리허설과 첫 날 공연에서의 온갖 소동과 냉담한 분위기는 이내 젊은 층의 애호가들과 예술가들이 보여준 열광적인 성원에 파묻히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이 오페라도 이제는 '보수적인' 작품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고, 프랑스 오페라 역사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걸작이 되어 있다. 하지만 CD나 DVD는 그 명성과 평가에 비하면 그다지 많지 않은데, 내가 음반 가게들에서 본 것도 기껏해야 카라얀, 아바도, 그리고 이 CD가 전부였다.
이 음반은 위에 쓴 대로 1941년에 무려 한 달 동안(4월 24일-5월 26일) 파리 음악원 강당에서 녹음되었다. 물론 최초의 전곡 녹음이었는데, 1941년이라면 독일이 이미 프랑스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고 페탱 휘하의 비시 괴뢰정부를 수립시킨 뒤의 일이었다.
녹음에 참여한 주요 가수들은 다음과 같다;



주느비에브(Geneviève): 제르멘느 세르네(Germaine Cernay, 메조소프라노)

이뇰드(Yinold): 르일라 벤 세디라(Leïla Ben Sédira, 소프라노)
그 외에 단역으로 양치기(Un Berger) 역에 에밀 루소(Emile Rousseau, 베이스), 의사(Un Médecin) 역에 아르망 나르송(Armand Narçon, 베이스)이 참가했다. 합창단은 이본느 구브르네 합창단(Chœurs Yvonne Gouverné), 관현악은 그냥 '교향악단(Orchestre Symphonique)' 으로만 표기되어 있고, 지휘는 로제르 데조르미에르(Roger Désormière)가 맡았다. 녹음 프로듀서는 루이 베이츠(Louis Beydts)로, 오페레타 등의 작곡가로도 활동했던 인물이다.
2차대전 때 추축국 점령하의 모든 나라가 그랬듯이, 독일의 물자와 인력 공출은 프랑스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연히 이러한 녹음 작업도 온갖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EMI가 복각한 이 CD의 속지에서 자크 장상은 '커팅용 왁스도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프로듀서는 녹음 전에 세심하게 전곡을 4분 단위로 나누어 놓아야 했다. 녹음 때의 실수를 가능한한 방지하기 위해 음악원 시절 지도 교수였던 비쇠르의 피아노 반주 리허설이 매 세션 직전마다 이루어졌다' 고 쓰고 있다.
두시간 반이나 걸리는 이 대작 오페라를 최초로 전곡 녹음한다는 계획은 (점령하에 있다고는 해도) 프랑스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건 일이었을 것이고, 한 달여에 걸친 녹음이 끝난 뒤 1942년에 마침내 파테 마르코니에서 레코드가 나왔다. 하지만 물자 부족과 독일 측의 정치적 견제로 인해 아주 적은 수의 음반만이 유통되었을 뿐이었다. 전쟁 중에 두시간 반도 넘는 대규모 오페라의 레코드(SP로 총 10장)는 대단한 사치품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연주자들은 드뷔시 특유의 음악어법을 최대한 세심하게 그려내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고, 카라얀이 섣불리 이 작품의 특징이라고 했던 '애매함' 은 찾아보기 힘들다. 프랑스인 가수들만의 강점인 정확한 딕션과 표현력에 녹음 당시의 긴장감이 섞여 들어간 노래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 명연기다. 음질과 시대적인 문제를 일단 접는다면, 웬만한 경쟁반들은 단숨에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녹음에 참여한 가수들이 그 뒤로는 이 명연을 뛰어넘는 녹음을 거의 남겨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 전쟁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아힘과 장상은 장수해서 위에 쓴 대로 1988년에 이 녹음을 EMI에서 CD로 복각해 내놓았을 때 회고담을 속지에 기록할 수 있었지만, 세르네는 수도원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가 녹음 2년 뒤인 1943년에 불과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카바넬은 전후에도 계속 활동을 했지만 역시 녹음이 별로 없고, 에추베리와 세디라는 인터넷에서도 프로필 하나 찾기 힘들 정도다. 가수들 뿐 아니라, 지휘자에게도 불행은 끊이지 않았다. 데조르미에르는 1950년대 초반에 실어증 증세를 보여 음악계에서 은퇴해야 했고, 결국 10여 년 동안이나 폐인 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렇기에 이 녹음은 그 가치가 더 귀중해지는 것이다.

EMI의 복각판 CD는 이 오페라의 전곡 외에 여백을 메꾸기 위해 매기 테이트(Maggie Teyte)가 알프레드 코르토(Alfred Cortot)의 반주로 부른 드뷔시의 가곡 14곡(1936년 녹음)과, (어쩌면 이 오페라 전곡 녹음보다 더 귀중할지도 모르는) 메리 가든이 드뷔시 자신의 반주로 부른 멜리장드 아리아 한 곡과 아리에타 세 곡(1904년 녹음)이 커플링되어 있다. (참고로 드뷔시가 피아노 롤이 아닌, 음반에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녹음한 것은 이것이 유일한 기록이다.)
다만 이 EMI CD 세트도 이제 절판된 것 같고, 복각 음반계의 신예로 떠올랐던 안단테(Andante)가 새로운 정규 복각판을 내놓을 것이라고 한다. 하이 퀄리티를 기대하는 사람은 솔깃할 소식이다. 그리고 EMI 세트도 절판됐다고는 해도, 아직 몇몇 세트가 살아남아 유통되고 있으므로 구할 수는 있다. (내가 산 세트는 회현 지하상가에서 구한 중고품이지만, 속지 상태도 괜찮고 거의 신품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