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폐간된 '레코드포럼' 이라는 잡지에서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놓고 비교한 시리즈의 글을 스크랩한 것을 오랫만에 꺼내보게 되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교향곡인 41번 '주피터' 와, 역시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교향곡을 놓고 쓴 글이었는데, 두 작곡가가 마지막 순간에 '비전문 분야' 를 걸고 한판 승부를 건 작품이라는 것이 글의 골자였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당시 '성악 전문 작곡가' 라는 평판에 반기라도 들고 싶었는지, 4악장에서 갑자기 복잡한 푸가 양식을 선보여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베토벤도 마찬가지로 '기악 전문 작곡가' 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서였는지, 4악장에 합창과 독창을 넣어 성악+관현악의 거대한 피날레를 시도했고.
모차르트야 성악곡 말고도 주옥같은 기악 작품이 수도 없이 많은, 그야말로 '선천적 천재' 인데 반해 베토벤은 (물론 그 자신의 재능도 있기는 했겠지만) 평생을 고민하고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자수성가한 대가였다. 그나마 베토벤은 성악 장르에 있어서는 평생 고전을 면치 못했고, 당대의 성악가들도 그의 성악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1792년 본 시절의 후원자 발트슈타인 백작으로부터 '하이든의 손에서 모차르트의 정신을 이어받아라' 는 뜻깊은 말을 듣고 빈에 유학을 오게 된 베토벤은 (아직도 모차르트를 죽인 악한으로 오인받고 있는)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성악 작법을 배우게 되었는데, 이내 살리에리는 제자 베토벤에 대해 질투 섞인 칭찬을 나불거리고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살리에리가 베토벤의 성악 작곡에 대한 천재성을 높이 평가했는지는 의문인데, 실제로 베토벤은 당시에 작곡가로서 보다는 거의 악마적인 즉흥 연주 솜씨를 자랑하는 피아노의 명수로 알려져 있었다. 어쨌든 빈 유학 초기에 베토벤은 살리에리로부터 이탈리아의 화려한 성악 양식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1795~96년 경에는 나름대로 공을 들여서 셰나와 아리아 '아, 믿지 못할 사람이여!(Scena ed Aria 'Ah, perfido!' op.65)' 를 작곡했다.
연주 시간이 약 13분이나 되는 이 장대한 곡은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 에 나오는 타이틀 롤 (또는 여성명 레오노레)의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흉악한 자여, 어디로 가는가?!' 와 맞먹는 길이와 기교를 자랑한다. 한 마디로 '소프라노 잡는' 곡인데, 위에 쓴 것처럼 작곡 연대도 확실치 않고 그 경위도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작품이다.
다만,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이 곡이 당시 프라하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드라마틱 소프라노 가수인 요제파 두셱(Josepha Duschek)을 위해 쓰여졌고, 그녀가 초연했던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 에 나오는 돈나 엘비라의 아리아와 대규모 콘서트 아리아인 '나의 아름다운 연인이여(K.272)' 를 참고로 작곡한 것이라는 보고가 나와 있다.
가사 또한 아직 작가와 출처가 불분명 한데, 초반부의 셰나(0:00~4:07) 만이 당대의 유명한 문인이었던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Pietro Metastasio)의 것으로 밝혀져 있을 뿐이다. 셰나는 C장조로 시작하기는 하지만, 몇 마디 가지 않아 갑작스러운 G장조의 딸림화음으로 브레이크가 걸리고 이어 소프라노의 격렬한 레치타티보풍 솔로가 시작된다. 셰나 전체의 조성과 빠르기는 매우 불안정하고, 그 만큼 극적인 효과가 극대화되고 있다.
Ah, perfido! spergiuro
Barbaro traditor, tu parti!
E son questi gl'ultimi tuoi congedi!
Ove s'intese tirannia più crudel?
Va, scellerato! Va, pur fuggi me,
L'ira de' Numi non fuggirai!
Se v'è giustizia in Ciel,
Se v'è pietà,
Congiureranno a gara tutti a punirti!
Ombra seguace, presente ovunque vai,
Vedrò le mie vendette;
Io già le godo immaginando;
I fulmini ti veggo già balenar d'intorno.
아, 믿지 못할 사람이여! 나를 떠나려 하나요?!
이게 마지막 작별인가요?!
그 어디에 이보다 잔인한 배신이 있다는 말인가요?
가세요! 내게서 떠나세요, 나쁜 사람!
당신은 신의 화를 면치 못할 거에요!
하늘이 나를 불쌍히 여겨 심판을 한다면
당신은 큰 댓가를 치뤄야 할거에요!
당신이 가는 곳 어디에나 악마가 나타나듯
내 앙갚음을 받게 될거에요.
생각만 해도 기뻐요.
벌써 당신 앞날이 불보듯 뻔하네요.
이렇게 미저리 풍으로 길길이 날뛰던 여주인공은 이내 변심을 하고;
Ah, no! ah no! Fermate, vindici Dei!
Risparmiate quel cor, ferite il mio!
S'ei non è più qual era,
Son io qual fui
Per lui vivea,
Voglio morir per lui!
아, 아녜요, 아녜요! 신이시여, 앙갚음이라니요!
그를 용서하고 대신 나를 벌하세요!
이제 과거의 그가 아니라면, 내가 생각을 바꿔야죠.
그에게서 떠나겠어요. 그를 위해 죽겠어요!
이어 관현악의 인트로가 나오면서 아리아 부분이 시작되는데, 템포는 대체로 느리게 설정되어 있어서 서정성이 극대화되어 있다.
Per pietà, non dirmi addio,
Di te priva che farò?
Tu lo sai, bell'idol mio,
Io d'affanno morirò. (x2)
제발 안녕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요.
당신 없이 어찌 하나요?
내 사랑, 당신은 잘 알 거에요.
나는 슬픔 속에서 죽을 거에요. (반복)
하지만 중간부에 베토벤 자신의 성미 탓인지 또 한 번 원망섞인 감정을 격렬히 토해내는 악구가 포함되어 있다.
Ah crudel! crudel!
Tu vuoi ch'io mora!
Tu non hai pietà di me?
Perchè rendi a chi t'adora
Così barbara mercè?
아, 잔인한, 잔인한 당신!
내가 죽기를 바라나요?!
내게 동정심이라고는 조금도 느끼지 않나요?
어떻게 당신을 바라는 이에게
그토록 모질게 구나요?
물론 이 폭풍은 잠시 만이고, 다시 느리고 서정적인 원래 분위기로 돌아간다. 하지만 'Ah crudel!...' 과 밑의 'Dite voi...' 두 구절은 이후에도 계속 교차되면서 반복되어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Dite voi, se in tanto affanno
Non son degna di pietà?
진심으로 말해 주세요.
절망에 빠진 내가 동정받을 가치도 없어 보이나요?
이 작품은 바그너 아리아만큼은 아니겠지만 연주 시간도 그렇고, 무엇보다 부르기가 꽤나 어려운 곡이다. 셰나에서는 광범위한 희노애락의 표현이 요구되고, 아리아에서도 성악가들에게 과감한 도전을 요하는 기교적인 악구가 곳곳에서 출몰하는 탓에 드라마틱 계열의 소프라노들이 가끔 다룰 뿐이다.
음반으로서 가장 구하기 쉬운 것이 1991년 베를린 송년음악회 실황인 '베토벤 인 베를린' 인데, 영국 출신 소프라노인 셰릴 스튜더가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의 베를린 필과 협연했다.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한 연주였지만 뭔가가 허전했다. 그래서 일단 곡 자체의 고전적인 절도가 좀 상쇄되더라도, 극적인 이미지를 한껏 강조한 연주는 없나 하고 이것저것 기웃거려 보았다.
ⓟ 2002 Toshiba EMI Co., Ltd.
그리고 마침내 그 대안으로 찾아낸 음반이 바로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의 것이었다. 니콜라 레시뇨(Nicola Rescigno) 지휘의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Orchestre de la Société des Concerts du Conservatoire)이 협연한 1963~64년 녹음인데, 솔직히 음악만을 놓고 따져보면 칼라스의 목소리는 스튜더만큼 정갈하거나 세련되지도 못하고 오히려 투박하게 느껴진다.
당시 칼라스는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열애로 성악가 생활을 등한시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1년 뒤인 1965년에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 공연한 것이 사실상 최후의 '제대로 된' 공연이 되었다. 이 녹음을 하기 전에도 맹연습을 거듭해 기교의 난점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입 속에서 몇 번을 굴려서 코로 내뱉는 듯한 독특한 중음역 발성과 고음의 쇳소리는 여전했다. 순수한 성악적 관점에서 이 곡은 스튜더의 그것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곡의 드라마틱한 성격 표현에 있어서 칼라스는 자신의 성악적인 결점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떠나간 연인에게 신랄한 저주를 퍼붓다가도 다시금 연약한 속죄양의 모습을 보이는 등 심경 변화가 매우 격렬한 셰나에서 특히 이러한 표현력은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 되고 있다. 이 곡을 '부른다' 기 보다는 '연기한다' 라고 생각될 정도로 소름끼치는 명연주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은 칼라스의 성악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시도한 컴백 공연 리허설의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 1976년 이른 봄에 마지막 거처였던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공연의 지휘자로 지목된 제프리 테이트가 피아노 반주를 맡아 며칠 동안 리허설을 되풀이 했는데, 그 중 이 곡의 리허설 녹음(3월 3일)이 지금까지 남아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아리아 초반부까지만 녹음된 데다가, 객석에서 누군가가-공연 관계자인가, 아니면 파파라치인가?-카세트 테이프로 몰래 잡은 듯한 매우 조악한 소리라서 그 동안 해적반으로만 돌다가 2003년에 EMI가 칼라스의 라이브 음반 시리즈 중 하나에 곁다리로 끼워서 공식 발매했다.
ⓟ 2003 EMI Records Ltd.
너무 열악한 소리라서 듣기는 힘들지만, 칼라스의 목소리는 확실히 잡혀 있다. 셰나의 'Vedrò le mie vendette' 부분(1:34~1:44)은 가사가 틀려서 잠깐 끊었다가 다시 부르기도 하는데, 솔직히 듣기에 너무 괴롭다. 토스카니니와 번스타인의 마지막 콘서트 만큼이나 잔인한 기록인데, 결과적으로 칼라스의 컴백 시도는 좌절되었다.
그녀는 한 파파라치가 극장에 몰래 들어와 찍은 사진과 혹평이 실린 '프랑스 디망슈' 의 기사를 보고는 생전에 마지막이 되는 고소장을 제출했고, 소송이 진행되는 중이었던 1977년 9월 16일에 영욕의 삶을 마감했다. 결국 승소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칼라스는 이미 뼛가루로 변해 있었고. 이 리허설 녹음은 매우 의미심장한 다음의 가사에서 끝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