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

레어 애청곡선-62.베토벤

머나먼정글 2007. 1. 16. 11:39
지금은 폐간된 '레코드포럼' 이라는 잡지에서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놓고 비교한 시리즈의 글을 스크랩한 것을 오랫만에 꺼내보게 되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교향곡인 41번 '주피터' 와, 역시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교향곡을 놓고 쓴 글이었는데, 두 작곡가가 마지막 순간에 '비전문 분야' 를 걸고 한판 승부를 건 작품이라는 것이 글의 골자였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당시 '성악 전문 작곡가' 라는 평판에 반기라도 들고 싶었는지, 4악장에서 갑자기 복잡한 푸가 양식을 선보여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베토벤도 마찬가지로 '기악 전문 작곡가' 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서였는지, 4악장에 합창과 독창을 넣어 성악+관현악의 거대한 피날레를 시도했고.

모차르트야 성악곡 말고도 주옥같은 기악 작품이 수도 없이 많은, 그야말로 '선천적 천재' 인데 반해 베토벤은 (물론 그 자신의 재능도 있기는 했겠지만) 평생을 고민하고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자수성가한 대가였다. 그나마 베토벤은 성악 장르에 있어서는 평생 고전을 면치 못했고, 당대의 성악가들도 그의 성악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1792년 본 시절의 후원자 발트슈타인 백작으로부터 '하이든의 손에서 모차르트의 정신을 이어받아라' 는 뜻깊은 말을 듣고 빈에 유학을 오게 된 베토벤은 (아직도 모차르트를 죽인 악한으로 오인받고 있는)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성악 작법을 배우게 되었는데, 이내 살리에리는 제자 베토벤에 대해 질투 섞인 칭찬을 나불거리고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살리에리가 베토벤의 성악 작곡에 대한 천재성을 높이 평가했는지는 의문인데, 실제로 베토벤은 당시에 작곡가로서 보다는 거의 악마적인 즉흥 연주 솜씨를 자랑하는 피아노의 명수로 알려져 있었다. 어쨌든 빈 유학 초기에 베토벤은 살리에리로부터 이탈리아의 화려한 성악 양식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1795~96년 경에는 나름대로 공을 들여서 셰나와 아리아 '아, 믿지 못할 사람이여!(Scena ed Aria 'Ah, perfido!' op.65)' 를 작곡했다.

연주 시간이 약 13분이나 되는 이 장대한 곡은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 에 나오는 타이틀 롤 (또는 여성명 레오노레)의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흉악한 자여, 어디로 가는가?!' 와 맞먹는 길이와 기교를 자랑한다. 한 마디로 '소프라노 잡는' 곡인데, 위에 쓴 것처럼 작곡 연대도 확실치 않고 그 경위도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