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라이브 콘서트 시리즈-3.푸르트벵글러 (1951)
장소: 뮌헨 독일 박물관 회의장(Deutsches Museum, Kongresshalle)
관현악: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iener Philharmoniker)
지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
-프로그램-
1부: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서곡 '코리올란' 작품 62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 교향곡 제 1번 B플랫장조 작품 38 '봄'
2부: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 1824-1896): 교향곡 제 4번 E플랫장조 '낭만적' (뢰베판)


*음반: Tahra Furt 1084-87 (상단. 베토벤/슈만) & Tahra Furt 1090-93 (하단. 브루크너)
(그리고 전집물이라 부담될 경우, 이 콘서트 위주로만 담은 두 장짜리 세트도 Orfeo d'Or 레이블로 나와 있습니다. 아래 짤방 참조.)

독일의 유명한 도시를 열거해 보라고 하면 세 곳은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데, 바로 수도인 베를린과 함부르크, 그리고 뮌헨이다. 특히 바이에른 주의 주도이기도 한 뮌헨은 남부 독일의 사실상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나마 기후도 독일에서는 온난한 축에 속하고 사람들의 품성도 낙천적이고 서글서글하다고 한다. 그리고 유명한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 의 고장이기도 하고.
푸르트벵글러는 비록 베를린에서 태어났고, 출생지의 관현악단 지휘자 자리를 끝까지 지키기는 했지만 그가 실제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뮌헨이었다. 그래서 푸르트벵글러는 사실상 남독일 사람으로서의 감수성을 지니며 자라났는데, 지휘자 데뷰 또한 뮌헨의 카임 관현악단(현 뮌헨 필)과 함께 했다.
일단 규모부터 독일 제 3의 도시인 뮌헨인 만큼, 어느 음악인이던 독일 투어를 하면 꼭 거쳐가는 도시이다. 푸르트벵글러 역시 베를린 필 또는 빈 필과 독일 투어를 할 때면 거의 매번 뮌헨에서 연주회를 가졌고, 말년인 1950년대에는 테이프의 도입 덕택에 바이에른 방송국(Bayerischer Rundfunk)에서 몇몇 연주회의 실황을 녹음하기도 했다.
1951년 가을에 푸르트벵글러는 빈 필을 이끌고 유럽 투어를 떠났다. 10월 5일에 스위스의 몽트뢰를 시작으로 로잔, 취리히, 바젤, 파리를 거쳐 뮌스터, 함부르크, 하노버, 도르트문트, 부퍼탈 등 독일의 주요 도시를 계속 순회했는데, 그 마지막 종착점이 뮌헨이었다.
이 투어 중 녹음으로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 10월 22일의 슈투트가르트-데게를로흐 연주회와 이 뮌헨 연주회다. 두 연주회 모두 2부 메인 프로그램이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이었는데, 1941년의 불완전한 에어체크 레코딩을 빼면 이 두 개가 푸르트벵글러의 브루크너 4번 녹음으로서는 전부다.
푸르트벵글러의 전후 뮌헨 연주회는 모두 독일 박물관의 회의장에서 개최되었는데, 2차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던 곳이었다. 회의장이라고는 해도 거의 콘서트홀 수준의 시설을 갖춘 모양이었는데, 타임-라이프의 2차대전 화보집에 실린 나치 대관구 장관 장례식의 컬러 사진을 보면 파이프 오르간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이 곳에서는 그 후 지난 번의 'CD찾아 삼만리' 에서도 소개한 쿠벨릭 지휘의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 연주회도 있었고, 번스타인과 이스라엘 필의 독일 투어 때에도 이 곳에서 연주회를 가진 바 있었다. 하지만 바로 맞은편인 이자르강 기슭에 가스타이크 필하모니가 완공된 1980년대 이후로는 연주회장으로서의 기능이 많이 축소된 듯 하다.
푸르트벵글러는 1950년대 유럽 각지에서 연주 여행을 가졌지만, 그 중 협연자를 대동하고 가진 연주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예 (요즘 관점에서는 '무식하게') 죄다 교향곡으로 채운 연주회도 적지 않았고, 이 뮌헨 연주회도 마찬가지로 관현악 레퍼토리로만 채워넣은 프로그램이었다.
1부 첫 곡으로 선곡된 베토벤의 서곡 '코리올란' 은 '비극을 극복해 내는 영웅적인 승리' 라는 도식이 대부분인 베토벤 중기의 작품들 중에서 이례적으로 비극적인 분위기를 끝까지 유지하는 곡이다. 콜린의 원작 희곡이 비극이라는 점이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물이지만, 베토벤이 비극적인 운명에 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면모도 있음을 보여주는 곡이다.
푸르트벵글러의 '코리올란' 명연으로 흔히 꼽히는 것이 베를린 필과의 1943년 실황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이 빚어낸, 그야말로 '순도 100% 비극' 인데, 잔뜩 힘이 들어간 스트링과 날벼락같이 내리찍는 팀파니 해머링이 인상적인 오프닝부터 (비록 마지막 피치카토들이 잘리기는 했어도) 쥐죽은 듯 끝나는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절대로 놓지 않는 엄청난 집중력이 인상적인 연주다.
이 연주는 전시 녹음의 긴장감과, 1947년 빈 필과 만든 EMI 스튜디오 녹음의 좋은 음향 조건 모두 미달되는 감이 없지 않다. 오프닝에서부터 자꾸 어긋나는 팀파니부터 신경이 쓰이는데, 그래도 곡이 가진 비장미나 푸르트벵글러만의 독특한 해석-2주제가 나올 즈음 살짝 템포를 떨어뜨린다거나, 막바지의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팀파니 롤 가필-은 여전하다.
조금 실망스러웠던 서곡 다음에 연주된 곡은 슈만의 교향곡 1번이었다. 로베르트와 클라라 부부의 깨가 쏟아지는 신혼 생활을 자연스레 연상시키는 곡인데, 다른 슈만 교향곡들과 마찬가지로 관현악법에 난점이 많은 곡이지만 연주 빈도는 (그나마) 높은 편이다.
하지만 '곡의 표제성' 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푸르트벵글러는 이 곡의 '봄' 이라는 표제에 구애받지 않는 개성적인 연주를 펼쳐 보였다. 특히 1악장 전개부 말미의 강한 트리플 포르테(fff)가 압권인데, 그 전부터 갑자기 템포를 떨어뜨려 놓고 금관과 팀파니를 전면에 돌출시켜 터뜨리는 대목(6:49~7:04)은 그 표제가 무색해질 정도다.
이러한 폭풍우 필의 해석 외에도 코다로 가면서 점점 빨라지는 도중에 현과 목관이 숨좀 돌리듯이 풍부한 선율미를 뽐내는 부분이 있는데(9:15~10:21), 이 부분을 이렇게 정감 풍부하게 연주한 다른 녹음을 지금껏 듣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석양이 지는 가운데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부대의 염장을 생각나게 하는(???) 차분하고 서정적인 2악장도 인상적이지만, 역시 중간부에서는 푸르트벵글러 특유의 드라마틱한 구도가 살아난다.
론도 형식이나 마찬가지인 3악장 스케르초는 지휘자에 따라 템포 설정에 큰 차이가 나는 대목인데, 두 개의 중간부(트리오) 중 두 번째 단락에 템포 설정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쿠벨릭 같은 지휘자는 앞선 스케르초 주부와 마찬가지 템포로 연주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푸르트벵글러와 아벤트로트 같은 지휘자들은 이 부분을 좀 다르게 보았는데, 첫 번째 트리오(1:24~3:08)에서는 좀 빠르게 연주하라는 지시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 다 두 번째 트리오도 첫 번째 트리오를 본따 빠른 템포를 택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악보에는 없는 해석이기는 해도 대조의 묘미가 확실해서 더 효과적인 것 같다(3:47~4:48). 마지막 4악장은 1악장의 해석과 비슷한 양상이지만,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는 것 같다. 빈 필만의 독특한 구식 오보에 소리를 비롯한 목관이 재기발랄하게 연주하고는 있지만, 녹음이 그 톤을 살려주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2부에서 연주된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은 브루크너 자신이 직접 표제를 붙인 유일한 교향곡이다. (3번에 '바그너' 라고 붙어 있는 것은 제자들이 멋대로 붙인 것임) '낭만적' 이라는 제목 답게 이전 교향곡과는 여러 모로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곡인데, 장조(major)의 조성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교향곡이기도 하다.
4번의 연주에는 일반적으로 1881년에 개정된 하스판과 1886년에 개정된 노바크판이 쓰이는데, 양자의 차이점은 별로 없다. 하지만 푸르트벵글러는 이 곡과 7번, 그리고 8번의 경우에는 하스판을 사용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다른 판본으로 대체해서 연주했다. 그 다른 판본이란 페르디난트 뢰베와 프란츠 샬크, 막스 폰 오버라이트너 등 브루크너의 제자들이 (사실상 무단으로) 개정한 소위 '개찬판' 이었다. 푸르트벵글러는 4번 연주에 1889년에 구트만 출판사에서 나온 뢰베의 개찬판을 사용했다.
하지만 3악장의 경우에는 또 뢰베판과도 틀린 점이 발견되는데, 뢰베판의 경우에는 A-B-A'의 정통적인 3부 형식의 스케르초에서 후반부 A' 를 일부 삭제해 버렸다. 브루크너의 스케르초에서 A'는 사실상 A의 반복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이 삭제로 인해 3악장의 균형이 크게 깨져 버렸다.
푸르트벵글러는 삭제된 부분을 복원해서 원래 길이에 가깝게 맞추었는데, 이러한 까닭에 푸르트벵글러의 4번 교향곡 연주는 그만이 연주한 유일한 판본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4악장에서 뢰베가 행한 삭제는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연주하고 있다.) 물론 한없이 바그너틱한 음향으로 만들어버린 개찬판을 사용한 것에 대한 비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판본의 문제를 감수한다면, 이 브루크너 연주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들린다. 푸르트벵글러는 브루크너를 '모든 낭만주의 방법론의 위대한 계승자' 라고 보았는데, 그래서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브루크너 교향곡은 요즘 해석들과 비교해 보면 상당히 낙차 큰 다이내믹과 루바토를 마구 쓰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슈만에서는 표제성을 무시해버린 푸르트벵글러였지만, 브루크너에서는 오히려 그 표제성을 극대화시키는 형국이 된 셈이다. 바로 이러한 모순점이 푸르트벵글러의 음악 만들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낳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이 곡이 지니고 있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성격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연주라고 할 수도 있다.
1악장부터 푸르트벵글러의 자유자재한 루바토가 빛을 발하는데, '코리올란' 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주제(2:13~3:21)에서 템포를 살짝 떨어뜨려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인상을 최대한 강조하고 있다. 그러다가도 소위 '브루크너 시퀀스' 의 집요한 반복이나 금관의 연주가 두드러지는 악구가 나타나면 다시 템포를 서서히 올려서 휘몰아치듯이 내달리는데, 그가 베토벤의 교향곡이나 바그너의 악극들을 다루는 방식과 상통한다.
비교적 울적한 악상이 지배하는 2악장은 열악한 녹음 상태에도 불구하고 빈 필의 스트링이 '노래하는' 면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인데, 특히 첼로 파트의 연주가 일품이다. 호른도 슈투트가르트에서 보여준 몇몇 실수를 의식했는지 꼼꼼하게 스트링이 넘겨주는 댓구들을 받아내고 있다.
아마 베를린 필과 연주했다면 이러한 느리고 서정적인 부분에서 어느 정도 손해를 봤을 것이다. 푸르트벵글러도 이 점을 감안했는지 루바토도 훨씬 적게 쓰고 있고, 전체적으로 상당히 담백하게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1악장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뒤에 밋밋하게 들릴 때도 있다)
3악장은 독일 특유의 '숲 묘사' 에 쓰이는 호른의 사냥 나팔풍 오프닝이 상징하듯 상당히 토속적인 (그래서 더욱 브루크너스러운) 스케르초인데, 푸르트벵글러의 자유자재한 루바토가 다시금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다만 트리오로 접어들 때 뢰베가 아예 그 경과구를 새로 작곡해서 집어넣었기 때문에(4:04~4:11), 하스판이나 노바크판 연주를 듣다가 이 녹음을 들으면 좀 생경해진다. (코다도 마찬가지)
트리오에서는 독일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같은 단순소박한 멜로디가 조용하게 들리기 시작하는데, 물론 스트링이 그것을 넘겨 받을 때에는 좀 우아한 분위기로 바뀐다. 악보가 없어서 이 부분도 개찬판만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트링이 등장할 때면 상당히 로맨틱한 분위기가 나는 것도 아마 푸르트벵글러의 해석 때문이 아닐지 모르겠다.
마지막 4악장은 기존의 브루크너 교향곡들과는 달리 첫머리에서 원래 조성으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 특이하다. 무거운 단조의 행진으로 시작해 부풀어 오르면서 금관 주도의 전 관현악이 준엄한 첫 주제(1:15~1:35)를 연주하는데, 이 부분에서 푸르트벵글러는 의외로 템포를 일관성있게 가져가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마지막 악장이 루바토 폭이 가장 좁은 편이다.)
뢰베가 가필한 심벌즈가 울려퍼지면서 1악장 코다의 강한 E플랫장조 엔딩이 잠시 인용된 뒤에도(2:32~3:03) 이 곡은 여전히 단조로 진행된다. 아마 이러한 조성의 일탈 자체에서 이 악장의 극적 효과가 생기기 때문에 푸르트벵글러가 템포를 마구 뒤흔들지 않고 진행시킨 것 같다. 원조인 E플랫장조로 완전히 복귀하는 것은 코다(17:16~)에 가서야 이루어지는데, 이 부분에서 푸르트벵글러는 마치 '파르지팔' 이나 '반지' 를 연상케 하는 개찬판 음향을 특히나 신경쓴 모양이다.
마지막 코다에서 울려퍼지는 전 관현악의 총주(19:10~)는 금관을 앞세워 찬란하게 연주되지만, 그 절정감이 좀 떨어지는 감이 없지 않다. 뢰베의 개찬판 자체가 이 곡의 엔딩에서 1악장의 연관성을 상당 부분 약화시켰기 때문에 '격화소양' 의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고, 단원들이 고된 투어 일정으로 지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푸르트벵글러가 전후 뮌헨에서 남긴 실황 녹음들은 공통적인 단점을 공유하고 있다. 바로 녹음의 질. 물론 테이프를 사용했기 때문에, 주로 래커판이나 아세테이트판으로 남겨진 이탈리아 실황에 비하면 음질은 그다지 나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소리의 질감이 탁하고 딱딱한 것이 문제인데, 빈 필과 호흡을 맞춘 공연의 경우에는 빈 필 특유의 풍성한 스트링이 그 만큼 손해를 많이 보게 된다.
하지만 불과 며칠 전의 슈투트가르트 녹음이 월등한 음질을 자랑함에도 굳이 이 콘서트를 고른 것은, 푸르트벵글러 특유의 드라마틱한 해석이 이 뮌헨 공연에서 더욱 더 적극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유일한 녹음인 슈만 교향곡 1번에서 꽤나 파격적인 모습이 두드러졌고, 이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개찬판을 사용한 브루크너에서도 푸르트벵글러식의 접근법이 두드러지게 강조되고 있다. 푸르트벵글러가 보여 주는 이러한 자신감은 역시 '제 2의 고향' 에서의 연주였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