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

특별 기획(?): 모차르트 주물럭-최종회

머나먼정글 2006. 12. 26. 22:37
이번 사례는 '주물럭' 이 '생고기' 로 변한(???) 아주 특이한 경우이다.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내 복원했기 때문인데, 어지간한 행운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역사 속의 한 장면인 셈이다.

모차르트의 관악 협주곡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네 곡 남아 있는 호른 협주곡들인데, 이 작품들은 지금도 대학교 입학 시험이나 관현악단 오디션 때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로 여전히 남아 있다. 뱀다리로, 영화 '국경의 남쪽' 에서 호르니스트 김선호(차승원 분)가 대동강변에서 애인에게 연주해준 곡도 호른 협주곡 제 3번의 2악장이었다.

그리고 이들 협주곡 외에도 단악장 작품인 알레그로와 론도가 남아 있는데,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론도 E플랫장조(Rondo for horn and orchestra in E flat major, K.371)다.

이 론도는 여전히 단편만 남아 있는 알레그로 K.370b와 함께 작곡되었는데, 아마 완성되었다면 모차르트의 첫 번째 호른 협주곡이 되었을 작품의 일부였다. 1781년 3월 21일로 기입되어 있는 모차르트 자필 초고가 유일하게 남아 있던 자료였는데, 그나마 첫 두 페이지만 관현악 편곡이 모두 완료되어 있었다.

나머지 관현악 편곡은 바이올린 파트나 베이스 파트만이 단편적으로 기입되어 있는 상태였고, 그나마 통상 론도 형식의 B 부분에 해당하는 28-88마디는 악보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래서 이 곡을 연주할 때는 모차르트 연구가인 에릭 스미스(1편에서도 소개된 인물)가 B 부분을 새로 써넣은 악보를 사용해야 했다. 적어도 1990년까지는 그랬다.

1989년에 에릭 스미스는 마리 롤프(Marie Rolf)라는 교수에게서 아주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녀가 이 곡의 분실된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오래된 악보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스미스는 곧 롤프에게 악보의 사본을 팩시밀리로 전송해 달라고 요청했고, 검토한 결과 분실되었다고 여겨졌던 28-88마디의 악보임이 판명되었다.

롤프가 발견한 악보는 네 페이지 분량으로, 온전히 기입되어 있는 호른 독주 파트 외에 이전의 초고처럼 바이올린과 베이스 위주로 대강의 관현악 편곡이 되어 있는 형태의 것이었다. 스미스는 관현악 부분을 보충 편곡해서 이듬해인 1990년에 발표했고, 이 새로운 완성판은 그 해 11월에 티모시 브라운(Timothy Brown)의 독주와 케네스 실리토(Kenneth Sillito)가 지휘하는 세인트 마틴 아카데미 합주단(Academy of St.Martin-in-the-Fields)이 세계 최초로 녹음했다.

이 녹음은 필립스의 모차르트 대전집 중 부록 격이자 가장 마지막 세트인 'Rarities & Surprises' 에 포함되었는데, 그와는 별도로 관악 협주곡만 모은 세트에는 미완성 작품으로 여겨졌던 시절(1988)의 연주가 들어 있어서 좋은 비교 거리가 되고 있다. 관악 협주곡 세트의 연주는 페터 담(Peter Damm)의 독주와 네빌 매리너(Neville Marriner) 지휘의 세인트 마틴 아카데미 합주단이 맡았다.

두 연주를 비교해 보면 처음에는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문제의 B 부분에 들어가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기존 미완성판에서는 0:30~0:59 부분이, 새 완성판에서는 0:28~1:17 부분이 통상적인 론도 형식의 B 부분이다. (참고로 이 곡의 형식은 A-B-A'-C-A"-B'-카덴차-A"'(코다)로, 소나타 형식과 론도 형식의 혼합 형태임)

스미스가 손을 본 미완성판은 A 부분과의 균형을 생각해서였는지, B 부분도 비슷한 길이로 새로 작업하고 호른 독주의 짧은 애드립 악구로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모차르트 자신은 오히려 B 부분을 좀 더 늘여서 약간의 파격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론도라는 형식 자체가 A 부분이 세 번 이상은 반복되므로, 그러한 지루함을 덜기 위해 B와 C에 좀 더 비중을 두었으리라 생각된다.

롤프가 새로이 발견한 자료 덕에, 미완성 또는 분실 작품에 대한 후대 학자들의 접근 방식이 작곡가 자신의 의도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실증한 셈이 되었다. 물론 스미스가 그러한 새로운 발견에 대해 원통하게 생각한 것은 결코 아니었고, 오히려 새 원고를 가지고 손수 관현악 편곡을 해 신판으로 인정했다는 것도 스미스 자신의 개인적인 겸손함을 떠나 역사적으로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동시에 이 사례는, 모차르트의 경우보다도 훨씬 빈약하고 방향감 없는 스케치를 가지고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완성시킨 것을 해당 작곡가의 이름으로 팔아치우고 있는 몇몇 '개념없는' 음악학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에피소드로도 볼 수 있다. 배리 쿠퍼가 손댄 베토벤의 교향곡 10번이라던가, 브라이언 뉴볼트가 손댄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은 그 촌극이 극에 달한 사례인데, 과연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무덤에서 깨어난다면 그들에게 박수를 쳐줄까, 아니면 면상을 쳐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