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잡설

차이코프스키 작품들의 소련 시절 수난기.

머나먼정글 2006. 12. 21. 21:14

러시아의 국가(national anthem)는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정말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차르(황제) 시대에 '러시아인의 기도' 라는 시에 영국 국가의 멜로디를 붙여서 부른 것이 그 시초였고, 이 가사에 알렉시스 르보프(Alexis Lvov)가 새로이 러시아 정교의 성가 풍의 곡을 붙이고 '신이여 차르를 보호하소서' 라고 제목을 바꾼 것이 뒤를 이었다.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뒤 들어선 소비에트 연방(소련) 정부는 피에르 드기테르(Pierre Degeyter)가 작곡한 유명한 노래인 '인터내셔널가(Internationale)' 를 국가로 새로 지정했고, 이는 1944년까지 쓰였다. 물론 '프랑스 노래를 굳이 소련 국가로 써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한 이들도 있었다.

스탈린도 그러한 '불평분자' 중 한 사람이었고, 직접 나서서 새로이 국가를 제정하기 위한 경연대회를 열었다. 여기서 채택된 곡이 '붉은 군대 합창단' 의 창설자이자 음악 감독이었던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프(Alexander Alexandrov)의 것이었고, 이 곡-멜로디만 이야기하는 것이다-은 1991년 소련 붕괴 때까지 줄곧 소련 국가로 쓰였다. (뱀다리로, 이 컨테스트에는 쇼스타코비치와 하차투리안도 참가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국가는 스탈린에 대한 찬사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흐루쇼프 집권 후 가사 없이 기악 형태의 연주만 허용되었고, 브레즈네프가 집권한 뒤인 1977년부터 스탈린 찬양 문구를 없앤 새 텍스트가 쓰이게 되었다. (물론 '건국의 아버지' 인 레닌의 이름은 그대로 들어 있었다.)

소련이 1991년 완전히 무너진 뒤, 공화국으로 바뀐 러시아의 국가도 당연히 새로 제정되어야 했다. 이런 저런 곡들이 언급된 끝에, 미하일 글린카(Mikhail Glinka)의 곡이 쓰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곡은 가사가 없었고, 결국 흐루쇼프 때처럼 기악 연주만 가능한 형태의 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국가에 불만이 자자했다고 하는데, 결국 옐친의 뒤를 이어 푸틴이 집권하면서 다시 국가 교체에 대한 의견 조율이 이루어 졌고, 2000년에 소련 시절 쓰였던 알렉산드로프의 곡이 다시 부활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문구를 일절 빼야 했고, 결국 새롭게 쓴 가사를 붙여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

*여담으로, 알렉산드로프가 작곡한 이 국가의 선율이 바실리 칼린니코프(Vassily Kalinnikov)의 서곡 '빌리나(Bylina)' 와 유사하다고 해서 표절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러시아 의회에서 새 국가로 이 곡을 채택했을 때에도 이 문제가 거론되어 격론이 오고 갔다고 한다.

이렇게 국가가 자주 바뀐 나라는 전례가 거의 없는데,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북한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운명 때문에 덩달아 개정...아니, 개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곡들도 여러 곡 있었다. 특히 차르의 전제 정치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소비에트 정부는 차르 시대의 문화 유산을 '반동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고, '신이여 차르를 보호하소서' 도 당연히 금지곡에 올려 버렸다.

여기서 잠깐. 꼭 차르 신봉자가 아니더라도, 당시의 국가를 자신의 음악에 사용해 나름대로의 애국적인 의미를 작품에 담은 사람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였는데, 소련 당국은 차이코프스키를 글린카와 함께 '러시아 고전음악의 아버지' 라는 이미지로 대대적인 선전에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르 시절 국가가 들어 있는 곡을 그대로 연주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