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국가(national anthem)는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정말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차르(황제) 시대에 '러시아인의 기도' 라는 시에 영국 국가의 멜로디를 붙여서 부른 것이 그 시초였고, 이 가사에 알렉시스 르보프(Alexis Lvov)가 새로이 러시아 정교의 성가 풍의 곡을 붙이고 '신이여 차르를 보호하소서' 라고 제목을 바꾼 것이 뒤를 이었다.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뒤 들어선 소비에트 연방(소련) 정부는 피에르 드기테르(Pierre Degeyter)가 작곡한 유명한 노래인 '인터내셔널가(Internationale)' 를 국가로 새로 지정했고, 이는 1944년까지 쓰였다. 물론 '프랑스 노래를 굳이 소련 국가로 써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한 이들도 있었다.
스탈린도 그러한 '불평분자' 중 한 사람이었고, 직접 나서서 새로이 국가를 제정하기 위한 경연대회를 열었다. 여기서 채택된 곡이 '붉은 군대 합창단' 의 창설자이자 음악 감독이었던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프(Alexander Alexandrov)의 것이었고, 이 곡-멜로디만 이야기하는 것이다-은 1991년 소련 붕괴 때까지 줄곧 소련 국가로 쓰였다. (뱀다리로, 이 컨테스트에는 쇼스타코비치와 하차투리안도 참가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국가는 스탈린에 대한 찬사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흐루쇼프 집권 후 가사 없이 기악 형태의 연주만 허용되었고, 브레즈네프가 집권한 뒤인 1977년부터 스탈린 찬양 문구를 없앤 새 텍스트가 쓰이게 되었다. (물론 '건국의 아버지' 인 레닌의 이름은 그대로 들어 있었다.)
소련이 1991년 완전히 무너진 뒤, 공화국으로 바뀐 러시아의 국가도 당연히 새로 제정되어야 했다. 이런 저런 곡들이 언급된 끝에, 미하일 글린카(Mikhail Glinka)의 곡이 쓰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곡은 가사가 없었고, 결국 흐루쇼프 때처럼 기악 연주만 가능한 형태의 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국가에 불만이 자자했다고 하는데, 결국 옐친의 뒤를 이어 푸틴이 집권하면서 다시 국가 교체에 대한 의견 조율이 이루어 졌고, 2000년에 소련 시절 쓰였던 알렉산드로프의 곡이 다시 부활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문구를 일절 빼야 했고, 결국 새롭게 쓴 가사를 붙여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
*여담으로, 알렉산드로프가 작곡한 이 국가의 선율이 바실리 칼린니코프(Vassily Kalinnikov)의 서곡 '빌리나(Bylina)' 와 유사하다고 해서 표절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러시아 의회에서 새 국가로 이 곡을 채택했을 때에도 이 문제가 거론되어 격론이 오고 갔다고 한다.
이렇게 국가가 자주 바뀐 나라는 전례가 거의 없는데,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북한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운명 때문에 덩달아 개정...아니, 개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곡들도 여러 곡 있었다. 특히 차르의 전제 정치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소비에트 정부는 차르 시대의 문화 유산을 '반동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고, '신이여 차르를 보호하소서' 도 당연히 금지곡에 올려 버렸다.
여기서 잠깐. 꼭 차르 신봉자가 아니더라도, 당시의 국가를 자신의 음악에 사용해 나름대로의 애국적인 의미를 작품에 담은 사람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였는데, 소련 당국은 차이코프스키를 글린카와 함께 '러시아 고전음악의 아버지' 라는 이미지로 대대적인 선전에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르 시절 국가가 들어 있는 곡을 그대로 연주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슬라브 행진곡(Marche Slave op.31)' 과 '1812년 서곡(Ouverture solennelle '1812' op.49)' 이었는데, 이 두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축에 끼는 곡이었다. 그리고 코다에서 그 문제의 '차르 국가' 가 웅장하게 울려퍼져 정점을 이루는 곡이기도 했고.
결국 소련 당국은 194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차이코프스키 전집의 신판 발행에 맞추어 이들 '문제작' 의 개작을 단행했다. 이 작업에 참여한 작곡가로 비사리온 셰발린(Vissarion Shebalin)이 있었는데, 그는 당국의 주문에 맞추어 이 '차르 국가' 를 대신해 새로운 선율을 끼워맞추는 작업을 했다.
새롭게 들어간 선율은 글린카의 오페라 '이반 수사닌' 에 나오는 '영광' 이라는 합창의 멜로디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오페라는 원래 제목이 '차르에게 바친 목숨' 이었고 가사도 차르를 찬양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차르 찬양 국가' 와 다를 바 없는 곡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가사만이 수정되었을 뿐, 음악은 그대로 남았고 소련 시절에도 계속 애국적인 음악의 상징처럼 각인되어 있었다. 결국 차이코프스키의 작품 중 '차르 국가' 가 들어가는 거의 모든 곡이 이 선율로 땜질이 되어 새로이 '차이코프스키 신전집' 악보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소련 내의 모든 차이코프스키 연주는 이 악보를 기본으로 이루어졌고.
이 때문에 소련 국영 음반사인 멜로디아(Melodiya)에서 만들어낸 차이코프스키 음반들은 이 작업의 결과물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예프게니 스베틀라노프나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니콜라이 골로바노프 등이 남긴 '슬라브 행진곡' 과 '1812년 서곡' 의 녹음을 들어 보면, 기존의 차이코프스키 곡과 차이점을 금방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아마 '어색함' 을 느낄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작업은 당연히 서방 세계로부터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것을 의식했는지는 모르지만, 소련의 음악인들이 서방 공연을 할 때 이러한 '개찬된' 작품을 연주한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음반은 소련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에 유통되었고, 지금도 구할 수 있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예도 존재한다. 1987년에 스베틀라노프의 지휘로 소련 국립 교향악단이 녹음한 '덴마크 국가에 의한 축전 서곡(Festival Overture on the Danish National Anthem op.15)' 에서는 차르 국가가 그대로 연주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당국의 '개정 작업' 에서 실수로 누락된 사례인지, 아니면 스베틀라노프가 일부러 개겨볼려고(???) 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우 이례적인 경우로 볼 수 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샬크나 뢰베 등이 무단으로 개정한 '개찬판' 도 소련 당국의 차이코프스키 개찬과 마찬가지로 욕을 먹기는 하지만, 그 강도와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브루크너의 경우에는 후배나 제자들이 '음악적인' 관점에서 배려하려던 측면이 강했지만, 차이코프스키의 경우에는 '정치적인' 관점에서 시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브루크너 교향곡 개찬판이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지금도 연주되고 악보를 구할 수 있는 반면, 차이코프스키 관현악곡 개찬판이 소련 붕괴 이후 연주 소식이 없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해프닝은 지난 번 소개했던 '레퀴엠' 의 나치 개찬본, 북한의 소위 '혁명가요' 에 대한 괴상한 기원설과 함께 정치가 음악에 개입했을 때 일으키는 부작용 중 가장 심한 사례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