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는 피아노 뿐 아니라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연주 솜씨도 아주 뛰어났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피아노 소나타와 협주곡 만큼이나 바이올린 소나타와 협주곡의 연주 횟수도 상당히 빈번하다. 특히 '청소년 협주곡의 밤' 같은 협연 데뷰용 무대에서 바이올린 협주곡은 항상 빠지지 않는다. (내일 갈 예정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연주회에도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이 프로그램에 올라와 있음)
모차르트는 공식적으로는 다섯 곡, 비공식적으로는 여섯 곡 또는 일곱 곡의 바이올린 솔로 협주곡과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콘체르토네',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협주교향곡(신포니아 콘체르탄테), 그리고 아다지오와 론도 등 단악장 소품 몇 곡을 남기고 있다. 그 외에 미완성 작품도 몇 곡 있는데,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들이다.
1777년은 모차르트에게 있어서 매우 큰 전환점이 된 해였다.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대주교의 전속 음악가로 봉직하고 있었던 모차르트는 그 속박과 격무에 이골이 났고, 새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장기 연주 여행으로는 마지막 길을 떠났다. 그 길의 종착점은 파리였지만, 도중에 거쳐간 뮌헨, 아우크스부르크와 만하임에도 모차르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또한 그 자신도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만하임에서 당시 수준으로는 최상급의 궁정 관현악단을 접하고 큰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1777년 11월 22일에 잘츠부르크에 있던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편지를 보내, 만하임에서 본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에 탄복했다고 썼다. 그 바이올리니스트는 이그나츠 프렌츨(Ignaz Fränzl)이라는 인물이었는데, 이것이 자극제가 되었는지 모차르트는 만하임 체류 기간 동안 네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했다.
모차르트는 이 네 곡과 파리에서 작곡된 두 곡을 합한 여섯 곡을 한 세트로 묶어 자비로 출판했는데, 이것이 모차르트 작품으로서는 최초로 작품 번호(op./opus)를 달고 세상에 나온 것이었다. 이 중 K.306/300l을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세한 것은 밑에 씀)
파리에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모차르트의 여정은 중단되어 버렸고, 그는 다시 잘츠부르크로 돌아와야 했다. 오는 길에 만하임에 다시 들렀는데, 프렌츨과 만난 지 거의 1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다. 만하임에서 모차르트는 다시금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한 아마추어 음악가의 모임을 위해 바이올린과 클라비어(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작곡하고 있다고 썼다(1778년 11월 12일). 이 곡은 분명히 그 모임에 참가한 프렌츨과 자기 자신의 협연을 의식하고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바이올린,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D장조 K.App.56/315f' 는 애석하게도 완성되지 못했고, 120마디 가량의 초고만이 남아 있는 상태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6촌 동생이자 유명한 모차르트 연구가였던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이 초고를 '훌륭한 토르소' 라고 칭했고, 이 곡이 미완성으로 남은 것이 대단히 큰 손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초고에 주목한 이가 영국의 음악학자,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인 필립 윌비(Philip Wilby)였는데, 그는 고음악 아카데미를 비롯한 정격 연주 관현악단에서 몸담으며 모차르트 연구에도 손을 뻗던 중 이 작품의 복원에 손을 대기로 했다.
윌비는 이 미완성 협주곡과 모차르트의 첫 자비 출판작이었던 바이올린 소나타집 중 K.306/300l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들을 필립스의 모차르트 대전집 중 8집에 속하는 바이올린 협주곡집의 속지에 직접 쓴 해설에서 밝히고 있다.
1. 소나타의 피날레, 즉 3악장의 형식이 대조적인 악상으로 구성된 두 개의 단락을 포함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모차르트의 협주곡에서는 친숙한 구조지만, 그의 이전 소나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식이다.
2. 소나타 3악장에 이례적으로 꽤 길고 기교적인 바이올린의 카덴차가 있는데, 협주곡 양식을 짐작케 한다.
3. 소나타와 협주곡의 1악장 제시부 길이가 똑같이 74마디로 일치한다.
4. 협주곡의 피아노 파트 시작 부분에서 왼손의 움직임이 소나타의 피아노 파트에서 보여주는 그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5. 소나타의 2악장에서 바이올린 파트가 종종 스타카토 악구들을 연주하는데, 이는 프렌츨의 '단단한 스타카토로 연주하는' 스타일을 감안한 것이다. 통상적인 소나타의 느린 악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악구다.
6. 소나타의 피아노 파트 작법, 특히 2악장의 것이 이상하게 어색하다. 아마도 협주곡의 피아노 파트와 관현악 파트를 피아노 파트 하나로 합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생긴 난점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해 윌비는 초고 자료가 거의 없는 2악장과 3악장을 소나타의 그것으로 대체했고, 1악장에서도 누락되거나 불분명한 부분을 소나타에서 차용해 완성시켰다. 소나타와 윌비의 완성판 협주곡을 같이 들어보면 그 점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모차르트의 초고 자체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점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관현악 편성이 일반적인 고전 시대 범주보다 더 크고 화려하다는 것이 가장 눈에 띈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관현악 편성은 스트링에 오보에와 호른 각 한 쌍씩을 추가한 간소한 것인데 반해, 이 협주곡의 초고에서 모차르트는 플루트와 트럼펫 각 한 쌍에 팀파니까지 넣었다.
윌비는 모차르트가 느린 2악장에서 플루트와 트럼펫, 팀파니를 쓴 예가 거의 없다는 것에 착안해 이들을 모두 제외시켰고, 스트링에서 바이올린 등의 고음 현악기에 약음기를 사용하도록 했다(con sordino). 그리고 18마디부터 나오는 피아노의 독주 때는 피치카토로 반주하도록 했는데, 아마 바이올린과 피아노 독주 음량을 고려한 관현악 편곡으로 보여진다.
윌비는 이 곡 외에 또 다른 미완성 초고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교향곡 A장조 K.App.104/320e' 에도 손을 댔다.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로 돌아온 1779년 이후에 쓰여졌다는 것만 알려져 있는 자료인데, 모차르트가 첼로 솔로 구절을 쓴 유일한 예다. (사실 첼로 협주곡 K.206a를 쓰기는 했지만, 현재까지 악보가 분실 상태임)
이 초고는 1악장만 134마디 가량이 쓰여져 있는데, 그나마 관현악 파트는 첫머리밖에 없고 나머지는 세 독주 악기들의 솔로 악구들 위주로 채워져 있다. 더군다나 이 곡은 위의 협주곡처럼 소나타나 다른 장르의 곡들과 직접적인 연관성도 없어서 가장 자료가 부족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윌비는 이 곡이 유명한 바이올린+비올라의 협주교향곡 K.364 이후에 쓰여졌다는 것에 착안했고, 관현악 편성이 두 곡 모두 동일한 점-스트링에서 비올라 파트가 둘로 나뉘어 있고, 오보에와 호른도 각 한 쌍씩 모두 일치함-과 독주 비올라 파트가 온음을 올린 스코르다투라(scordatura. 변칙적인 조율법)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 것, 형식과 리듬 구성, 멜로디 라인 등의 비슷함 혹은 일치함 등을 내세웠다.
물론 윌비의 이러한 학문적인 설명들은 상당히 빈틈이 없고, 나름대로의 신빙성이 있는 지적들이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살아 있다면 정말 이렇게 썼을까?' 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협주곡이 가장 믿을 만한 것 같은데, 모차르트가 오보에 협주곡을 조성만 바꾸다시피 해서 플루트 협주곡 2번으로 만든 사례만 봐도 그렇다) 특히 자료 자체가 가장 빈약한 축에 속하는 협주교향곡의 경우에는 윌비의 손이 너무 많이 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윌비의 두 복원작 녹음은 위에 소개한 필립스 모차르트 대전집의 8집 마지막 장에도 포함되어 있는데,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영국의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였던 아이오나 브라운(Iona Brown)이 세인트 마틴 아카데미 합주단을 지휘해 녹음했다. 나머지 독주자들은 하워드 셸리(Howard Shelley, 피아노)와 이마이 노부코(今井信子, 비올라), 스티븐 오튼(Stephen Orton, 첼로)이 참가했다. 협주곡에서 트럼펫과 팀파니가 좀 거칠게 나오고, 협주교향곡에서 첼로 솔로가 바이올린과 비올라에 눌리는 듯하다는 느낌을 빼면 연주 자체는 들을만 하다.
협주곡의 경우에는 소니 클래시컬에서 나온 고토 미도리(五嶋みどり)의 바이올린과 크리스토프 에셴바흐(Christoph Eschenbach)의 피아노/지휘로 북독일 방송 교향악단이 연주한 CD가 하나 더 있는데, 아직 듣지는 못했다. (참고로 커플링 곡은 협주 교향곡 K.364인데, 비올라는 위의 이마이 노부코가 맡음) 하지만 협주교향곡의 다른 녹음은 필립스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는데, 연주자들도 설마 나랑 같은 생각인지?
모차르트는 어찌 되었건 모차르트다. 1777년의 여행에서 알로이지아 베버에게 작업 걸다가 차이고 어머니는 객지인 파리에서 돌아가시기까지 했지만, 음악은 그러한 불행 따위에 미동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렇게 부족한 자료로 재구성된 미완성 작품에서조차 그렇다. (물론 K.364의 느린 악장에서 들을 수 있는 페이소스가 이러한 일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모차르트가 대단한 거다(←범죄의 재구성 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