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 자정 부로 완전 민간인이 되었습니다. 그 기념으로 올리는 것인데, 군대에 있을 적에 쓴 것이라 그런지 좀 격세지감이 느껴지는군요. 어쨌든 약간의 수정만 보고 올립니다.
군대가기 전에 많이 만났던 작곡가 김대성씨-참고로 최근 김혜린 원작 만화로 뮤지컬을 작곡/상연한 바 있음-는 서양음악으로 시작했다가 민족음악을 터득해 퓨전을 시도하고 있는 작곡가이다. 그 분이 극찬하던 서양 작곡가들은 주로 베토벤이나 말러 같이 독일 계통의 영생불멸 인사들도 있었지만, 몇몇 매니아들이나 알 만한 사람들-예로 그리스 작곡가인 엘레나 카라인드루-이나 다케미츠 도루 등도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말을 해주셨다.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만큼 천재적인 작곡가도 없어. 환상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만 해도, 그 곡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광기 같은 것에서 그러한 면이 보인다는 말이지."
이지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이 주를 이루는 요즘 음악씬에서는 '오바쟁이' 의 대표로 꼽힐 정도로 찬밥 신세가 된 베를리오즈라지만, 그가 과연 그렇게 씹히고 다닐 정도로 중요성이 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가 '레퀴엠' 이나 '테 데움' 같은 종교곡을 너무 요란하고 과장되게 썼다고는 해도, 그 곡들이 근/현대 관현악법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주춧돌이 된 것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작곡 동기는 너무 유명해서 다시 설명하는 것이 귀찮을 정도지만, 동기 같은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절대음악' 위주였던 독일계 교향곡과 달리 작품에 일관된 스토리를 부여한 '표제음악' 의 성격을 가진 최초의 것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본다.
게다가 그 '스토리' 라는 것도, 당시 혼란한 혁명기 프랑스의 사회상이 반영되었는지 어쨌는지 상당히 불손하고(???) 극단적이다. 대마초에 절어 살던 히피 뮤지션들이 벤치마킹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인데, 아편을 다량 복용하고 자살하려다가 치사량에 못미쳐서 계속되는 악몽에 시달리는 스토리는 요즘 관점으로 봐도 범상치 않다.
스토리에 걸맞게 악기 편성도 괴상한데, 통상 한 대 쓰는 하프와 튜바를 두 대 쓰는 것부터 특이하다. 다른 목관악기들과 달리 바순만 유독 네 대나 쓰는 것도, 팀파니 주자를 최고 네 명까지 두는 것도(3악장 말미의 천둥소리 묘사), 작고 새된 소리의 E플랫 소클라리넷이나 튜블러 벨 등 당시로서는 희귀한 악기들의 첨가도 상당히 도전적인 면모다.
끝맺음도 그렇다. 이 곡은 베토벤 류의 '절망을 넘어 희망으로' 같은 해피엔딩도 아니고, 흉악한 마녀들의 잔치에 정신없이 휘둘리며 끝맺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마치 보들레르의 '악의 꽃' 을 음악으로 듣는 것 같을 정도다. 내가 뒤틀린 성격을 가진 탓일까? 어떨 때는 이 곡이 베토벤, 브루크너, 브람스, 말러 등의 교향곡보다 더 듣고 싶어질 때도 많다. (...특히 군대 와서 더욱 그렇다...)
프랑스 원산지인 곡 답게,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의 명연 음반으로 샤를 뮌슈를 첫 타자로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뮌슈 외에 관현악을 기능적으로 잘 다루는 지휘자들-카라얀이나 마르케비치 등-의 음반이 주로 거론되어 왔는데, 요즘에는 곡의 가학-변태-기괴한 성향을 극단까지 추구하는 지휘자들의 녹음이 많이 애청되고 있는 듯하다. (러시아 지휘자인 로제스트벤스키의 실황 녹음까지도 칭찬을 받는 상황이니 이해가 될 듯하다.)
하지만 이 곡의 최대 명연을 내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프랑스 음악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영국 악단의 연주를 들고 싶다. 바로 1959년에 존 바비롤리(John Barbirolli)가 잉글랜드 중부의 맨체스터에 자리잡은 할레 관현악단(Hallé Orchestra)을 지휘해 파이(Pye)에서 녹음한 것이다. 이 녹음은 1990년 EMI에서 CD 염가반으로 복각되어 나온 적이 있지만, 그 뒤로는 쭉 폐반 상태다.
ⓟ 1990 EMI Records Ltd.
순 영국산 연주이기는 해도, 바비롤리의 혈통이 프랑스인 절반+이탈리아인 절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지방 악단이라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기도 하고, 녹음 상의 문제-채찍 소리에 가까운 심벌즈와 딱딱하고 무거운 맛은 거의 없는 베이스 드럼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도 있기에 묻혀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파이 시절의 녹음이 그 기백과 열정은 높이 평가받을 지언정 전체적인 평가가 그다지 좋지 않은 이유도 이 녹음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연주의 열기라는 면에서는 엄청나다. '열정' 으로 표기된 1악장 주제부에서 들리는 바이올린 파트 연주(5:28~5:41 외)는 일부러 셈여림을 악보보다 더 강조해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고, 곳곳에서 바비롤리 특유의 미끌미끌한 포르타멘토-fortamento. 음을 미끄러뜨리듯 연주하는 주법-가 들려서 꽤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2악장이 좀 화사한 맛이 없는 것이 아쉬운데, 마지막에서 오케스트라의 밝은 음향을 최대한 살려서 끝맺은 것을 생각하면 아쉽다.
이 녹음의 진짜 진가는 3악장부터 드러난다. 바비롤리는 곡의 엽기적인 면에만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길게 가지고 최대한 인간적인 표정을 붙여서 따뜻하고 정감있는 연주를 만들어낸다. 단순히 '전원 풍경' 이 아닌, 주인공의 고뇌와 고독이 묻어나오는 16분은 지루하기는 커녕 가장 인상적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천둥소리 묘사(14:21~악장 끝까지)도 주목할 만하다. 별로 좆치안은 녹음 상태 때문에도 그 강렬함이 더해져 있지만, 무엇보다 두 번째 천둥소리에서 바비롤리가 팀파니스트 네 명에게 작렬하는 sf(스포르찬도. 특히 세게)를 가하도록 한 것이 상당히 개성적이다.
주인공의 악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4악장부터는 바비롤리가 전투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팀파니와 금관악기를 전면으로 돌출시켜서 에너지를 얻어내고 있다. 저음부가 팍 짤려나간 듯한 울림이 답답하고 건조하지만, 이것이 되레 또 마지막 '단두대 일격' 에서 플러스 요인이 된다.
클라리넷의 달콤한 울림에 아랑곳 없이 떨어지는 칼날 소리는 잘만 연출하면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보다 몇십 배는 강한 효과를 내는데, 밝은 울림의 악기를 가능한한 위로 다 몰고 조금 여운을 주어 터뜨리도록 한 4:27초 쯤의 sff(더블 스포르찬도)는 정말 압권이다. 무조건 힘차게 끊어서 때리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때로는 졸다가 이 소리 한 방에 깰 때도 있다 'w'a;;;-.
마지막 악장의 첫 머리(0:00~1:38)에서는 베를리오즈가 당시 목관악기들에게는 매우 드문 주법이었던 하향 글리산도(glissando. 음을 위 또는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연결해 연주함)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지휘자별로 해석이 천차만별이다. 그냥 반음계 하강으로 넘어가는 지휘자도 있고, 살짝 아래쪽으로 꺾고 원래 음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바비롤리는 가능한한 악보대로 하려고 노력한 듯하다. 심지어 호른도 두 번째 글리산도(1:30~1:38)는 제대로 하고 있을 정도다-참고로 호른의 하향 글리산도는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주자가 매우 드물다-.
베를리오즈는 유명한 그레고리오 성가인 '분노의 날(Dies irae)' 이 인용되는 부분(3:16~5:21)에서 나오는 종소리에 피아노의 저음 건반 연주를 붙여서 어두운 소리를 추가할 수 있다고 써놓았는데, 요즘에는 튜블러 벨 하나로 연출해 내지만 개인적으로는 피아노를 붙여서 울려대는 소리가 더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여담으로 스토코프스키 같은 지휘자는 피아노 뿐 아니라 탐탐까지 더해서 더욱 어두운 소리를 연출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 쓴 대로 베이스 드럼의 파괴력이 많이 감소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 대신 두 명의 주자가 두들겨대는 팀파니 소리 하나는 유달리 튀어나오고 있어서 후련하고, 마지막에 거칠게 몰아붙이는 코다(9:34~끝까지)는 그 이상으로 악마적인 소리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다.
EMI의 복각판에는 극적 이야기 '파우스트의 겁벌' 중 세 곡의 오케스트라 발췌곡과 서곡 '로마의 사육제' 가 같이 실려 있는데,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녹음 상태가 별로 좋지 않기는 해도 '헝가리 행진곡' 의 연주는 일품이다. 좀 탁한 녹음 상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흥분되는 연주인데, 그 느낌이 참 묘하다. 개인적으로 제발 재발매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한 녹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