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입대 후 근 2년 만에 다시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아가 보았다. 100일 휴가에, 두 번의 정기 휴가에, 또 두 번의 포상 휴가까지 나갔으면서 왜 그 때 안갔냐고 하면...후훗...
일단 디지털 도서관을 만든다면서 앞마당을 싸그리 파제끼고 한창 공사중이었는데,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아놔~!! 웬 등록증?!
물론 도서관 운영체계를 좀 더 진보적으로 개편하기 위해서라고는 하는데, 그것 때문에 최종적으로 도서관 안에 들어가기까지 무려 10분이나 걸렸다. 일일등록증을 받느라 걸린 시간하며, 사물함 이용도 이제는 개가식이 아니라 카운터에서 맡기는 방식이라 되레 번거롭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구시대 인간이라서 그런건지.
2. 일단 그 간 보지 못했던 '객석' 과, 군대에서 재미를 붙인 '게이머즈' 과월호를 열람하면서 이런저런 정보들을 긁어 모았다. 그 2년 동안 백남준, 죄르지 리게티,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레나타 테발디, 비르기트 닐손, 지크프리트 팔름,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마르첼로 비오티 등이 세상을 등졌고, 구스타보 두다멜이나 앨리슨 밸섬, 라파우 블레하츠, 조너선 레말루 등의 신인 음악가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사실 올드 타입 연주가들의 녹음을 복음으로 삼는 내게 신인 음악가들은 별 주목거리가 되지 못하지만, 블레하츠나 두다멜의 경우에는 꽤 끌리고 있는 중이다. 블레하츠는 쇼팽 콩쿨에서 정말 오랜만에 나온 폴란드인 우승자라는데, 왠지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이후로 진정한 폴란드풍 쇼팽이 뭔지 보여줄 수 있는 연주자일 것 같다.
그리고 두다멜의 경우에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변방 취급받던 베네수엘라의, 그것도 청소년 관현악단을 이끌고 도이체 그라모폰(이하 DG)에서, 한술 더 떠 베토벤 교향곡 5번과 7번이라는 경쟁자가 쌔고 쌘 레퍼토리를 녹음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푸르트벵글러와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역사적인 명연에 크리스티안 틸레만까지 똑같은 레퍼토리로 DG에 데뷰했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7번 4악장의 첫머리를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파일로 들어 봤는데, 클라이버가 F1 머신이면 두다멜은 완전히 제트기였다. 래틀과 아바도가 왜 그렇게 입에 거품을 물었는지 알 만하다.
3. 이제는 신인 음악가라는 호칭이 무색한 피아니스트인 랑랑과 김정원도 마찬가지인데, 랑랑 같은 경우에는 중국에서 작곡된 서양식 악곡 중 가장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황하' 를 유 롱 지휘의 중국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DG에 취입해서 나를 또 놀라게 했다. 지안 왕과 윤디 리 이래로 DG가 중국 음악인들에게 돈독이 올랐는지 어쨌는지, 하여튼 이것도 꽤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김정원의 경우에는 김동률 라이브 공연 때 게스트로 나왔다고 해서 알게 된 피아니스트였는데,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에서도 출연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영화는 못봤다. 한국 EMI에서 차이코프스키 1번과 라흐마니노프 2번이라는, 아주 대중적인 러시아 피아노 협주곡 음반을 냈다고 하는데, 이것도 일단 (얼마나 아득하게 멀지는 모르지만) 공략 대상에 포함시켰다.
4. 윤이상 음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왈가왈부를 하고 있다. 이론가나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이 초기에는 나름대로 시도도 진취적이었고, 질도 좋았는데 후반에 가서 너무 땅을 팠다고들 하고 있는 것 같다. (음악춘추 같은 잡지에서 특히 그러한 경향이 짙음)
반대로 연주가들은 초기 작품이 밀도가 너무 짙고 까다로운 기교를 요구하기 때문에 어렵고, 후기 작품은 현실 감각과 연주가 입장에서 생각하는 배려-나쁘게 말하자면 일종의 타협-때문에 연주가 더 수월하다고 하는 것 같다. 근데 내 생각에는 초기던 후기던, 뭔가 전문적으로 파고 들겠다면서 덤벼들면 덤벼들 수록 더 이해가 안되는 것이 윤이상 음악 같다. '음악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 이라는 첼리비다케 대협의 말을 되새겨야 할 듯.
5. '게이머즈'. 사실 게임 매니아는 아니지만, 일러스트레이터인 쥬디 여사의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드는 데다가 김태산, 곰선생, 키노피오, 나리디, 알콜DEAD6, SMH 등 기자 대협분들의 기사 작성과 편집 센스가 유머 잡지를 방불케 하는 잡지라서 즐겨 읽고 있다. 어찌 보면 뉴타입보다 더 재미있는 것 같은데.
물론 완전히 웃어 제끼자고 쓰는 기사가 태반이기는 해도, 키노피오 대협의 글 같은 경우에는 그 역사성-한국 고전 게임을 다루는 코너의 경우가 그렇다-이나 진지한 자세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아 신뢰가 간다. 진짜 그 바닥에 이빨을 박았다는 티가 확 나니 말이다.
게임기...뭐 꼭 필요한 아이템도 아니지만서도, PSP나 NDS 같은 휴대용 제품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개인적으로는 PSP가 끌리는데, 일단 돈부터 벌자. ;w;
6.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목~금요일 이틀 간 열리는 '2006 겨레의 노래뎐'. 남북한과 해외 동포들의 노래 작품을 한 무대에서 연주하며 동질성을 키워 간다는 취지로 열리고 있는 연례 행사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이은 핵실험 파문으로 인해 예년같지는 않을 것 같다.
'예술은 사회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 는 것이 내 신조이기 때문에, 이번 음악회에 가기는 가겠지만 계속 뒷맛이 씁쓸하다. 지휘자 김홍재 대협과 더불어 (아마도 매니저 역할을 위해 분명히 같이 오실) 이철우 선생님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 물론 정치나 사회 이야기 자체를 꺼내지 않으면 되기는 하겠지만, 일단 표정 관리부터 해야 되겠군.
7. 개말년이니 초말년이니 해도 항상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휴가를 나오기 전 내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이 될 '사건' 을 겪은 후라서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그렇게 좋아라 하던 주페 서곡집 같은 음반 보다는 애청곡선 시리즈에 소개한 슈미트의 교향곡이라던가 푸르트벵글러의 작품 등을 자주 듣게 된다.
특히 푸르트벵글러...자기 자신을 '비극주의자' 라고 칭했던 사람이라 그런건지, 그가 작곡한 작품을 듣고 있으면 뭔가 모를 공포감이나 염세적인 필링이 사정없이 솟구친다. 사실 나 자신도 마구 날뛰는 춤곡 류 보다는 장대하고 그윽한 설명조의 음악이 듣고 나면 뇌리에 가장 오랫동안 남는데, 그래도 굳이 '나는 비극주의자다' 라고는 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나쁜 일이나 슬픈 일이라도 극복해 내야 하는 것이 인간 정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