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부대에서 양구 읍내 도착은 빨랐지만, 전투모랑 전투복 상의, 야전상의에 개구리 오바로크-개구리: 예비군 마크 속어로 개나리+구(한반도 모양 그려져 있는 동그라미)+리본의 합성어-를 치기 위해 일부러 동서울 가는 차를 늦게 타기로 했다. 그리고 오바로크 치는 동안 근처 PC방에서 휘갈긴 것이 아랫글.
어쨌든 12시 38분 쯤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그 동안 군대에서 썼던 개인 사물을 다 가져오느라 죽는 줄 알았다. 보급품 욕심도 거의 안 내는 내가 이리도 물건이 많은 건 뭔지. 하긴, 구워간 CD들과 책만 해도 그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으니.
일단 짐 풀고, 점심 먹은 다음 조금 쉬었다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집 근처 우체국-군인 현금카드는 거의 우체국 아니면 농협 명의로 만듬-에서 13만원을 인출해서 곧장 청담동 풍월당으로 직행했다. 8월에 갔으니, 두 달 정도면 뭐 주목할 만한 신보도 별로 없을 것 같았는데...
평택...아니 오산이었다.
계획했던 CD에 갑작스러운 복병들(?)까지 추가되다 보니 결국 나온 견적은...
...106000원.
스꾸임~~~??? (그러고 보니 참 오랫만이로군, 저 짤방)
구입 음반 목록-귀찮아서 사진은 안 올림-;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베를린 필 1947/1953 라이브 모음집
(Tahra, 4CDs. 아마 이 음반이 제일 비쌌을 거다)
브루크너: 교향곡 7번+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서곡
(할레 관현악단/존 바비롤리. BBC Legends)
어쨌든 갑자기 인출금액 잔고는 3만원으로 급추락. 계산대 앞에서 썩소를 머금은 채 돈을 지불하고는 밖으로 나와 버스로 신촌을 찾아갔다. 아지바코 가기 전에 M2U에 들린다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는데, 총알 부족으로 인해 우체국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 크리스피크림도너츠 건물에 있는 헌혈의 집에 얼떨결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것이 또 하나의 비극일 줄이야.
일단 빨리 끝나는 전혈이나 하려고 신청서 쓰고 문진하러 들어갔는데, 전투복 차림이라 그랬는지 근무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강원도 양구군이라고 하니까 말라리아 위험 지역이래나 어째나. 결국 전혈과 혈소판은 안되고 혈장 헌혈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혈소판이야 애당초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이었지만-무려 3시간 가까이 걸리니까-, 혈장도 만만찮게 오래 걸리는 성분헌혈이다.
그리고 헌혈 등록제를 주구장창 이야기하던 간호사의 설명에 덥석 등록을 하고, 문화상품권(5000원)을 우선 받았다. (헌혈등록제 회원이면 아마 국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공짜라지?) 그리고 헌혈 소파 위의 LCD로 OCN에서 하던 나홀로 집에 2를 보면서 기나긴 헌혈 여정에 들어갔다. 전역한 모 선임병을 닮은 마브의 수난사를 보고 뒤틀린 웃음을 지으면서.
헌혈을 하다가 갑자기 YTN 카메라맨들이 들이닥쳤는데, 전투복을 입고 있는 나로서는 매우 난감했다. 군인은 함부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 매스미디어에 나와서는 안되는데, 특히 소속 부대 마크가 화면에 나오면 문제가 심각해 진다. 실제로 MBC의 한 쇼 프로에서 할머니 짐을 들어 주어 '친절한 시민' 으로 뽑힌 한 해병대원이 휴가 복귀 후 포상휴가와 영창살이를 모두 했던 사례가 있다.
말년에 꼬이기 싫어서 '나는 이러이러한 입장이니 찍지 말아 달라' 고 했고, 카메라맨은 다른 사람들의 헌혈 모습만을 담아 갔다. 차라리 사복 차림이었다면...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왜일까.
어쨌든 헌혈이 끝나고 나니 날은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결국 우체국 찾기를 포기하고 남은 돈으로 아지바코에 가기로 했다. 수수료 안물고 돈 찾기는 물건너 갔기 때문이었는데, 돈도 빼앗기고(???) 시간도 빼앗기고.
마침 저녁식사 때라서 아지바코는 꽤 붐비고 있었다. 미리 생각해 놓은 쇼유라멘 곱배기를 시켰는데, 지난 번과는 달리 시키고 나서 2분도 안되어 음식이 나왔다. 목마르고 배고픈 군바리는 5분 만에 그릇을 뚝딱 비우고 카드에 두 번째 도장을 받은 뒤 다시 이대 거리를 서성였다.
그러다가 헌혈 때 받은 상품권(5000+3000)이 생각나서 근처의 리브로 이대점을 찾았다. 만화 코너에 있던 스쿨럼블 13권과 요츠바랑! 5권 중 뭘 살까 한참 저울질한 끝에 스쿨럼블을 집어 들었고, 500원을 보태어 계산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전투복 차림으로 이리 오랫동안 서울 거리를 돌아다녀본 적은 처음인데, 역시 군바리는 주목의 대상인가 보다. 그나마 소심했던 터라 전투복 상의 빼입기나 전투모 비뚜름하게 쓰기, 주머니에 손 찔러넣고 건들거리기 등의 스킬을 구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다시 집에 돌아와 티켓링크 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이번 달 19-20일에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하는 '2006 겨레의 노래뎐' 이 눈에 띄었다. 예전에도 일본의 금강산가극단 등이 찬조 출연한 터라 출연진을 가만히 봤는데...
지휘자 김홍재 대협 출연!!!
그래, 푸르트벵글러+바비롤리+아벤트로트+콘드라신+박태영과 함께 나의 지휘자로서 정신적 지주인 분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뭐 가릴 것 없이 예매를 하려는 찰나, 가격표를 보고 안습.
결국 오늘의 마지막 명대사는 이것으로 끝났다.
어머니, 5만원만 빌려주...
...결국 3만원으로 합의를 볼 수 있었다-그나마 다행이다-. 부모님께 손 안벌리겠다고 했는데, 역시 현실과 이상의 갭이란.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