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970년 5월 20일
장소: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Royal Festival Hall)
관현악: 할레 관현악단(Hallé Orchestra)
지휘: 존 바비롤리(John Barbirolli)
-프로그램-
1부: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 1857-1934): 서곡 '남국에서(알라시오)' 작품 50
2부: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 1824-1896): 교향곡 제 8번 C단조 (하스판)
ⓟ 1999 BBC Worldwide Music Ltd.
ⓟ 2001 BBC Worldwide Ltd.
*음반: BBC Legends BBCL 4013-2 (상단. 엘가) & BBC Legends BBCL 4067-2 (하단. 브루크너)
1970년 5월 20일 늦은 오후, 런던의 주요 공연장 중 하나인 로열 페스티벌 홀 무대에 작달막한 키의 지휘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휘자는 요 근래 심장마비 증세 때문인지 좀 피곤하고 지쳐 보였지만, 단 한 번의 콘서트만 취소했을 뿐 여전히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 내고 있었다. 지난 달인 4월에만 독일에서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슈투트가르트 남서독일 방송 교향악단 등을 객원으로 지휘했고, 이 연주회 다음 날에는 EMI와 시벨리우스 교향곡 6번을 녹음하기로 되어 있었다.
지휘자의 이름은 존 바비롤리였고, 관현악단은 그가 2차대전 중인 1943년부터 지휘해온 할레 관현악단이었다. 프랑스 태생의 샤를 할레가 1858년 영국 중부의 맨체스터에 창단한 사설 관현악단으로 시작한 악단인데, 바비롤리는 1968년까지 상임지휘자를 맡은 뒤 종신 계관지휘자로 이 악단과 계속 유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박수 갈채가 끝난 뒤 첫 곡으로 연주된 것은 엘가의 서곡 '남국에서(In the South)' 였다. 리구리아 해변의 유명한 휴양지인 '알라시오(Alassio)' 가 부제로 붙어 있는데, 작곡자 자신이 이탈리아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는 곡이다. 엘가가 쓴 세 편의 연주회용 서곡 중 마지막 곡이기도 한데, 서곡이라기 보다는 거의 한 편의 교향시에 가까운 대규모의 곡이다.
영국의 신세대 음악 비평가였던 마이클 케네디는 이탈리아인의 피를 이어받은 바비롤리가 왜 이 곡을 지휘하지 않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이 곡은 할레 관현악단에게도 의미가 큰 곡이었는데, 제 2대 상임지휘자였던 한스 리히터와 함께 1904년 초연했던 경력이 있었다. 1966년에 케네디의 지적을 받아들인 바비롤리는 약 4년 뒤인 1970년 5월-이 런던 연주회 며칠 전임-, 마침내 맨체스터에서 이 곡을 처음 무대에 올렸다.
바비롤리는 자신의 이탈리아 혈통과 영국식 고상함을 적절히 블렌딩해 이 곡에서 특별한 맛을 이끌어 냈다. 비록 악단이 박력있는 서주와 재현부에서 박자를 종종 놓쳐서 흥을 깬 부분이 더러 있기는 했지만, 20분 가량 되는 이 곡의 다채로운 묘미를 감상하는 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특히 마지막에 한껏 부풀어 오르면서도 너무 취하지 않는 '영국 신사풍' 클라이맥스는 바비롤리만의 전매 특허였다.
중간 휴식 후 2부에 올려진 곡은 브루크너 교향곡 중 가장 규모가 큰 8번이었다. 바비롤리와 할레 관현악단은 이미 4월 30일에 맨체스터에서 이 곡을 연주한 바 있었는데, 영국에서 브루크너 음악이 뜸하게 연주되던 것을 생각하면 꽤 모험적인 프로그램 구성이었던 셈이었다.
바비롤리는 브루크너 교향곡을 한 번도 스튜디오에서 녹음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1930년대 후반 뉴욕 필을 지휘할 때부터 브루크너 교향곡을 무대에 꾸준히 올려 왔었다. 그가 지휘하는 브루크너는 비록 요훔이나 반트, 카라얀 등의 '독일식' 해석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약간 빠른 템포를 잡았음에도 전체적인 사운드는 견고하면서 묵직했다. 50년대에 할레 관현악단의 큰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호른 파트가 월등히 나아졌고, 스트링에서도 여전히 다양한 색채를 끊임없이 뽑아내게 한 것도 플러스 요인이었다.
(마지막 코다의 '미-레-도' 3연타에서 갑자기 팀파니의 롤을 중지시키고 한 음씩 퍽퍽 찍어대며 끝내는 것도 매우 특이한 해석이었는데, 이렇게 연주한 예는 내가 아는 한 바비롤리가 유일하다.)
73분 여에 이르는 8번 교향곡 연주가 끝나자 몇몇 청중들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박수를 쏟아냈다. 하지만 런던의 청중들은 그 날 이후 바비롤리를 런던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물론 런던에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콘서트로서는 이 날 연주가 마지막이었다.
바비롤리는 7월 24일 킹스 린에 있는 세인트 니콜라스 예배당에서 연주된 엘가 교향곡 1번을 끝으로 청중들 곁을 영영 떠났는데, 5일 뒤 BBC 교향악단의 일본 투어를 위해 리허설을 마치고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급서하고 말았던 것이다.
할레 관현악단은 바비롤리 사후 제임스 로런, 스타니스와프 스크로바체프스키, 켄트 나가노 등을 상임 지휘자로 맞았지만 바비롤리 때의 명성에는 못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할레-바비롤리 콤비의 명성이 영국인들의 과잉 반응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에는 어느 정도 수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만큼의 명성이라도 찾기 위해 고투하는 모습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