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4개월 가까이 사회와 단절된 상태로 살다가 휴가를 나오니, 사고 싶은 것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없고, 돈도 없으니 줄이고 줄여서 산 CD들;
1. 푸르트벵글러의 매력 (도이체 그라모폰, 2CDs for 1 한정반)
ⓟ 2004 Deutsche Grammophon GmbH
2004년 11월 30일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사후 50주년이 되는 날이자, 그의 모든 녹음 자료 원본의 저작권이 다 풀리는 날이기도 했다. 그 때를 맞춰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낸 일종의 트리뷰트 앨범인데, 흔히 트리뷰트 하면 따라다니는 '미공개 자료' 가 여기에도 있었다. (솔직히 그 두 자료 때문에 산 앨범이었다.)
멘델스존의 연주회용 서곡 '핑갈의 동굴' 리허설 발췌와 드보르작의 슬라브 춤곡 작품 46-3번이 그것인데, 둘 다 10여 년 전인 1994년에 프랑스 음반사 타라(Tahra)에서 나온 바 있지만 이번의 DG반은 오리지널 마스터에서 따낸 것이라 음질이 훨씬 좋다고 했다.
푸르트벵글러 신보 구입은 이것으로 한 숨 돌렸지만, 독일 음반사인 오르페오(Orfeo)에서 나온 '잘츠부르크 관현악 연주회 선집' 이 아직 수입되지 않은 것이 매우 아쉬웠다. 스트라빈스키의 '3악장의 교향곡' 같은 극히 레어한 녹음들도 실려 있다는데, 1차 정기휴가 때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전곡 (테스타먼트, 2CDs for 1)
ⓟ 2005 Testament
그 동안은 이런저런 해적 음반사에서 나온 바 있는 녹음인데, 1953년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기념으로 런던 코벤트 가든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공연 중 가장 마지막 날의 실황이다.
아직은 다이어트에 몰입 중이던 마리아 칼라스가 타이틀 롤-오페라 제목과 같은 이름의 배역이라는 뜻-을, 지휘는 존 바비롤리가 맡은 녹음이다. 하지만 음질이 꽤 좋지 않고, 3막 쯤 가면 원본 테이프가 늘어졌는지 음고(피치)와 템포가 흐느적대는 부분까지 종종 들린다. 그리고 칼라스와 암네리스 역의 줄리에타 시미오나토 외에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아서, 칼라스 혹은 바비롤리 매니아 전용 음반으로 사료된다.
사실 바비롤리 신보로 기대한 것은 BBC 레전드에서 나왔다는 브루크너 교향곡 3번의 CD였는데, 이 CD도 아직은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3. 북독일 방송 교향악단 시리즈-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 (EMI)
ⓟ 2004 NDR/EMI Music Germany GmbH
오사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50년도 넘게 상임 지휘자로 있으면서-클래식 종주국인 서양에서도 이만큼 오래 해먹은(???) 지휘자를 꼽으라면 빌렘 멩겔베르크와 예프게니 므라빈스키 밖에 없을 듯-수없이 많은 음반을 만든 아사히나 다카시의 녹음이 드디어 메이저 음반사인 EMI에도 등장했다.
아사히나는 늦깎이로 데뷰하기는 했지만, 1950년대 초반에 베를린 필을 처음 지휘했을 정도로 유럽 진출이 빨랐던 지휘자였다. 북독일 방송 교향악단과는 생애 동안 총 6회의 객원 출연을 했다고 하는데, 그 중 가장 마지막인 1990년의 실황녹음이라고 한다.
자신의 애마(???) 오사카 필을 지휘한 음반들이 '기량 부족' 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에는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대면한 것이니 평론가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꽤 잘 다듬어진 연주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