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
잊혀진 명연-1.장엄미사
머나먼정글
2004. 9. 15. 23:05
베토벤은 아홉 곡의 교향곡으로 대표되는 기악곡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고, 이들 작품은 지금도 기본 레퍼토리로서 흔들림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성악 분야에서는 다른 작곡가들보다 약한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특히 종교 음악 분야에서 지금까지 꾸준히 연주되는 작품은 이 곡과 '미사 C장조', 오라토리오 '감람산의 그리스도' 뿐이다.
이 '장엄 미사' 는 앞에서 열거한 나머지 두 작품의 미숙함을 충분히 보상하는 곡으로, 후속작인 교향곡 제 9번과 함께 베토벤이 고전 양식을 받아들여 작곡한 최후의 대규모 작품이다. 본래 그의 최대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이 올뮈츠(현 체코 올로모우츠)의 대주교로 취임하는 것을 기념해 작곡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시기를 맞추지는 못했다.
이 곡은 콘서트 홀과 교회 모두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베토벤 자신은 이 곡을 "오페라 '피델리오' 를 대신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대규모 오라토리오" 라고 했다. 실제로 80분이 넘는 연주 시간, 미사의 통상 텍스트 순서를 무시하는 진행(크레도), 연극 풍의 에피소드 삽입(아뉴스 데이의 군악풍 팡파르와 독창자들의 긴장된 낭창) 등은 당시 통념에 비추어 보았을 때 상당히 도전적인 것이었다.
베토벤은 가장 완성된 교회 음악 양식을 '아 카펠라' 라고 했고, 초기에도 이러한 양식으로 작곡을 시도했다고 한다. 또한 팔레스트리나, 조스캥 데 프레 등 중세 작곡가들의 교회 음악 어법을 연구하기도 했는데, 작업이 궤도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의도적으로 이러한 것들을 무시했던 것이다(단, 크레도의 '성모 마리아에 의해 잉태되었다(Et incarnatus est. 4:50~6:44)' 부분은 의도적으로 도리아 선법을 사용해 신비감을 강화시키고 있음).
또한 이 곡은 베토벤 후기 양식과 고전 양식 간의 대립과 조화를 동시에 보여 주는데, 전 악장에 걸쳐 푸가와 푸가토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 고전주의 시대에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던 대위법을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성악 파트에 기술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많고(특히 크레도의 후반부 푸가. 15:32~19:48), 위에 쓴 것처럼 아직도 콘서트 홀과 교회 양 측에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연주 빈도는 적은 편이다.
이 '장엄 미사' 는 앞에서 열거한 나머지 두 작품의 미숙함을 충분히 보상하는 곡으로, 후속작인 교향곡 제 9번과 함께 베토벤이 고전 양식을 받아들여 작곡한 최후의 대규모 작품이다. 본래 그의 최대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이 올뮈츠(현 체코 올로모우츠)의 대주교로 취임하는 것을 기념해 작곡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시기를 맞추지는 못했다.
이 곡은 콘서트 홀과 교회 모두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베토벤 자신은 이 곡을 "오페라 '피델리오' 를 대신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대규모 오라토리오" 라고 했다. 실제로 80분이 넘는 연주 시간, 미사의 통상 텍스트 순서를 무시하는 진행(크레도), 연극 풍의 에피소드 삽입(아뉴스 데이의 군악풍 팡파르와 독창자들의 긴장된 낭창) 등은 당시 통념에 비추어 보았을 때 상당히 도전적인 것이었다.
베토벤은 가장 완성된 교회 음악 양식을 '아 카펠라' 라고 했고, 초기에도 이러한 양식으로 작곡을 시도했다고 한다. 또한 팔레스트리나, 조스캥 데 프레 등 중세 작곡가들의 교회 음악 어법을 연구하기도 했는데, 작업이 궤도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의도적으로 이러한 것들을 무시했던 것이다(단, 크레도의 '성모 마리아에 의해 잉태되었다(Et incarnatus est. 4:50~6:44)' 부분은 의도적으로 도리아 선법을 사용해 신비감을 강화시키고 있음).
또한 이 곡은 베토벤 후기 양식과 고전 양식 간의 대립과 조화를 동시에 보여 주는데, 전 악장에 걸쳐 푸가와 푸가토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 고전주의 시대에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던 대위법을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성악 파트에 기술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많고(특히 크레도의 후반부 푸가. 15:32~19:48), 위에 쓴 것처럼 아직도 콘서트 홀과 교회 양 측에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연주 빈도는 적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