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한데 뭉뚱그려 놓은 듯한 것이 바로 재일동포 사회다. 일본은 현재 대한민국-즉 남한-과 정식 수교 관계를 맺고 있지만, 북한과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동포 사회에 존재하는 민단과 총련 두 단체가 증명하듯, 동포 사회도 마찬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일본에서 그나마 '재외국인' 으로 대접을 받는 교포들은 민단 교포들, 즉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교포들 뿐이다. 나머지 교포들은 완전히 다른 제 3국의 국적이거나 일본 국적, 혹은 무국적자다. 이들은 제 3국이 수교국인지 아닌지에 따라서 그 대접이 판이하게 틀려진다.
문제는 바로 '무국적 교포' 들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이들을 '북한 국적', '조총련계' 라고 싸잡아 부르고 있다. (최근에는 양방언이 지하철 공짜신문 '메트로' 에서 북한 국적이라고 언급된 사례가 있음) 물론 그들 중 몇몇은 총련의 열성 추종자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총련에서 후원하고 운영하는 조선학교를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따질 것은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 그들은 국적이 없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외국인 등록증에 국적이 씌여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국적은 현재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Korea' 라는 나라다. 해방 이전의 식민지 상태였던 '조선' 이라는 것이다. 그 '조선' 이라는 단어는 북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 세워지면서 북한으로 단정지어졌고, 그들은 자동적으로 '빨갱이' 가 되었다.
이들 무국적자, 즉 '조선적' 동포들은 이러한 오해 때문에 남한에는 아예 가지도 못했고, 심지어 일본 내에서도 법적인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는 처지 속에서 몇십 년을 애매하고 힘겨운 위치에서 살아가야 했다. 물론 북한이 보낸 '북송선' 을 타고 조선학교에서 배운 '조국' 의 품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도 수십만 명이나 되는 조선적 동포들이 일본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상황이었던 만큼, 민단 동포들과 조선적 동포들이 제대로 교류를 시작하게 된 것은 2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원 코리아' 라는 구호 뒤에는 해결해야 될 서로간의 앙금과 '두 개의 조국' 이라는 원초적인 문제가 쌓여 있어 순탄하지만은 않다.
재일교포 바이올리니스트 정찬우는 민단 동포로, 오자와 세이지와 야스나가 도루-베를린 필 악장-등 쟁쟁한 현역 음악인들을 배출하고 있는 일본 사립 음대의 명문인 도호음대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도호음대 졸업 후에는 파리 음악원으로 유학했고, 그 곳에서 수석으로 졸업했다. 프랑스 유학을 마친 뒤 KBS 교향악단과 도쿄 교향악단에서 악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해체된) 금호 아시아나 현악 4중주단의 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 양국을 오가며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대한민국 국적 소지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같은 국적이 아닌 동포들의 현실도 잘 알고 있었다. 도호음대에 다닐 때 그 몇 년 아래 후배가 조선적 소지자로서는 일본 음대에 처음으로 들어간 지휘자 김홍재였고, 둘은 2000년 6월 8일 도쿄도 미타카시의 예술문화회관에서 '유니티 콘서트' 를 개최하면서 처음으로 협연했다.
이들이 앵콜곡으로 연주한 곡은 각기 두 조국을 대표하는 가곡의 편곡이었다. 김성태의 '동심초' 와 고종환의 '림진강' 이었는데, 특히 '림진강' 은 국적과 사상을 떠나 재일동포들의 망향가로 정착되어 있는 노래인 탓에 분단의 아이러니와 감동을 동시에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정찬우는 1999년부터 일본에서 솔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때 일본의 킹레코드에서 녹음한 음반 두 장이 국내에서 미디어신나라의 라이센스로 발매된 바 있다. 하나는 라벨의 '치간느' 를 비롯한 서양 바이올린곡이 들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남한의 가곡과 민요를 바이올린과 실내 관현악 협주용으로 편곡한 앨범이었다.
국내 평단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전자였고, 후자의 경우에는 단순한 '한국 가곡 앨범' 쯤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후자인 '임진강~망향의 바이올린' 은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고, 있다고 해도 클래식 코너와 민요 코너 어느 쪽에도 자리잡기 애매한 탓에 직원들도 모르고 있던 경우가 많았다.
'아리랑 모음곡' 으로 시작해 예의 '림진강(임진강)' 으로 끝나는 '임진강...' 에는 모두 14곡의 가곡과 민요 편곡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제는 '친일 음악가' 의 대명사가 된 모리카와 준(홍난파)의 '봉선화' 도 있고, 특이하게 김영동의 영화 주제가 '어디로 갈꺼나' 도 들어 있다. 하지만 남한의 작곡가들에 대해서는 '알거 다 알게 된' 탓에 저 앨범에서 제대로 듣고 있는 곡은 딱 절반인 일곱 곡에 불과하다. (물론 김영동의 작품은 아주 예외적으로 포함됨)
편곡은 일반적인 가곡 편곡과 다를 바 없지만, 김영동의 작품 등 민족색이 짙게 밴 곡의 경우 가야금 등 전통악기를 추가시키고 있다. 또 '태평가~천안삼거리' 는 독주 파트가 대단히 열정적이고 화려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관현악 연주는 이나다 야스시가 지휘하는 콩세르 에스푸아르라는 실내악단이 맡고 있다.
물론 타이틀의 '망향' 이라는 것은 이 경우 '한국' 을 뜻하는 것 같으며, 북한 작품은 '림진강' 하나밖에 없는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섯 곡의 민요는 그 발원지를 떠나 남북 어디에서든 부담없이 부르고 연주할 수 있으므로, 나름대로의 '중립성' 을 확보하고자 한 컨셉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북한 노래가 몇 곡 더 있었더라면 국내 라이센스는 커녕, 수입도 매우 힘들었으리라)
라이센스로는 2002년도에 나왔으니 겨우 2년 정도가 지난 상태지만, 현재 많은 음반 가게에서 사라져 버린 상황이라 지금은 구하기가 꽤 힘든 상황이다. 물론 종로 일대의 소매상이나 신나라레코드 체인점에서는 몇 장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국내 음반 시장의 유통 구조상 지방에서 구하기는 더욱 쉽지 않을 것 같다. 단순히 '싸구려 편곡 앨범' 으로 무시하기에는 상당히 개성적이고, 또 한국 국적의 음악인이 '림진강' 을 녹음했다는 의의도 있고 해서 너무도 빨리 사라지고 있는 것이 매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