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

독일 대학생의 노래 전집 발매

머나먼정글 2004. 8. 15. 00:34
ⓟ 2004 C-Sharp Music Co.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독일도 상당히 막강한 민속음악 자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독창이 주가 되는 에스파냐나 그리스 같은 남유럽 국가들과 달리, 독일의 민요들은 합창이나 중창 형식으로 연주되곤 한다. 그것이 정형화된 합창단이건, 술집에서 취기가 돌아 부르는 것이건 간에 독일인들은 여럿이서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독일이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오합지졸 수준의 신성로마제국에서 독일 제국으로 탈바꿈하던 18세기는 민족주의의 흐름이 대단히 강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문학/예술 부문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나타났는데, 나폴레옹의 침공 때 '독일 국민에게 고함' 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던 피히테를 비롯해, '민족의 소리' 라는 제목의 독일 민요집을 편찬한 헤르더 같은 문인들은 지금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더불어 18세기 말에는 독일 대학생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모은 선집도 출판되었다. 당시 독일의 대학가는 민족주의의 열풍에 휩쓸려 있던 동시에, 프랑스 혁명이 유발시킨 자유화를 촉진하도록 요구하는 일종의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흐름이 때로는 과격화되어 독일 역사에서 가장 큰 오점으로 지적되는 반유태주의 단체가 조직되기도 했고, 당국의 학생회들에 대한 탄압도 가중되었다.

그래서인지 이 시기에 출판된 선집에는 유명한 작곡가 베버가 곡을 붙인 '뤼초프의 사냥' 처럼 올곧은 민족주의 경향의 노래부터 소위 '돈빨' 로 대학에 들어간 신흥 부르주아 계층 학생들을 비꼬는 '소유와 교양' 같은 풍자 가요까지 다양한 곡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곡들이 주로 술자리에서 불렸다는 것에 착안해 '콤머스부흐(Kommersbuch, 술자리의 책)' 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선집도 있었다.

이들 노래집은 대부분 무명 작곡가의 노래나 기존의 옛 노래들을 콘트라팍툼(contrafactum. 노래 가사 바꾸기)해서 만든 패러디송 등이 차지하고 있지만, 개중에는 위의 베버를 비롯해 슈베르트 등의 가곡까지도 들어 있다. 브람스가 학생가로 '대학 축전 서곡' 을 작곡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시기의 민요는 요즘의 대중 가요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이러한 곡의 가사와 곡조는 프로 문인들과 작곡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다.

미국의 뱅가드(Vanguard)가 2차대전 후 오스트리아 음악인들을 모아 출반한 다섯 장의 '독일 대학생 노래집(German University Songs)' 은 17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많은 학생가와 그에 준하는 민요를 수록하고 있다. 게다가 앨범의 독창은 유명한 바리톤 가수인 에리히 쿤츠(Erich Kunz)가 맡았고, 합창과 관현악은 빈 국립 오페라의 합창단과 관현악단이 맡았다.

이러한 스타 플레이어의 기용이 용이했던 점은,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 음악인들의 생활비가 대단히 쪼들리고 있었다는 점을 반증하기도 한다. 쿤츠 자신도 빈 국립 오페라 협회의 인터뷰에 의하면 처음에는 이러한 학생가와 민요를 부르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며, 레코드사의 요청 때문에 억지로 취입하게 되면서 이렇게 많은 곡이 모인 앨범이 되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이 시리즈는 국내에 1집과 2집이 들어온 적이 있었지만, 나머지 세 장의 음반들은 정식 라이센스도 수입도 되지 않고 있었다. 뱅가드라는 회사의 CD 자체가 3000원 정도의 헐값으로 몇 년째 레코드점들의 구석진 곳에서 '썩어가고' 있던 것도 가치 하락의 불길한 징조였다. 신보의 조달은 더디었고, 그나마 대부분이 예전 녹음들의 재탕이었다.

뱅가드가 '아르테미스 클래식스' 라는 회사에 인수되면서 제 2의 창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 1년 전 쯤이었고, 올해 그 여세를 몰아 다섯 장의 음반 모두가 세트로 묶여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가격은 22500원(종로 뮤직랜드 기준)이라는 초염가로 매겨졌는데, 이번에는 신보 코너에도 나름대로 공을 들인 디스플레이와 함께 진열되어 있어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수록된 곡들은 대부분 위의 '콤머스부흐' 등 대학생 노래 선집에 수록된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지만, 개중에는 20세기에 만들어진 곡들도 있었다. 특히 1930년대 중반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만들어졌다는 '무어인 병사의 노래(4집에 수록)' 는 그 저항적인 내용 때문에 주목할 만한 노래다.

각 CD들의 속지에는 독일어 가사가 제공되고 있고, 슈베르트 작품의 목록을 작성한 것으로 유명한 음악학자 오토 에리히 도이치의 해설도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몇몇 메들리 작품의 가사는 부실하며, 움라우트 문자들(ä, ö, ü)의 표기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등 미흡한 점이 보이기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CD에 수록된 대부분의 노래들은 넷상의 독일 민요 사이트들에서 가사가 제공되고 있으므로 그런 곳들을 참조하는 것이 좋을 지도.

독일 민요 사이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