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 '윤이상' 이라는 이름 석 자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20세기의 위대한 작곡가' 에서부터 '빨갱이' 까지 온갖 긍정과 부정의 의견이 난무하며, 그 와중에 그의 '음악' 은 '파란만장한 일대기' 나 '남북 이념 대결 논쟁' 같은 감정과 대결 의식에 점점 파묻혀가는 것 같다.
남한 사람들에게 윤이상 음악은 어쩌면 그 기법의 난해함 때문에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 될 지도 모르며, 특히 음악이 위의 에피소드나 논쟁에 점점 더 가려짐에 따라서 더 그럴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귀중한 음반 한 장이 입수된 것은 2주 전의 일이었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남북 모두 윤이상 음악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게 된 해가 1982년이었다. 이 해에 남한에서는 '대한민국 음악제' 에서 윤이상 작품이 두 번의 콘서트를 통해 공식적으로 소개되었고, 북한에서는 조선 국립 교향악단에 의해 '광주여 영원히!(1981)' 가 연주되었다. 물론 남한에서는 그 이전인 1970년대에도 '낙양' 같은 실내악이 연주되기도 했지만, 매우 간헐적이었고 그나마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도 못했다.
북한이 '광주여 영원히!' 를 첫 곡으로 선택한 것도 분명히 정치적인 속내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무턱대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속내가 어떻든, 북한은 남한의 '통영 국제 음악제' 에 대응되는 '윤이상 음악회' 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이 음악회는 관현악 부문에 조선 국립 교향악단, 실내악 부문에 윤이상 관현악단이 주축이 되어 윤이상 곡 외에도 여러 서양 작품을 곁들여 연주하고 있다.
윤이상 관현악단은 이름에서 보듯, 창단(1990.12) 때부터 윤이상 음악에 주력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다만 국립 교향악단에 대편성 작품을 맡기고, 소편성 작품을 주로 연주시키기 위해 서양의 실내 관현악단 정도로 규모를 작게 꾸몄다. 북한 출신으로서는 유일하게 카라얀 지휘 콩쿨에 입상-1위 없는 2위-한 지휘자 김일진이 창단 때부터 엄격한 오디션을 직접 주관했고, 지금도 간간히 객원으로 지휘하고 있다고 한다.
이 관현악단의 수석 주자들이 급조한 '평양 윤이상 앙상블' 은 1999년에 '세계 문화의 집(Haus der Kulturen der Welt)' 이라는 독일 문화 재단의 지원으로 중국과 독일에서 첫 해외 공연을 가졌다. 중국에서는 주로 프리뷰 형식으로 베이징에서 1회 공연했고, 독일에서는 베를린, 데트몰트, 본, 비스바덴, 라인스베르크와 엘마우 여섯 개 도시를 돌며 순회 공연을 가졌다. 이 시리즈는 호평을 받았고, 북한의 현대 음악과 세계 음악 수용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되었다.
평양 윤이상 앙상블은 독일 체제 중 현대음악 전문 음반사로 유명한 베르고(Wergo)에 취입할 기회도 얻었는데, 하이델베르크 근교 잔트하우젠의 타이예 반 기스트 음향 스튜디오에서 5월 10-12일 3일 동안 다섯 곡을 녹음했다. 이 녹음은 다음 해 CD로 출반되었고, 조선 국립 교향악단이 일본 음반사 카메라타(Camerata)에서 1987년 취입한 이래 두 번째 기록이 되었다.
이 CD는 조선 국립 교향악단의 윤이상 작품 CD가 발매된 데 힘입어 국내에도 정식 수입되었는데, 매우 적은 물량만이 들어온 탓에 제대로 구경도 해보기 전에 이미 재고가 떨어져 버린 상태였다. 그러다가 종로 시사영어사 지하의 뮤직랜드에서 다시 윤이상 코너를 뒤진 결과 딱 한 장 남아있는 것을 살 수 있었다. 22000원이라는 가격-물론 회원 카드가 있어서 19000원대로 깎을 수 있었다-은 확실히 부담이었지만, 그것보다 3년도 넘게 기다린 시간이라는 부담을 덜 수 있었던 것이 더 중요했다.
CD에 수록된 곡은 '협주적 단편(1976)', '현악 4중주 제 5번(1990)', '환상적 단편(1988)', '융단(1987)' 과 '밤이여 나뉘어라(1980)' 다섯 곡이었는데, 마지막 곡 '밤이여 나뉘어라' 에서는 북한의 유망 여성고음(소프라노) 가수인 리향숙이 독일어 원어(!)로 노래했다. 만수대예술단 소속인 리향숙은 2000년 조선 국립 교향악단 서울 공연 때 같이 답방했고, 올해 5월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주세페 디 스테파노 국제 성악 콩쿨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한 가수다.
윤이상 앙상블의 다른 구성원들도 북한의 전문 주자들 답게 화려한 진용이었다. 플루트의 리창명은 만수대예술단 공훈여성기악중주단의 플루트 수석으로 유명하고, 호른의 신광호와 타악기의 김현은 조선 국립 교향악단의 수석 주자를 겸임하고 있다. 제 1바이올린 주자 김철룡은 북한에서 처음으로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 세 곡을 모두 연주한 경력이 있고, 바순 주자 최상순은 윤이상 관현악단 단장도 겸하고 있다.
CD 중 '협주적 단편' 과 '밤이여 나뉘어라' 는 기존에 발매된 CD와 겹치는 곡이라서 비교 청취도 가능했다. 물론 두 곡 모두 비교 청취 대상으로 택한 카메라타와 국내 레이블 뮤제트(Musette)-지금은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짐-의 것을 능가했다. 카메라타에 취입한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실내 앙상블보다 곡의 핵심을 잘 파악해냈고, 리향숙은 약간 신경질적인 대목이 있기는 했어도 국내 소프라노 윤인숙의 연주 보다는 더 안정되어 있는 것 같다.
물론 곡 자체의 약점이라는 것도 존재하기 마련이어서, 1980년대 후반에 쓰여진 세 곡의 경우에는 지휘자 임헌정이 지적했듯 '똑같은 스타일의 반복이 지루함을 안겨준다' 라는 인상을 피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 평가' 도 들어 본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것인 만큼, 이 CD의 발매 의미는 무엇보다 큰 것이었다. 단순히 '북한 사람들의 연주' 라는 말초적이고 지엽적인 스캔들 거리보다도 훨씬.
이 CD가 기존의 드물었던 재고인지, 아니면 재차 수입된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윤이상 음악의 신보 CD가 별로 없는 요즘 상황에서는 정말로 '가뭄에 단 비' 가 틀림 없었다. '예악' 의 세계 초연 실황이 담긴 CD(역시 베르고에서 나옴)도 기대되는데, 이것은 수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고생 시작?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