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scow State Conservatoire named after P.I.Tchaikovsky
풍월당에서 세일을 했을 때, 정말로 듣도 보도 못한 상태임에도 아무 거리낌없이 (그리고 보인 즉시) 집어든 CD가 있었다. 어디서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 단지 키릴 문자와 알파벳으로만 적혀 있는 매우 해적판스러운 것이었다.
바로 제 1회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쿨의 실황 음반이었다.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 콩쿨은 폴란드의 쇼팽 국제 콩쿨, 벨기에의 엘리자베스 여왕 국제 콩쿨과 함께 세계 3대 콩쿨로 손꼽히는 음악 경연대회의 명가다. 물론 나는 예후디 메뉴인의 말처럼 콩쿨을 거의 거절하는 입장인데, 내 생각과는 별도로 저런 평가까지 깎아내릴 이유는 없을 것 같다.
1958년에 개최된 제 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제국' 으로 낙인찍혀 있던 소련의 위신을 세우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인 목적도 있었다. 그런 만큼 소련 측은 나름대로 치열하게 가려 뽑은 유망한 후보자를 대거 투입해 입상을 노렸다. 하지만 이 첫 회는 오히려 소련 예술계에 일종의 망신살이 뻗치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두 부문만 있었던 당시 콩쿨에서 바이올린 부문의 1등은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제자인 발레리 클리모프(Valery Klimov)가 따내면서 러시아 바이올린 학파의 위력을 과시했지만, 피아노 부문에서 뽑힌 1등은 당시 소련의 최대 적수였던 나라인 미국의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Van Cliburn)이었다.
게다가 피아노 부문의 2등은 클래식 부문에 있어서 후진국이나 다름 없었던 중국 출신의 10대 피아니스트 류시쿤이 30살의 '선배' 레프 블라센코(Lev Vlasenko)와 공동으로 나눠 가졌다. 소련 당국은 이러한 결과에 크게 노했고, 결국 1회 때 참여한 심사 위원의 대부분이 자의던 타의건 간에 다음 콩쿨 때 참가할 수 없었다.
클라이번은 귀국하면서 거의 스포츠 스타에 가까운 열광과 대접을 받으면서 영웅이 되었는데, 그 환희의 순간에 너무 사로잡혔는지 어쨌는지 70년대 들어 '매너리즘' 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면서 잠정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반대로 2위에 입상한 류시쿤의 경우에는 60년대에 시작된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에 의해 투옥되었고, 보스턴 교향악단과 방중한 오자와 세이지가 협연 요청을 할 때까지 수 년간 피아노 구경도 못하고 감옥에서 벽을 건반삼아 두드려야 했다.
클라이번과 류시쿤이 각자 '자뻑' 과 '다굴' 로 쇠락하기 이전의, 그것도 연주 생활 초년병의 약간 긴장되고 뻣뻣한 모습으로 연주한 녹음이 남아있다는 것은 대단히 솔깃한 것이었다. 물론 저 CD는 두 장 세트고, 위의 두 피아니스트 외에 클리모프와 블라센코의 연주도 같이 수록되어 있다. 클라이번의 경우에는 앵콜로 연주한 듯한 라흐마니노프의 회화 연습곡 5번과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4번 '마제파' 도 같이 들어 있다.
클라이번은 '샤인' 으로 유명해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는데, 비록 콩쿨 이후 남긴 여러 스튜디오 녹음에 비교하면 아직 좀 거칠고 미숙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미국 피아니스트에게 쏟아진 소련 청중들의 '브라보' 라는 환희가 괜히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협주곡 뒤에 실린 두 독주곡은 어떤 의미에서 협주곡의 것을 능가했다.
류시쿤은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고,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등의 것에 비하면 템포가 비교적 느린 편이었지만 대신 기교의 과욕에서 오는 흠집이 별로 없는 단정한 모습이었다. 대신 그 카리스마라는 면에서는 클라이번에 약간 뒤지는 것 같았다. 러시아에서 유학하면서 얻은 성과가 살아 있었다.
두 번째 디스크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는 두 연주자-클리모프와 블라센코-가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들을 연주한 녹음이 실렸다. 클리모프의 경우에는 바이올린 1위 입상자임에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차이코프스키 곡이 어려움을 감안해도 연주가 꽤 불안했다. 그나마 3악장에서 오이스트라흐의 제자 답게 '냉정과 열정 사이' 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몰입했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입상자들의 연주 가운데서는 가장 실망스러웠다.
블라센코는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을 연주했는데, 템포 자체는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전설적인 1980년 실황을 연상케 할 정도로 빠르게 잡았지만 곳곳에서 음표가 흩날리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류시쿤이 안정을 위해 템포를 희생했다고 치면, 블라센코는 그 반대였던 것 같다. 하지만 입상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탓도 있었는지 잔실수를 개의치 않는 듯한 털털한 면도 엿보였다.
협주곡들은 모두 키릴 콘드라신이 지휘하는 모스크바 필이 협연했는데, 서방에 '협주 전문 지휘자' 로 알려졌던 그의 악단 통솔과 독주자 간의 호흡을 파악하는 방법을 잘 가르쳐 주는 녹음이다. 물론 클라이번과 류시쿤 등 '외국인' 들과 협연한 경우에는 종종 의견차가 나타나는 대목도 있었는데, 실수가 나타나는 즉시 수습하는 임기응변의 자세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저 CD를 권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어와 영어로 기재된 속지는 콩쿨의 역사와 입상자들의 프로필 등이 비교적 소상하게 기재되어 있어서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CD의 수록 방법이었다.
협주곡을 한 트랙에 몽땅 담아놓는 경우는, 해적판 음반사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 덕분에, 주말 시간 때 협주곡만 따로 WAV로 추출해서 트랙을 나눈 뒤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물론 다악장 곡은 웬만하면 끊어서 듣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원칙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트랙을 나누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인 만큼 대단히 아쉽다. 그리고 녹음 연도가 연도고, 녹음 기술도 기술인 만큼 음질이 좀 떨어진다는 점도 각오해야 한다.
저 CD는 시리즈로 계속 발매된다고 속지에 기재되어 있던 만큼, 피아노 부문의 정명훈이나 성악 부문의 최현수 같은 국내 연주가들의 당시 녹음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 콩쿨 무대의 긴장과 무대 경험 부족 등의 미비점은 많을 수도 있지만, 이후 연주 생활을 하게 되면서 따라다니는 공포의 매너리즘과 속임수 등이 없이 정면으로 승부하는 생생한 장면을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