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
히사이시 조-공상미술관
머나먼정글
2004. 5. 14. 13:13

국내에는 주로 미야자키 하야오와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음악 작곡가로 알려진 히사이시 조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한 라이브 앨범은 지금까지 네 종류(+DVD 하나) 나와 있다. 그 중 첫 라이브 앨범인 'Symphonic Best Selections(1992)' 와 두 번째 라이브 앨범인 'Works II(1999)' 는 국내에도 라이센스로 발매된 바 있다. 'Super Orchestra Night(2001)' 와 '공상미술관(2003)' 은 아직 라이센스가 출반되지 않고 있다.
네 종류의 라이브 앨범 중 소가 다이스케가 도쿄 시티 필과 간사이 필을 지휘한 'Works II' 를 제외하면 재일동포 지휘자 김홍재가 신일본 필을 지휘한 연주 실황이 주축이 되어 제작되었다. 2001년 라이브에서는 히사이시 최초의 영화감독작 '콰르텟' 의 스트링곡 'Student Quartet' 을 히사이시가 직접 지휘했고, 이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 녹음 때 직접 지휘를 맡을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최근에 발매된 '공상미술관' 에서는 히사이시의 피아노 연주 비중이 줄고, 지휘를 따로 한 음원이 추가되는 등 이전 앨범들과 차이점을 보여주었다. 오케스트라 연주의 라이브는 아홉 곡, 그리고 아홉 명의 첼로 앙상블을 직접 지휘한 라이브 세 곡이 커플링된 것부터 그렇다.
히사이시는 테마곡 'Musée imaginaire' 와, 국내에는 '바람의 검 신선조' 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영화 '미부 기시덴' 의 OST를 'MIBU' 라는 타이틀의 순수 관현악곡으로 편곡했고, 'Etude' 앨범의 첫 곡인 'Silence' 의 인트로로 글렌 밀러의 유명한 'Moonlight Serenade' 를 특별히 편곡해 쓰고 있다. 이것도 히사이시의 라이브 앨범 중 최초의 타인 작품 사용이었다.
한편 녹음 면에서도 이 라이브 앨범은 하나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물론 앨범 커버나 히사이시 조 홈페이지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관현악 아홉 곡은 니가타 시민예술문화회관(7월 26일)과 도쿄 예술극장(8월 14일)에서 열린 두 번의 라이브를 편집한 것인데, 부득이 두 번의 공연을 편집하게 된 이유는 한 일본인 콘서트 고어의 니가타 공연 후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달에 홀린 사람(라이브 앨범에서는 여섯 번째 곡)' 은 콘트라베이스 연주로 시작되는 경쾌한 곡이었는데, 약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중략)...지휘자 김홍재씨는 그 예상치 못했던 관현악의 음색 문제에 놀랐는지, 아니면 지휘에 힘이 들어가 있었는지 지휘대 근처의 마이크 스탠드에 지휘봉이 맞아버린 것이었습니다. 당황한 김씨가 왼손으로 마이크 스탠드를 잡아 다행이었습니다..."
니가타 시민예술문화회관은 니가타현에서 특별히 막대한 자금과 최신예 기술을 듬뿍 들여 만든 콘서트홀이고, 오케스트라인 신일본 필이 니가타시와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은 만큼 히사이시도 오케스트라 라이브는 니가타 실황을 그대로 사용하려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저 에피소드 때문에 최소한 '달에 홀린 사람' 은 도쿄 실황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실황 비중이 이전보다 작아진 것도 나름대로 불만 사항으로 남겠지만, 실제 공연의 프로그램을 살펴본 결과 '토토로' 의 오케스트라 스토리즈 버전과 2001년 라이브의 몇 곡을 그대로 연주했기 때문에 굳이 추가할 필요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그리고 오케스트라 스토리즈 버전은 추가하더라도 CD 1장의 수록 시간을 넘겨버리기 때문에 애당초 제외되었을 듯-.
마지막 세 곡은 히사이시가 지휘만 한 것으로, '마녀배달부 키키' 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의 테마, 그리고 첫 곡인 'Musée imaginaire' 의 첼로 앙상블 버전을 수록하고 있다. 맛배기라는 인상이 짙은 커플링이었는데, 실제로 이 실황-4월 16일 도쿄 오페라 시티 콘서트홀-은 일본에서 DVD로 출시되어 있다.
커플링과 라이브 에피소드 등의 가십거리 외에, 음악면에서도 주목할 점이 많다. 1992년부터 제작된 일련의 라이브 앨범을 계속 들어 보면서 히사이시 자신의 음악 스타일 변화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데, 갈수록 전위적인 성격이 강조되는 탓에 초기 라이브 앨범에 익숙해진 사람은 받아들이기 조금 힘들 수도 있다.
물론 그러한 전위성과 통속성을 적절히 조합하는 것이 히사이시 라이브 공연의 묘미인데, 오케스트라 트랙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a Wish to the Moon' 은 그 동안 라이브에서 선곡된 많은 곡들 중 가장 유머러스한 기분을 잘 살린 것 같다. 심지어 후반부에 가면 바이올린 주자들은 연주를 멈추고 테마 선율을 휘파람으로 불기까지 하고 있다.
한편 히사이시 조는 올해 들어 신일본 필이 여름 시즌에 특별히 조직하는 팝스 오케스트라인 '월드 드림 오케스트라' 의 음악 감독으로 내정되었는데, 이로서 본격적인 팝스 콘서트의 지휘자로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그 첫 시리즈로 센다이(7월 19일)에서 나고야(7월 30일)까지를 도는 일본 투어가 예정되어 있고, 이 실황도 라이브 앨범으로 제작된다고 한다. 히사이시의 자작곡들 뿐 아니라 여러 영화 음악의 명작들도 편곡해서 연주한다고 하기 때문에, 이것도 나름대로 기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