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해마다 '전일본 취주악 경연대회' 를 열고 있으며, 여기에는 수백 개의 취주악단이 참여한다. 물론 대부분이 학생들이나 아마추어들의 밴드이며, 참가 밴드에게 주어지는 과제곡도 대부분 일본 작곡가들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입상한 밴드들의 연주가 담긴 음반을 들어보면, '과연 이게 서클 활동 수준의 취주악단 연주란 말인가' 라고 놀라게 될 것이다.
일본의 취주악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바로 '도쿄 조선 취주악단' 이라는 재일동포 아마추어 악단의 연주가 담긴 CD였다. 거기서 고나가야 소이치(小長谷宗一, 1949-)의 '스타 퍼즐 마치' 와 '카니발 마치' 두 곡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곡목만이 일본어로 소개되어 있었고, 두 곡 모두 가타카나로 표기되어 있어서 미국 혹은 영국 작곡가의 곡으로 알고 들었던 것이었다. 일본인 작곡가의 곡임을 알고 경악하게 된 것은 한참 후였고.
'스타 퍼즐 마치' 는 '반짝 반짝 작은별...' 이라는 가사로 유명한 동요-모차르트도 유명한 피아노 변주곡을 썼음-의 선율을 가지고 만든 행진곡이다. 하지만 원래 선율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리듬에 특히 변화를 많이 주어 독특하게 '재탄생' 시켜 놓았다. 중간부까지도 같은 소재를 쓰고 있지만, 이러한 서법이 결코 지루함을 느끼게 하지 않는 것도 숙련된 사람의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카니발 마치' 는 작곡자의 오리지널로 여겨지는데, 제목 대로 축제 분위기가 넘치는 곡이다. 일반적인 취주악 편성에 마라카스, 카우벨 같은 비정규 타악기들과 호루라기까지 쓰이고 있어서 리우데자네이루의 삼바 축제를 연상시킬 정도로 꽤나 시끌벅적한 느낌이며, 중간부는 위의 곡처럼 볼륨을 줄여서 확실히 구분되게 하고 있다.
위의 두 곡은 모두 '전일본 취주악 경연대회' 에서 최종 결선곡으로 쓰인 바 있었는데, 고나가야가 이미 일본 취주악계에 있어서 부동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작곡가라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실제로 그의 많은 취주악 작품은 아마추어 밴드들은 물론이고, 자위대 소속의 취주악단들까지 음반으로 내놓고 있다.
일본 땅에서 자라난 재일동포들도 일본 문화의 영향을 안받고 지내지 않을 수 없다. 취주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들만의 경연대회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 경연대회를 거쳐간 사람들 중에는 지휘자 김홍재(클라리넷으로 시작)나 박태영(트롬본으로 시작) 같이 전업 음악가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총련 측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조선학교의 경우, 취주악부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위의 도쿄 조선 취주악단뿐 아니라 오사카 조선 취주악단 등 다른 동포 취주악단의 단원들이 거쳐가기도 했고, 매년 개최되는 경연대회에서 각축을 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북한 작곡가들의 작품-'아리랑',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교향곡 '피바다' 등-은 물론이고 위의 일본 작곡가들 작품, 빅 밴드 재즈 넘버, 뮤지컬 송 편곡, 애니메이션 OST-'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라던지-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교포 작곡가들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는데, 특히 취주악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교포 작곡가로 고창수(1970-)를 들 수 있다.
고창수는 오사카 음대 작곡과를 졸업했고, 스위스의 바젤 음악 아카데미에서 유학한 (재일동포로서는 드문) 경력의 소유자다. 실내악 작품들로 일본 현지의 콩쿨에서 수상하기도 했고, 2002년 전일본 취주악 경연대회 과제곡이었던 '라멘트(탄식)' 로 아사히신문 작곡상 취주악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그의 취주악 작품 중 '더 마치' 라는 곡은 작년(2003) 재일 조선학생 예술경연대회 취주악 과제곡으로도 연주되었다.
고창수가 작곡한 취주악 부문의 작품들은 교향곡 같은 대곡도 있지만, 위의 고나가야 작품들과 달리 정통적인 행진곡을 '비튼' 풍자적인 곡들도 있다. '더 마치' 만 해도 4/4박자의 전형적인 행진 비트만으로 진행되지 않고 3/4박자의 왈츠 악구가 난데없이 삽입되거나, 끝맺음을 매우 성의없게 보이도록 하는 등 유머를 노린 것을 알 수 있다.
고창수가 처음으로 작곡한 취주악 행진곡인 '피에로를 위한 마치' 도 마찬가지로 위트가 가득한 작품인데, 약간 멜랑콜리한 3/4박자의 클라리넷 멜로디로 시작하지만 곧장 4/4박자 비트로 바뀐다. 하지만 인트로의 클라리넷 멜로디는 그 뒤에도 박자를 변형시켜 계속 등장하며, 마지막에 가서는 두 선율이 한 데 합쳐지면서 코다로 향한다.
취주악 하면 '학교 밴드부나 군악대에서 맞아가며 배우는 것' 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던 한국의 경우, 취주악 작곡가는 고사하고 취주악단도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학생은 물론이고 샐러리맨, 소방수,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이 아마추어 취주악단을 결성하는 일본의 경우, 취주악이라는 분야가 이미 그들의 생활에서 한 부분이 되고 있기 때문에 전국적인 규모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한반도에서도 해방 후 '밴드 운동' 이 일어나 취주악 분야의 흐름이 활성화 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수밖에 없었다. 음악계의 지도층이 민중들에게 '이렇게 하자' 라고 해서 움직이는 것과, 민중들 스스로가 '이렇게 한다' 라고 해서 움직이는 것의 차이. 그것이 바로 한국과 일본의 취주악 뿐 아니라 음악, 아니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보여지는 차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