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 쯤 'GMV(지구촌영상음악)' 라는 잡지에서 신해철이 연재한 칼럼을 스크랩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방 어디엔가 모셔져 있을텐데, 현재 진행중인 고스트 스테이션을 들어도 알 수 있듯이 다양한 사안에 대한 나름대로의 주장이 실려 있었다.
한국 음악 신의 빈약함을 들기 위해 일본의 예를 인용한 구절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일본의 재즈는 종주국 미국을 이미 넘어섰다' 는 내용이었다.
일본에서 지금까지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찰리 파커 등을 능가하는 명 아티스트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못한 나로서는 좀 심한 비약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질적인 수준' 에 관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 '소비량' 과 '두터운 감상자층' 을 이야기한 것 같았다. 확실히 클래식에서도 그렇듯, 재즈에서도 몇몇 희귀반은 일본에서밖에 구할 수 없는 것이 여러 장 있다고 한다.
조금 이야기를 달리 해서,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린 타로와 오토모 가츠히로 두 사람이 중추가 되어 만든 '메트로폴리스' 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이들 외에도 나가이 고 같은, 로봇물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사람들까지도 제작에 참여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 작품은 흥행 면에서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한 달을 버텼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개봉관이 한정되었던 것도 간판이 빨리 내려간 것도 사실이었다. 대신 미국 등 해외에서의 실적 덕분에 제작비는 간신히 건졌다고들 한다.
흥행이 어쨌건 간에,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인상적으로 본 작품이었다. 물론 현재 전공 관계로 음악 쪽에서 특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메트로폴리스' 의 클라이맥스를 이끄는 구조물로 '지구라트(ziggurat)' 가 있다. 바빌로니아 문명의 유명한 석조 건축물 이름을 따왔는데, 말 그대로 거대한 건축물이다. 시끌벅적한 지구라트의 낙성식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거대한 지구라트가 비춰지는 첫 시퀀스에서 많은 사람들은 할리우드 스타일의 풀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진 음악은 전혀 예상외의, 1940년대에 리바이벌되어 화제가 되었던 딕실랜드 재즈 풍의 시끌벅적한 음악이었다. 장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음악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영상에 절묘하게 혼합되었다.
메트로폴리스의 음악은 일본에서 색소폰 주자로 유명한 혼다 도시유키가 맡았는데, 자신이 직접 이끈 세션 컴보인 '메트로폴리탄 리듬 킹즈' 와 나카타니 가츠아키가 지휘한 세션 관현악단인 '메트로폴리탄 퀸즈 오케스트라(이름 센스!)', 그리고 합창을 맡은-사실 합창이라기 보다는 즉흥적인 스캣이나 랩에 가깝다-'메트로폴리탄 보이시즈' 가 연주하고 있다.
혼다 도시유키는 작품의 주 무대가 되는 대도시의 번화가와, 그 지하의 슬럼가 분위기를 묘사하기 위해 딕실랜드 재즈, 블루스, 탕고(탱고) 등의 대중적인 음악과 '파시즘의 무거운 공기' 를 묘사하기 위한 오케스트라 음악을 섞어서 쓰고 있다.
OST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지금도 자주 듣는 것은 클래시컬한 오케스트라 음악이 아닌 재즈식의 곡들이다-클래식에 80% 가까이 편중된 감상 취향 치고는 아주 드문 예-. 첫 곡인 Metropolis, 슬럼으로 내려가는 장면에서 나오는 Going to 'Zone' 두 곡이 그렇고, 이 두 곡의 주제는 곳곳에서 다양한 어레인지를 거쳐 등장한다. (전자는 아주 낙천적인 분위기, 후자는 나른하고 음울한 분위기)
물론 삽입곡도 빠뜨릴 수 없는데, 조 프림로즈의 St. James Infirmary를 일본의 대표적인 블루스 싱어인 키무라 아츠키가 부르고 있다. 얼핏 들으면 여성 스캣 가수의 목소리로 착각할 정도로 독특한 가창을 보여주고 있다.
OST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은 There'll never be Good-bye라는 노래로, 첫 곡인 Metropolis의 주제로 시작하고 있다. 오바타 '무키' 미나코라는 여가수가 부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나른하고 약간 어두운 스타일의 목소리를 선호하므로 매우 마음에 든다.
여담으로, 저 OST는 올해 시행된 일본 문화 개방 이전에 들어온 일본 OST 중 '온전하게' 출반된 드문 앨범 중 하나다. 저 두 곡이 모두 원본에서도 영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그와는 별도로 저 앨범은 내가 서울 이외의 도시에서 구입한 매우 드문 음반이기도 하다-모 사이트 오프라인 모임 참가차 내려간 대구에서 구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