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

일본 게임/애니음악의 관현악판-2

머나먼정글 2004. 3. 10. 16:08
1980년대에 아마 가장 화제였던 애니 OST의 관현악판 시리즈는 히사이시 조(1950-)의 것들이었을 것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에서 시작된 히사이시 조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업은 올해 개봉 예정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 까지 이어져 오고 있고, 그에 따른 수많은 음반들이 만들어졌다.

히사이시 조는 OST 작업 때 우선 대강의 스토리나 플롯을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들은 후 자기 나름대로의 '이미지 앨범' 을 만든 뒤, 원작의 진척도와 함께 OST로 다듬는 방식을 취한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 앨범' 에 의한 관현악판 앨범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위에 쓴 '나우시카' 와 '천공의 성 라퓨타' 의 심포니 버전이 그 예다. 히사이시 조의 첫 관현악판 앨범이 된 '나우시카' 는 앞서 썼던 70년대 앨범들의 장단점을 공유하고 있다. 관현악의 비중이 그 때보다 높아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신디사이저를 비롯한 전자악기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라퓨타' 에서부터는 전자악기를 배제한 '순수 관현악' 사운드를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나카타니 가츠아키 지휘의 도쿄 시티 필을 기용해 녹음했다. 비록 요즘에는 '관현악의 기량이 조금 더 좋았다면...' 이라는 푸념도 들리지만, 이 앨범을 기점으로 히사이시 조의 관현악판 앨범이 정말 '관현악판' 다워진 것은 사실이다.

히사이시는 라퓨타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야스히코 요시카즈 감독의 '아리온' 음악도 맡았는데, 이 작품도 나카타니 지휘의 신일본 필 연주로 제작된 '교향조곡 아리온' 이라는 관현악판으로 선보였다.

이미지 앨범을 기반으로 한 히사이시 조의 관현악판 앨범은 '원령공주' 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으로 계속 이어져 왔는데, 저 두 앨범은 동구권에서 유명한 악단인 체코 필(지휘는 마리오 클레멘스)을 기용해 녹음되어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두 앨범의 발매 시기 사이에 출반된 '토토로' 관현악판의 경우 상당히 이색적인 시도로 관심을 모았다.

위의 것들처럼 이미지 앨범에 기반을 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프로코피에프의 '피터와 늑대' 나 브리튼의 '청소년 관현악 입문' 같은 곡들처럼 이토이 시게사토가 나레이터로 참가해 녹음된 것이었다. 김홍재 지휘의 신일본 필이 연주한 이 앨범은 나레이션이 들어간 '오케스트라 스토리즈' 와 나레이션이 없는 '교향조곡' 두 버전을 한 장에 담아 놓고 있다.

1980년대 초반에 나온 앨범 중 국내에서는 거의 지명도가 없는 '크러셔 조' 의 앨범도 특별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위의 '아리온' 과 마찬가지로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 '저주받은 걸작' 이라는 주홍글씨가 달려버린 야스히코 감독의 애니메이션인데, 마에다 노리오(1934-)의 음악 만큼은 꽤 신선하고 개성적이었다.

'크러셔 조' 는 OST와 교향조곡판이 거의 같은 시기에 녹음되었는데, OST는 나카타니 지휘의 도쿄 필이 주축이 되어 연주했고 교향조곡은 작곡자가 직접 도쿄 교향악단을 지휘해 녹음했다. 이 두 앨범을 빅터 엔터테인먼트에서 더블 앨범으로 발매한 것이 현재 입수할 수 있는 음반이다.

OST는 디스코 음악이 삽입되어 있는 등 70년대 앨범들의 연장선상에 있는데, 교향조곡의 경우 당시로서는 드물게 관현악만의 연주로 녹음되었다. 제목 그대로 디스코곡인 'Panic in Disco' 까지도 교향조곡에서는 관현악만의 연주인데, 전자악기를 쓰지 않고도 원곡의 느낌을 살릴 수 있었던 작곡자의 역량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88년 발매된 팔콤의 명 RPG '이스(Ys)' 의 교향곡판과 89년 발매된 '소서리언' 의 교향곡판이 유명한데, 이들 앨범은 방금 주문을 넣었으므로 이 시점에서 소개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w'a;;;)

한편 80년대 후반, 거의 동시에 게임 음악의 관현악판으로 화제가 된 작곡가가 두 명 있었는데, 바로 '드래곤 퀘스트' 의 스기야마 고이치와 '파이널 판타지' 의 우에마츠 노부오였다. (계속)

*관련 사이트:

히사이시 조 홈페이지

마에다 노리오 홈페이지

이스 뮤직 파일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