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 시리즈 최초로 등장한 '대중음악인' 이 아닐까. 뭐 그렇다고 해도 그의 '노래' 를 예로 드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는 이미 너무나 파퓰러한 위치를 선점했을 뿐 아니라, 국내 가요 작곡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명곡이고.
유재하의 곡들을 처음 들어보았던 것이 바로 1997년에 발매된 추모 앨범이었다. 김현철의 프로듀스 아래 조규찬, 유영석, 이적, 나원주, 이소라, 신해철 등의 '가수들(요즘 회자되는 립싱커와 구별하기 위해 작은따옴표를 붙였음)' 이 총출동해 만들었기 때문에 화제가 되었던 음반이었다.
클래식 전공자로서 가장 솔깃하게 들었던 것은 'Minuet' 이라는 제목의 연주곡이었다. 추모 앨범에는 인공위성의 4성 아 카펠라 버전으로 실려 있었는데, 이 리메이크만은 별로 와닿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유재하의 원본 앨범에서 'Minuet' 를 찾아 들어본 결과, 원곡은 바이올린-비올라-첼로 편성의 현악 3중주이며 인공위성의 리메이크는 일부 삭제가 가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유재하가 한양대 작곡과 재학 중 과제물로 창작한 곡으로 보이는 간단한 소품이었다.
제목 답게 3/4박자의 고전적인 내용을 담은 곡이었는데, 형식도 마찬가지로 A-B-A' 의 3부분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인공위성은 이 중 B를 생략했는데, 사람 목소리로는 처리하기 어려운-소위 말해 '기악적인'-이유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이 곡의 수준이 결코 높다고 볼 수는 없다. 곡 전체에 걸쳐 눈에 띄는 것은 제 1바이올린 뿐이며, 나머지 악기들은 거의 반주나 화성적인 덧붙임 외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먹물들' 이 이러한 악기 용법의 서투름에 제일 먼저 비판의 메스를 대지 않을까.
음악이 저렇게 '정의내려지거나', '이론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면', 나는 굳이 음대에 들어가는 생고생을 안해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은 '지식' 이전에 '경험' 이며, 눈과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반드시 귀로 들어야 하는 예술이다.
비록 과제곡 수준의 미숙함과 고전 형식의 단순한 모방일지라도, 저 소품에서도 유재하의 개성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내가 아는 한, 유재하 이전에 가요 앨범에 저렇게 클래시컬한 연주곡을 넣은 뮤지션은 없다. 이 소품으로 실내악의 매력에 빠지게 된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유재하는 대중음악인으로서는 드물게 음대 작곡과에 입학해 비교적 체계적인 이론을 습득한 인물이었고,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가요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충분히 창의력과 개성이 넘치는 음악을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는 30세도 채 되지 못해 요절했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거꾸로 가는 일 없이 계속 돌고 있다.
오히려 '그 밥에 그 나물' 이 판치는 요즘 한국 가요계를 더듬어 볼 때, 유재하의 곡들은 오히려 '그 때가 좋았지' 라는 부질없는 향수에 젖게 만든다. 그러나 향수는 향수일 뿐. 앞으로의 갈 길이 멀고 험하다 해도 그의 진전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분명 그들 중 몇몇은 한국 가요계의 판도를 바꿀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