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
레어 애청곡선-4.이건용
머나먼정글
2004. 1. 20. 17:23
장영주가 유명한 들, 정명훈이 유명한 들, 장한나가 유명한 들 그들은 '연주자' 에 지나지 않는다. 독일에 바흐, 베토벤, 브람스 등의 작곡가가 없었다면 그 나라가 음악 강국으로 기억되었을까? 진정한 음악 강국은 작곡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지금도 유아기에 있는 나라다. 한국 작곡가들의 창작곡보다도 외국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이 연주되며, 그나마 창작곡들도 외국의 것을 모방한 아류작이 많으며, 일제 강점기와 그 후 반공친미 일변도의 사회 덕택에 전통음악은 설 자리를 잃고 '전통 그 자체라는 젠장맞을 악몽' 속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그나마 '제 3세대' 로 불리우는 작곡가들이 그러한 점을 자각하고 '우리의 것을 새롭게' 하기 위한 창작 전선에 뛰어들었고, 아주 점진적이기는 해도 상황은 나아지고 있다. 이제는 연주가 뿐 아니라 작곡가들도 '수출' 되어야 진정한 음악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은 이웃 나라 일본이 증명한다.
제 3세대의 작곡가 중 가장 높이 평가받는 이 중 한 사람이 바로 이건용(1947-)이다. 평안남도 출신으로 6.25 후 서울로 이주했으며, 서울예고-서울대 음대라는 '엘리트 코스' 를 거쳐 독일 프랑크푸르트 음대에서 작곡을 배운 인물이다. 하지만 선배 작곡가들이 유학 후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잃고 좌초한 사람들이 많았던 반면, 이건용은 그러한 유학 작곡가들의 컴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는 서양식 작곡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전통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국악관현악과 합창 '만수산 드렁칡', 피아노 독주곡 '상주모심기 노래에 의한 변주곡', 무용음악 '바리', 교성곡 '들의 노래', 안치환 등의 가수에 의해 불려지기도 한 '배웅', '슬픈 카페의 연가' 같은 노래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작곡해왔다.
물론 이러한 창작 정신은 이건용이 '개발' 한 것이 아니고, 선대 작곡가인 나운영과 김희조를 비롯한 개척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서양 음악의 입장에서 전통 음악을 바라본'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서양 음악의 우월성' 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 이건용 등 제 3세대 작곡가들 손에 의해서였고, 이러한 정신은 김대성, 원일 등 제 4세대 작곡가들로 계승되고 있다.
이건용은 1991년 필리핀의 '아시아 종교와 음악 연구소(AILM)' 위촉으로 미사 한 곡을 작곡했는데, 그 곡이 바로 'AILM을 위한 미사' 다. 이 작품은 케냐의 '미사 루바', 에스파냐의 '미사 플라멩카', 아르헨티나의 '미사 크리올라' 등의 작품과 비교할 수 있는데, 텍스트는 라틴어 미사 원문에 충실하지만 음악은 한국을 비롯해 필리핀, 일본, 인도네시아 등의 전통 음악 요소를 기반으로 작곡되었다. 합창단 외에 독창자로는 소프라노와 테너, 보이소프라노 각 1명과 타악기 주자 세 명-주로 꽹과리, 장구, 북 등 전통 타악기로 반주-이 연주에 참가한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베르디 등의 서양 종교 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라틴어 텍스트를 민요풍으로 부르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을 가질 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아시아 종교 음악이 가져야 할 정체성 문제에 대한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다.
서양의 종교라는 이유 만으로 서양 음악을 전례에 꼭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포교 대상국의 음악 요소를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물론 텍스트 자체는 라틴어 그대로라는 점이 문제가 되기는 하겠지만.
이 곡의 음반은 1997년 대구 시립 합창단의 자주 제작 CD로 출반되었는데, 물론 지금 시장에서 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곡가의 홈페이지에서 음악 파일이 제공되고 있으므로, 지금까지 소개한 레어 곡들 중에서는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이국적인' 음악이라 치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들릴 것이고, 이 곡에서 위에 이야기한 '아시아 종교 음악의 정체성' 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르게 들릴 것이다.
이건용 홈페이지의 음반 카테고리
그러한 점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지금도 유아기에 있는 나라다. 한국 작곡가들의 창작곡보다도 외국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이 연주되며, 그나마 창작곡들도 외국의 것을 모방한 아류작이 많으며, 일제 강점기와 그 후 반공친미 일변도의 사회 덕택에 전통음악은 설 자리를 잃고 '전통 그 자체라는 젠장맞을 악몽' 속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그나마 '제 3세대' 로 불리우는 작곡가들이 그러한 점을 자각하고 '우리의 것을 새롭게' 하기 위한 창작 전선에 뛰어들었고, 아주 점진적이기는 해도 상황은 나아지고 있다. 이제는 연주가 뿐 아니라 작곡가들도 '수출' 되어야 진정한 음악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은 이웃 나라 일본이 증명한다.

제 3세대의 작곡가 중 가장 높이 평가받는 이 중 한 사람이 바로 이건용(1947-)이다. 평안남도 출신으로 6.25 후 서울로 이주했으며, 서울예고-서울대 음대라는 '엘리트 코스' 를 거쳐 독일 프랑크푸르트 음대에서 작곡을 배운 인물이다. 하지만 선배 작곡가들이 유학 후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잃고 좌초한 사람들이 많았던 반면, 이건용은 그러한 유학 작곡가들의 컴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는 서양식 작곡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전통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국악관현악과 합창 '만수산 드렁칡', 피아노 독주곡 '상주모심기 노래에 의한 변주곡', 무용음악 '바리', 교성곡 '들의 노래', 안치환 등의 가수에 의해 불려지기도 한 '배웅', '슬픈 카페의 연가' 같은 노래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작곡해왔다.
물론 이러한 창작 정신은 이건용이 '개발' 한 것이 아니고, 선대 작곡가인 나운영과 김희조를 비롯한 개척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서양 음악의 입장에서 전통 음악을 바라본'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서양 음악의 우월성' 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 이건용 등 제 3세대 작곡가들 손에 의해서였고, 이러한 정신은 김대성, 원일 등 제 4세대 작곡가들로 계승되고 있다.
이건용은 1991년 필리핀의 '아시아 종교와 음악 연구소(AILM)' 위촉으로 미사 한 곡을 작곡했는데, 그 곡이 바로 'AILM을 위한 미사' 다. 이 작품은 케냐의 '미사 루바', 에스파냐의 '미사 플라멩카', 아르헨티나의 '미사 크리올라' 등의 작품과 비교할 수 있는데, 텍스트는 라틴어 미사 원문에 충실하지만 음악은 한국을 비롯해 필리핀, 일본, 인도네시아 등의 전통 음악 요소를 기반으로 작곡되었다. 합창단 외에 독창자로는 소프라노와 테너, 보이소프라노 각 1명과 타악기 주자 세 명-주로 꽹과리, 장구, 북 등 전통 타악기로 반주-이 연주에 참가한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베르디 등의 서양 종교 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라틴어 텍스트를 민요풍으로 부르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을 가질 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아시아 종교 음악이 가져야 할 정체성 문제에 대한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다.
서양의 종교라는 이유 만으로 서양 음악을 전례에 꼭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포교 대상국의 음악 요소를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물론 텍스트 자체는 라틴어 그대로라는 점이 문제가 되기는 하겠지만.
이 곡의 음반은 1997년 대구 시립 합창단의 자주 제작 CD로 출반되었는데, 물론 지금 시장에서 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곡가의 홈페이지에서 음악 파일이 제공되고 있으므로, 지금까지 소개한 레어 곡들 중에서는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이국적인' 음악이라 치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들릴 것이고, 이 곡에서 위에 이야기한 '아시아 종교 음악의 정체성' 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르게 들릴 것이다.
이건용 홈페이지의 음반 카테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