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
음주 작곡.
머나먼정글
2004. 1. 4. 22:21
2001년 가을은 그야말로 나에게 있어서 매우 드라마틱한 해였다. 2학년 2학기의 중간고사 과제곡이 두 곡이나 되었고, 그 압박 때문에 별의별 짓을 다했었는데 지금 해보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과제곡 두 곡은 각각 현대음악 기법에 의한 가곡과 아카펠라 4부합창곡이었는데, 합창곡은 그나마 쓰기가 수월했지만 가곡이 문제였다. 귀차니즘은 날이 갈 수록 더해졌고, 결국 가곡은 담당교수님의 지도를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사보 작업과 함께 겨우 며칠 동안 쓰여져야 했다.
사실 작곡과 학생들은 제출곡 마감날에 '작곡' 보다는 '사보' 에 시달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데, 학교 이름이 들어간 정식 악보 용지에 일일이 수성사인펜-초기에는 로트링 만년필도 썼는데, 의외로 잘 번져서 지금은 거절-으로 깨끗이 그려서 제출해야 받아준다. 컴퓨터 사보의 경우에는 4학년이나 돼야 가능하고.
사보만으로도 힘이 딸리는 상황에 가곡까지 들어앉았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결국 가지고 있던 몇 푼을 털어서 동네 슈퍼에 갔다. 우유와 함께 비닐봉지에 숨겨 들어왔던 것은 바로 캡틴큐와 조우커. 각각 '럼' 과 '위스키' 라고 빡빡 우기고 있지만, 딱 잘라 말하면 '맛없는 어중간 도수의 하급주' 다.
한 켠에 술병을 까놓고 한 모금씩 마시면서 곡을 쓰고 사보를 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까 곡은 대체 누가 썼는지, 아니 그렸는지 완전히 피카소 말년의 데생 마냥 널부러져 있었고, 사보 용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래 그림처럼 되었다.
그나마 마감 기일이 며칠은 남아 있었고, 일단 가곡은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보 때 또 그놈의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고, 합창곡 사보를 끝낸 직후 더이상 못견디겠다 싶어서 일단 또 집을 나섰다.
그러고보니 메고 나온 가방 속에 한 연주회 홍보 찌라시가 있었고, 그 길로 예술의 전당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그 날 연주회의 경험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전주시향과의 인연이라는, 서울 사람으로서는 아주 괴상한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p.s.: ...그리고 남은 술은 곡 내고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지독한 숙취 때문에 고생했다...
(네이버 블로그, 2003.12.28)
과제곡 두 곡은 각각 현대음악 기법에 의한 가곡과 아카펠라 4부합창곡이었는데, 합창곡은 그나마 쓰기가 수월했지만 가곡이 문제였다. 귀차니즘은 날이 갈 수록 더해졌고, 결국 가곡은 담당교수님의 지도를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사보 작업과 함께 겨우 며칠 동안 쓰여져야 했다.
사실 작곡과 학생들은 제출곡 마감날에 '작곡' 보다는 '사보' 에 시달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데, 학교 이름이 들어간 정식 악보 용지에 일일이 수성사인펜-초기에는 로트링 만년필도 썼는데, 의외로 잘 번져서 지금은 거절-으로 깨끗이 그려서 제출해야 받아준다. 컴퓨터 사보의 경우에는 4학년이나 돼야 가능하고.
사보만으로도 힘이 딸리는 상황에 가곡까지 들어앉았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결국 가지고 있던 몇 푼을 털어서 동네 슈퍼에 갔다. 우유와 함께 비닐봉지에 숨겨 들어왔던 것은 바로 캡틴큐와 조우커. 각각 '럼' 과 '위스키' 라고 빡빡 우기고 있지만, 딱 잘라 말하면 '맛없는 어중간 도수의 하급주' 다.
한 켠에 술병을 까놓고 한 모금씩 마시면서 곡을 쓰고 사보를 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까 곡은 대체 누가 썼는지, 아니 그렸는지 완전히 피카소 말년의 데생 마냥 널부러져 있었고, 사보 용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래 그림처럼 되었다.

그나마 마감 기일이 며칠은 남아 있었고, 일단 가곡은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보 때 또 그놈의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고, 합창곡 사보를 끝낸 직후 더이상 못견디겠다 싶어서 일단 또 집을 나섰다.
그러고보니 메고 나온 가방 속에 한 연주회 홍보 찌라시가 있었고, 그 길로 예술의 전당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그 날 연주회의 경험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전주시향과의 인연이라는, 서울 사람으로서는 아주 괴상한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p.s.: ...그리고 남은 술은 곡 내고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지독한 숙취 때문에 고생했다...
(네이버 블로그, 2003.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