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주곡(Concerto)' 이라는 장르는 흔히 독주자와 관현악단이 경합 혹은 조화를 이루거나, 독주자가 관현악을 배경으로 화려한 기교를 뽐내는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다만 이렇게 '고정관념' 이 생기기 전에는 저마다 그 형태와 합주 방식이 다른 협주곡들이 여러 개 존재했는데, 이후 생겨나게 되는 각종 장르의 모체가 되기도 했다.
바로크 시대의 대체적인 협주곡 양식들을 살펴보면;
1. 협주곡: 일반적인 의미의 협주곡과 같음. 독주자+관현악단
2. 합주 협주곡 (Concerto grosso): 2인 이상의 복수 독주자+관현악단
3. 리피에노 협주곡 (Concerto ripieno): 특별한 독주자 없이 관현악단이나 합주단 내의 주자들이나 각 파트별로 독주 혹은 독주악기군의 역할이 주어짐.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 3번이 이런 형태에 속함.
이렇게 세 갈래로 크게 나눌 수 있던 초기 협주곡들 중 이후 대세가 된 것은 1번이었고, 2번의 경우 '협주 교향곡(Sinfonia concertante)' 이라는 이름으로 교향곡+협주곡의 하이브리드 형식이 되어 온존했다. (물론 베토벤의 '3중 협주곡' 이나 브람스의 '2중 협주곡' 같이 협주곡을 표방한 곡들도 더러 있었음)
3번의 '리피에노 협주곡' 은 이후 교향곡 등 본격적인 관현악 장르의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거기에 흡수되는 형태로 사라졌지만, 20세기 들어서 좀 특이한 형태로 부활하기에 이르렀다. 악기들이 많이 개량되고 연주법이 발달하면서 관현악단의 연주력도 점차 강화되었는데, '관현악단 단원들을 솔로 주자로 활용해 보자' 는 생각이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Concerto for orchestra)' 이라는 형태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저 명칭을 사용해 리피에노 협주곡의 전통을 부활시킨 최초의 작곡가가 파울 힌데미트였다(1925). 이외에도 힌데미트는 1932년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필하모닉 협주곡' 도 작곡했고, 이 곡도 리피에노 협주곡의 전통을 발전시켜 악단원들에게 수준높은 기교와 음악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외에도 같은 제목으로 가장 유명한 곡을 들자면 아마 벨러 버르토크가 보스턴 교향악단을 위해 작곡한 것이 있겠고, 2차대전 이후 전위 계열에 속했던 폴란드 작곡가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가 쓴 곡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심지어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을 여러 곡 쓴 작곡가도 있는데, 이탈리아 작곡가인 고프레도 페트라시는 1933년부터 1972년까지 여덟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이번에 소개할 마리오 필라티(Mario Pilati, 1903-1938)라는 이탈리아 작곡가도 같은 제목의 협주곡을 남기고 있는데, 필라티라는 이름 자체가 아직도 굉장히 생소한 터라 '이런 곡이 있었구나' 라는 호기심 이전에 '이런 작곡가도 있었나' 는 호기심이 먼저 발동했고.
필라티는 나폴리 출신으로, 열다섯 살 때 고향 음악원에 입학해 작곡을 배웠고 졸업 후 밀라노로 가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 굳이 북부 도시인 밀라노로 갔는 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이탈리아 음악계에서 가장 성공하기 위해서는 오페라를 작곡해서 상연해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그 유명한 '라 스칼라' 도 밀라노에 있음).
하지만 밀라노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성공이 쉽게 찾아오지 않자, 1930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더 남쪽인 시칠리아 섬의 팔레르모로 옮겨 활동했다. 하지만 결국 최후의 활동지로 삼은 곳은 고향 나폴리였고, 그 곳에서 1938년에 병을 얻어 12월 10일에 겨우 서른 다섯의 나이로 타계하고 말았다.
필라티가 '듣보잡' 이 된 이유는 박명했기 때문도 있고, 생전에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해 '무명 작곡가' 혹은 '발전 도상에 있는 작곡가' 정도로 평가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거기다가 사후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추축국이었던 이탈리아가 아수라장이 되고, 패전 후 이탈리아 음악계가 음렬주의 등 전위파의 득세로 재편되었던 것도 한몫 했을 것이고.
어쨌든 그도 이탈리아 작곡가였던 터라, 나폴리 칸초네의 가사로 흔히 쓰이는 나폴리 사투리로 된 대본에 곡을 붙인 오페라 '피에디그로타' 를 죽기 직전까지 쓰고 있었다. 하지만 저 3막 오페라는 1막만 관현악 편곡이 완료되었고, 나머지는 피아노와 성악 성부만 남은 보컬 스코어 형태의 미완성 작품이 되었다.
오히려 '필라티 리바이벌' 은 그가 남긴 기악 작품에서 주로 이루어졌는데, 1933년에 완성한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도 그 리바이벌로 뒤늦게나마 부각된 곡이다. 힌데미트 다음으로 이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봐서는 나름대로 진보적인 성향의 작곡가로 인식하기 쉽지만, 음악적으로 필라티는 신고전주의 계열에 속하면서 라벨이나 레스피기 등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중도 보수파에 속했다.
이 곡은 좀처럼 초연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1936년에 나폴리에서 열린 작곡 경연대회에서 우승했고, 2년 뒤인 1938년 9월에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부대 행사였던 국제 현대음악제에서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이 초연은 대단히 성공적이었으나, 필라티는 그 시점에서 여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병환이 악화되어 있어서 공연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초연의 성공으로 당대 지휘자들 중 노장에 속하던 펠릭스 바인가르트너도 이 곡에 주목했고, 실제로 바인가르트너는 같은 해 11월에 나폴리에서 객원 출연했을 때 이 곡을 공연 곡목에 포함시켜 지휘하기도 했다. 필라티는 평생 동안 성공 다운 성공을 맛보지 못했지만, 죽기 직전에야 그 열매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 이후 이 곡이 연주된 기록은 찾아보기 상당히 힘든데, 밀라노의 유명 음악 출판사인 리코르디에서 악보가 출판되었음에도 해외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국내에서도 좀처럼 공연 기회를 얻기 힘들었다. 1960년대 말 혹은 1970년대 초에 에토레 그라치스가 RAI(이탈리아 국영 방송)의 방송 연주회에서 한 번 공연했다고 하고, 1999년에는 초연되었던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에밀리오 포마리코 지휘로 리바이벌되기도 했다고 한다. 2001년 2월에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이 독일 초연도 했지만, 이 때는 지휘자-누군지는 모르겠다-의 재량인지 3악장을 상당 부분 생략하고 공연해 비판의 대상이 됐다고도 하고.
1악장 첫머리만 들어봐도 필라티의 음악 성향이 어땠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는데, 정식 제목인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C장조' 에서도 드러나지만 조성음악 체계를 온존하는 축에 속해 있다. 코드 취급도 후기 낭만파의 조성 파괴 직전 현상처럼 극단적이고 변화무쌍하지도 않고, 바로크 시대의 형식미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리피에노 협주곡' 스타일을 참고했음에도, 기존 협주곡과 절충하는 독자적인 양식도 선보이고 있다. 관현악의 각 악기들을 독주 혹은 독주악기군으로 활용하는 것은 힌데미트나 버르토크, 루토스와프스키 등과 동일한 발상이지만, 거기에 피아노를 준독주악기 격으로 추가하는 하이브리드 형식을 도입하고 있다. (물론 피아노가 전면에 튀어나오는 경우는 2악장을 제외하면 많지 않고, 대개 다른 악기와 중첩되어 나타난다.)
2악장에서는 선배인 레스피기의 영향인지 선법을 사용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고 있는데, 다만 레스피기처럼 아예 의고주의로 나가지는 않고 드뷔시나 라벨 등의 선법 사용-이 경우에는 특별한 음색을 얻기 위한 것임-에서 나타나는 섬세함을 추구한 것 같다. 3악장에서는 무뚝뚝한 3박 리듬을 시골 춤곡마냥 거칠게 늘어놓으며 시작하는데, 스케르초 스타일을 의도한 것이지만 거기에 1악장과 2악장에 쓰인 주제들을 교묘히 가공해서 첨가하면서 고도의 대위법 기교도 구사하고 있다.
ⓟ 2001 HNH International Ltd.
음반은 내가 아는 한, 단 한 종류만 존재한다. 2001년에 낙소스 산하의 서브 레이블인 마르코 폴로에서 출반된 CD인데, 레어 아이템 발굴에 유달리 강세를 보이는 이탈리아계 스위스 지휘자 아드리아노(Adriano. 성씨는 신비주의인지 뭔지 절대 드러내지 않고 있음)가 슬로바키아 방송 교향악단(Slovak Radio Symphony Orchestra)을 지휘해 녹음했다. 음반 전체의 수록곡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C장조 (Concerto per orchestra in Do maggiore, 1932)
관현악을 위한 세 개의 소품 (Tre pezzi per orchestra, 1925/1929 개정)
현과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Suite per archi e pianoforte, 1925)
자장가 (Alla culla (Nina-nanna), 1938)
*협주곡과 모음곡에서는 토마슈 네메치(Tomáš Nemec)가 독주를 맡음.
이 녹음이 만들어진 2001년에도 필라티는 여전히 '듣보잡' 취급받고 있었던 것 같은데, 두 번째 곡과 마지막 곡의 경우 각각 자필 악보와 리코르디 출판사에서 미간행한 인쇄본을 어렵게 구해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낙소스에서 마르코 폴로 사업을 완전히 접기 일보직전이고, 그 때문에 마르코 폴로 CD도 거의 대부분 절판되어 있는 상태다. 하지만 낙소스 홈페이지를 참조해 보니, 8월에 다시 낙소스 레이블을 달고 재출반된다고 해서 기대 중이다. 이것 외에도 이 시리즈 초창기에 소개한 실비오 라차리의 교향곡과 모음곡을 담은 CD도 재발매를 기대하고 있는데, 정말 '이거 아니면 아무 데서도 구할 수 없는' 킹왕짱 레어템이니.
그리고 필라티가 생전에 자작곡을 많이 출판했던 리코르디에서도 '필라티 크리티컬 에디션' 을 출반하기 위해 음악학자들을 동원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리바이벌의 노력이 어디까지 미칠 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간행되어 유통되는 악보만 있어도 연주 빈도는 충분히 높아질 수 있니 리코르디의 계획부터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