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아가동산' 어쩌고 하던 사이비종교와 얽혀서 매상도 급감하고 사회적으로도 안좋게 찍혔던 회사가 바로 쉰나라레코드(가칭???)다. 지금은 그 때 구속된 교주가 뭘 하고 있고, 그 종교는 어떻게 됐는지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회사는 아직도 돌아가고 있고 레코드점도 마찬가지다.
여러 장르의 음반들을 제작하고 유통하고 있지만 대개 전통음악 쪽에서 꽤 솔깃한 음반들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몇달 전에 '내가 꼭 사야만 하는 앨범' 두 종류를 출반하기도 했다(전통음악 CD는 아님).
하지만 그 CD들은, 뻥안까고 내가 지금까지 산 CD들 중 기억에 남을 초절정 명품 발제작을 보여주고 있었다.
해당 CD들은 다음과 같다;
ⓟ 2008 Synnara Co., Ltd.
지휘자 김홍재 데뷰 30주년 기념 CD-김홍재의 음악세계 1 (2CDs)
-수록곡-
CD 1
최성환: 관현악 '아리랑'
가에타노 도니체티: 오페라 '라 파보리타' 중 오 나의 페르난도*
홍난파: 봉선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 23번**
CD 2
안토닌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 9번 '신세계로부터'
앵콜-고종환: 림진강(임진강. 관현악 편곡: 김홍재)
*메조소프라노 황순화 협연
**피아니스트 허영화 협연
ⓟ 2008 Synnara Co., Ltd.
지휘자 김홍재 데뷰 30주년 기념 CD-김홍재의 음악세계 2
-수록곡-
리면상+신영철: 민족가극 '춘향전' 중 꽃노래*
최영섭: 그리운 금강산*
주세페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중 신이여, 평화를 주옵소서*
안토닌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 8번
앵콜-고종환: 림진강(임진강. 관현악 편곡: 김홍재)
*소프라노 정은숙 협연
지금까지의 음악잡설에서도 그랬듯이 나름대로 김홍재빠를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에, 올 2008년으로 데뷰 30주년을 맞은 지휘자의 실황 공연을 담은 저 CD들의 출반 소식은 대단히 반가운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우선 2집부터. 2집은 음반 뒷면에 '2001.8.14 K-CLASSIC 콘서트(오사카신호니홀-도쿄교향악단)에서 연주한 실황 앨범' 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심포니홀' 을 일본 가타카나 발음 그대로인 신호니홀이라고 써놓은 건 둘째 치고, 도쿄의 악단이 굳이 오사카까지 와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 좀 이상했다.
그러던 중 내가 예전에 '김홍재의 콘서트 리스트를 완성시켜 보겠다' 며 일본 웹을 닥치는대로 돌아다니며 콘서트 정보를 적어놓은 파일이 있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을 띄워 다시 봤다. 찾아보니 장소 빼고는 전부 다 틀린 표기였고. 실제 콘서트 날짜는 7월 31일이었고, 관현악단은 도쿄가 아닌 교토 교향악단이었다.
속지의 편집 상태도 꽤 발냄새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는데, 다음 문장에서 보여지는 문법은 꽤 걸작이었다;
"...이후 일본 최정상의 오케스트라를 차례차례 지휘하였고, 도쿄시티 필하모니 관현악단 상임 지휘자, 나고야 필하모니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교토시 교향악단 지휘자를 히로시마 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역임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너무 심오한 문장이다...
약력에도 마찬가지의 발편집이 두드러지는 대목들이 많은데, 2001년 11월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최한 콘서트가 'SUPER ORCHESIRANIGHT' 로 되어 있다거나-제대로 표기하면 'SUPER ORCHESTRA NIGHT' 임-, 2002년 4월 30일에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한 콘서트가 '레퀴엠의 봄' 이라던가 하는 것들. (저것도 제대로 표기하면 '레퀴엠의 밤' 임.)
하지만 2집에서 보여준 이런 발편집은 그저 서곡에 불과했다. 진정한 충공깽은 1집에서였다.
1집도 2집에서처럼 속지와 겉표지의 발편집 상태는 여전했지만, 문제는 그 발냄새가 CD라는 가장 중요한 알맹이 자체의 편집에까지 미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1집 실황의 제대로 된 정보는 다음과 같다. 2001.8.5 K-CLASSIC 콘서트, 장소는 도쿄예술극장 대홀이고 관현악단은 도쿄 시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001년에 개최된 K-CLASSIC 콘서트들은 시기적절하게 KBS에서 제작했던 '한민족리포트' 의 일본 현지 촬영 기간과도 겹쳐 있었고, 프로그램 중에는 그 때의 리허설이나 공연 장면들이 편집되어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몇몇 대목은 실제로 비교 청취가 가능했는데, 2집의 수록곡들 중 단 한 곡만 빼고 음높이가 반음 높아진 상태로 제작되어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A장조는 B플랫장조로,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E단조는 F단조로 들리는 대참극이 발생했고. 템포도 KBS 영상물과 달리 너무 빨랐는데, 처음에는 오리지널 소스였을 테이프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음높이와 템포가 정상적이었던 트랙은 케이스 뒷표지에 언급조차 되지 않은 앵콜 곡인 '임진강' 하나 뿐이었다.)
그래서 WAV로 떠서 편집을 해봤는데, 놀랍게도 반음을 다시 떨어뜨려 보니 음높이와 템포 모두 영상물에서 보여진 정상적인 연주 상태로 돌아오는 결과가 나왔다. 한마디로 원래 녹음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발편집 과정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CD 제작 과정에서까지 발편집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
*정 못믿겠다면, 교보 핫트랙스에 링크되어 있는 음원들의 샘플 파일을 직접 들어보기 바란다. 드보르자크만 들어봐도 답이 나온다.
그 외에도 교향곡과 협주곡 같은 다악장 곡들의 트랙 간격이 너무 다닥다닥이라 여운이 없다는 문제도 있는데, 속지와 1집 CD의 발냄새 만큼 임팩트는 없는 듯 하다. 창문을 열고 공기청정기를 틀어도 가시지 않는 그 강렬한 향취란.
그 동안 쉰나라에서 제작된 음반들에서 주로 맡아진 것은 속지 편집 과정의 발냄새 정도였지만, 이것은 CD에서까지 그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경우였다. 24500원이라는 돈을 들여 발편집의 체취가 가득한 CD를 샀다는 것 자체가 고자가 된 심영의 심정에 버금가는 충격이었다. 그리고 한 지휘자의 데뷰 30주년 기념도 참으로 유니크하게 한 셈이었고.
한국 연주자의 녹음을 한국 레이블에서 음반으로 제작해 팔 때 짭짤한 수익이 그다지 나오지 않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그 팔 물건이 명품 발편집을 한 것이라면 손발리 오그라드는 압박으로 인해 지갑에 손이 가지 않는 것도 당연지사다. 발냄새에 낚여버리는 이들이 나 말고 또 있을 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쉰나라레코드의 명품 발제작에 대한 찬사는 아래 짤방으로 대체한다.
*뱀다리로 연주의 질을 따지자면, 하룻 동안의 연주를 무편집으로 담아낸 것 치고는 그런대로 괜찮다. 다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의 경우 1악장 카덴차 직후 목관이 갈짓자 걸음을 걷는 안습 상황이 잠깐 나오고, 금관들도 교향곡들에서 다소 긴장되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대목도 있다. 일본 중견 관현악단들의 평상시 연주력을 확인하기에 부족함은 없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