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작곡가들 중 20세기에 살았던 인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중요한 인물을 꼽자면 아마 버르토크 벨러(서양식 표기는 벨러 버르토크)와 코다이 졸탄(마찬가지로 서양식 표기는 졸탄 코다이) 둘이 분명 언급될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헝가리에서는 계속 작곡가들이 배출되어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버르토크나 코다이보다 덜 언급되고, 헝가리 바깥에서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러이터 라즐로(Lajtha László, 1892-1963. 서양식으로는 라즐로 러이터)도 나름대로 중요한 인물로 꼽기도 한다. 무엇보다 저 두 대가가 손대지 않았거나 손댔어도 단타성에 그친 교향곡이라는 장르에서 아홉 곡을 남겼다는 점에서 '진정한 근대 헝가리 심포니스트' 라고 불린다고 한다.
러이터는 부다페스트 태생으로, 고향 음악원에서 배운 뒤 라이프치히와 주네브를 거쳐 파리에서 뱅상 댕디를 사사했다고 한다. 유학 전에는 버르토크와 코다이 두 선배들과 함께 헝가리 민속음악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같이 했는데, 이 때의 경험이 평생 동안 창작의 밑거름이 된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1차대전 중에는 포병 장교로 복무했는데, 그 때 직접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훗날 반전평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1919년부터는 부다페스트 국립 음악원의 작곡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했는데, 그 중에는 헝가리를 대표하는 지휘자 중 한 사람인 페렌치크 야노시 같은 인물들도 있었다. (페렌치크는 이후 헝가리 국립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로 장기간 재직했고, 러이터의 작품 상당수를 초연하기도 했다.)
러이터는 프랑스에서 유학했던 탓에 소설가 로맹 롤랑이나 작곡가 앙리 바로 같은 프랑스의 예술 인사들과 친분을 맺고 있었고, 작품의 악보 출판도 프랑스 음악출판사인 알퐁스 르뒥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이외에는 영국의 민속음악 위원회 임원으로도 활동했고, 독일 태생의 영화감독 게오르크 횔러링이 영국에서 T.S.엘리엇의 희곡 '대성당의 살인' 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 때 영화음악 작곡가로 기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헝가리가 공산화된 후, 러이터의 국제적인 입지는 점차 좁아지기 시작했다. 라코시 마티아스 휘하의 스탈린주의자들이 집권한 정부는 예술가들의 해외 방문은 물론이고 창작 활동의 자유도 점차 축소시켰고, 이런 와중인 1956년에는 '헝가리 반공 봉기' 가 일어났다.
당시 소련의 위성국에서 일어난 반공 봉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격렬했던 이 봉기는 결국 소련이 파견한 바르샤바 조약군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되었고, 약 2500명의 사망자와 13000여 명의 부상자, 200000여 명의 난민을 유발했다. 봉기 진압과 뒤이은 대숙청의 파장은 예술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고,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 작곡가 중 한 사람인 죄르지 리게티도 망명자 중 한 사람이었다. 또 이웃 오스트리아로 망명한 헝가리 연주자들은 '필하모니아 훙가리카' 라는 관현악단을 결성했고, 역시 헝가리 출신 지휘자였던 안탈 도라티의 지휘로 연주 활동을 펼친 바 있다.
봉기 이전에도 러이터는 자신의 '모던한' 작풍에 대해 보수적인 당 간부나 정부 관료들로부터 이런저런 압력을 받아왔지만, 헝가리 반공 봉기의 유혈 진압 후에도 계속 고국에 남아 있었다. 정권의 억압이 극심해질 수록 러이터의 작품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내용도 비관적인 것이 많아졌는데, 그러한 경향이 정점에 이른 것이 교향곡 제 7번(1957)이었다.
러이터는 저 곡에 대담하게도 1956년 봉기를 암시하는 '혁명' 이라는 제목을 붙이려 했으나, 당국의 압력이 있었는지 '가을' 이라는 평범한 표제로 바뀌었다. 표제의 개악 뿐 아니라 작품 초연에 관해서도 정부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았고, 국내 연주를 아예 금해버렸다. 결국 1958년 4월 26일에 파리에서 죄르지 레헬 지휘의 부다페스트 교향악단이 순회 공연 중에 가까스로 초연했는데, 그 이후에도 헝가리에서는 한동안 이 곡의 연주 금지 조치가 계속되었다.
이후 러이터는 서방은 물론이고 같은 사회주의권 국가의 해외 여행도 금지당했고, 헝가리 내에서 고립된 작곡가로 말년을 보내야 했다. 러이터의 '듣보잡화' 에는 이러한 헝가리 정권의 탄압이 한몫 단단히 했음은 물론이었겠고.
1936년부터 1961년까지 작곡된 러이터의 교향곡들은 대체로 30분 내외의 연주 시간에 절도있는 구성과 헝가리 민속 음악의 독특한 향취, 그리고 불협화음이나 다조 등을 응용한 모더니즘을 혼재시키고 있는데, 이 곡에서는 특히 모더니즘의 요소가 때로는 폭력적일 정도로 강하게 나타나 있다. 1악장은 거의 공포영화 급의 음산한 화음 연주로 시작되며, 민요적인 요소도 좀 더 비탄이나 애도의 감정을 쉽게 불러일으키는 쪽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느린 템포의 2악장에서도 곳곳에 타악기의 크레센도 디미누엔도(<>) 트레몰로와 금관의 날카로운 불협화음 스타카토가 출현해 계속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고, 코랑글레(잉글리시 호른)와 클래식 관현악단에서는 사용 빈도가 낮은 편인 알토 색소폰이 짤막한 만가풍 선율들을 연주한다. 아마 희생자들을 위한 추도의 뜻을 나타낸 것 같은데, 그 뒤에는 혼란과 황량함을 암시하는 무조풍의 짤막한 댓구들과 화음들이 계속 깔려나오고 있다. 아마 이 2악장이 헝가리 정권의 돌대가리들을 가장 자극시키지 않았으려나.
세 개 악장 중 가장 짤막한 3악장은 추진력있는 인트로로 시작하지만, 계속되는 불협화음의 팡파르와 쇼스타코비치 스타일로 잔뜩 꼬인 선율이 연속되면서 승리감 보다는 신랄함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나마 코다 근처에 가서야 금관과 튜블러 벨의 연주로 명확한 장조의 코랄풍 악구가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해피 엔딩' 을 예견케 하는데, 그것이 봉기를 일으킨 시민들의 승리인지 아니면 봉기를 성공적으로 진압한 소련과 정권의 승리인지는 듣는 사람의 주관에 맡기고 싶다.
물론 정권 측에서는 절대로 자신들의 승리를 영웅적으로 그린 곡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에 여러 금지 조치를 내렸을 것이다. 1989년의 동유럽 자유화 물결과 함께 헝가리의 사회주의 정권도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헝가리에서는 현대사에서 언급되지 않거나 축소되었던 1956년 반공 봉기도 '민주화를 위한 도화선' 으로 거국적으로 격상되고 있다. 러이터의 이 작품도 작곡가의 원래 의도대로 '혁명' 으로 불리고 있고.
이런 탓에 러이터의 작품이 음반으로 헝가리 밖에 활발히 소개된 것은 약 2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다. 교향곡의 경우 아홉 곡 모두를 녹음한 음반은 아직도 낙소스 산하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CD들이 유일한데, 우루과이 출신의 지휘자 니콜라스 파스케(Nicolás Pasquet)의 지휘로 퍼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Pannon Philharmonic Orchestra. 음반에는 개명 이전의 명칭인 페치 교향악단(Pécs Symphony Orchestra)으로 표기되어 있음-가 1994~1996년 3년에 걸쳐 녹음했다.
ⓟ 1994 HNH International Ltd.
헝가리 악단의 연주인 만큼 토속적인 맛도 부족하지 않은데, 다만 아직까지 낙소스를 통한 재발매 계획은 없는 상태다. 음원들은 낙소스 뮤직라이브러리에는 모두 스트리밍 서비스로 올라와 있는데, 남산도서관 등 공공기관 홈페이지들에서 시간제한 없는 서비스 중이므로 충분히 들어볼 수 있다.
*마르코 폴로의 러이터 관현악 작품 음반 목록 (괄호 안의 숫자가 음반 번호):
관현악 작품집 1: 모음곡 제 3번, 교향 음화 '호르토바지', 교향곡 제 7번 '혁명' (8.223667)
관현악 작품집 2: 발레 모음곡 '카프리치오' (8.223668)
관현악 작품집 3: 교향곡 제 2번, 변주곡 (8.223669)
관현악 작품집 4: 모음곡 (제 1번), 추도, 교향곡 제 1번 (8.223670)
관현악 작품집 5: 교향곡 제 4번 '봄', 모음곡 제 2번, 교향곡 제 3번 (8.223671)
관현악 작품집 6: 교향곡 제 6 & 5번, 발레 '리시스트라타' 서곡 (8.223672)
관현악 작품집 7: 교향곡 제 8 & 9번 (8.2236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