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의심, 그리고 또 의심.
참 산기하게도, 어느 블로그 커뮤니티만 갔다오면 차단목록이 겁나게 늘어난다. 특히나 용산참사나 촛불집회 재개 등 사회 이슈만 나오면 특히나 그렇고. 애초부터 인기 따위는 아오안인 블로그였고 그런 이슈에 직접 발을 담근 적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 지금까지는 꼬이는 날파리가 없어서 그나마 안심이랄까.
그 커뮤니티, 예전에 내가 몸담았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끌어올리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그러면서 그 곳에 계속 글을 보내는 내 꼬라지도 우습기는 마찬가지지만. 하지만 이런 글은 애당초 그 쪽으로 보낼 생각이 없다. 그 찐따같고 덜떨어진 곳에서 굳이 잡스러운 머저리들을 끌어모아 흉흉하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난 누군가를 나쁘게 말하면 맹목적으로, 좋게 말하면 헌신적으로 신뢰하는 인간형은 아니다. 이미 초딩 때부터 나는 주위 사람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고, 실제로 그 눈초리를 풀었을 때 몇 번을 크게 당한 적도 있어서 더더욱 그렇다.
넷상에서 맺은 인간관계도 비슷한 습성 때문에, 지금까지 장기간 관계를 지속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나마 신뢰가 가는 사람이 어느 현안에 있어서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았을 때,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다가 그 정도가 심해지면 나는 그 끈을 과감히 끊어왔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까? 나는 소위 '심정 좌파' 에 해당하는 인물이라 우파를 표방하는 이들과는 좀처럼 친해져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우파로 자칭하는 이들 중 제대로 된 우파는 모래사장에서 좁쌀 한 톨 찾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고.
더군다나 책임없이 글을 싸고 뭉개기 일쑤인 넷상에서는 특히나 역겨운 장면이 많이 눈에 띈다. 그런 탓에 내 차단 목록의 과반수는 바로 그러한 정치 성향으로 정떨어진 이들의 블로그가 차지하고 있다. (어느 블로그에서 작성된 '커넥션' 이 내 차단 목록에 무척 유용하게 쓰였는데, 그 글은 정통부 조치 어쩌고 하며 검색이 차단된 상태다. 누가 그랬는지 뻔할 뻔자다.)
법치에 관한 내 생각도 좀 유별나다. 법은 지키는 것이 좋다고 배워 왔고 기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인양 맹신하는 이들은 분명히 경멸하고 있다. 소위 저작권법에 관해서도, 그저 잡아넣고 단속하면 다 잘 될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들이 유명세를 타고 있건 어쩌건 간에 이미 차단 목록에 들어 있다. (실제로 그들 중 몇몇은 풍자 만화의 주제조차 모르고 그것을 도덕적/법리적으로 해석하는 울트라똘끼를 보였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종교? 물론 '가라' 로 개신교나 불교 신자가 잠시 된 적은 있었지만, 지금도 교회고 성당이고 사찰이고 종교적인 이유로 가는 경우는 없다. 짧게 끊어 말하면 무신론자. 모든 것을 용서하고 죄를 같이 나누자는 사람들 만큼 개인적으로 정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그런 논리를 넷상에서 설파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고깝고. 실제로 어떤 개신교 신자 블로거는 모 디카 사이트에서 발흥한 소위 '수꼴' 들과 술잔을 나누며 친교를 맺더니, 급기야 그들을 변호하기까지 했다. 정말이지 구역질이 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차단.
그리고 음악을 배운 음미체-요즘은 예체능계 전공자들을 경멸의 표현으로 이렇게 부르더라-껄떡쇠로서 문화에 대해 가지는 관점도 꽤나 복잡하다. 나는 음악을 즐겨 듣지만, 그 음악이 누구에 의해 쓰여졌고 누구에 의해 연주되었느냐에 따라 분명히 선을 긋고 가리는 편식쟁이다. 특히나 일제 강점기 때 기득권 층의 노리개로 작용한 음악들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렇고.
대중문화에 대한 내 생각은 대개 비판적이고 무시하는 성향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나는 텔레비전을 쌩깐지 오래됐고, 무슨 드라마나 아이돌 그룹이 뜨네 지네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그리고 한때 꽤 많이 모았던 만화책도, 지금은 굉장히 까다로운 기준을 두고 정말 마음에 드는 것만 구입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도 나의 '역사' 에 관한 관점이 작용하기 때문에, 특히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경우 역사적인 관점에서 어정쩡하게 군국주의적이고 피해망상적이며 배타적인 것들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고. 물론 그런 것들을 좋아라 보고 남들 다 보라고 이곳저곳 뿌리고 소개하고 다니는 이들도 얄짤없이 차단했다.
나는 어떤 문화 상품이 그 질이 미칠듯이 떨어진다고 여겨졌을 때, 그것을 파손하는 것도 용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 라이트노벨과 관련되어 분서 논쟁이 벌어졌을 때, 분서한 측을 파시스트 어쩌고 하며 몰아세운 이들도 마찬가지로 차단 목록에 올렸다. 괴벨스나 진시황이 했던 분서의 사회적인 측면도 제대로 모르고 함부로 동급에 올려 까는 사람과는 절대로 놀고 싶지 않음이 물론이고.
자기 블로그에는 논쟁 거리가 거의 없는 포스팅들을 올려놓고 다른 블로그에서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아무렇게나 덧글을 다는 이들도 밥맛없기는 마찬가지다. 자기 집에서는 피를 묻히거나 똥을 바르기 싫어하면서 다른 집에 가서는 그런 짓을 하는 치들이다. (비슷한 예로, 단지 키워를 위해 블로그를 개설해 놓고 찍찍 싸대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만 써놓았다고 쳐도, '이 색히는 왜이리 싫어하고 꺼리고 증오하는게 돌아버리게 많냐' 고 생각할 것 같다. 사실 나 자신도 그렇다. 하지만 호불호의 분명함은 그 자체로 아직 유효하다. 그리고 지금은 불호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이라 이 사회, 이 나라 전체에 대한 정나미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고.
물론 나도 언젠가는 이런 까다롭고 더러운 성격이 누그러져 몸을 낮추고 타협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몸 낮추기가 좋은 의미의 타협이 아닌 굴종이 되는 것은 정말 원치 않는다. 만약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나는 차라리 그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고,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던 실제로 모질게 그래왔다.
나는 유학을 준비 중이고, 언젠가 나라 밖으로 날아갈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내가 돌아올 지, 아니면 그 곳에 눌러앉을 지의 문제는 꽤 복잡하다. 옛날이라면 고국의 소식을 접하기 위해 특정 매체에 의존해야 했겠지만, 이제는 인터넷만 되고 컴퓨터나 노트북만 있으면 대강이나마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알 수 있는 세상이다. 물론 내 입맛에 맞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완벽한 뻘생각이겠지만, 지금은 입맛의 문제도 아니고 아예 입에 대기조차 싫은 상황이니.
나는 지금도 내 '의심증' 을 고칠 생각이 없다. 특히나 온라인 상에서는. 오프라인에서보다 더 뒷통수를 많이 맞고 호감가진 이들의 더러운 면을 보고 절연한 횟수가 훨씬 많은 상황에서, 계속 그런 악순환을 경험하느니 차라리 맘 편한 외톨이가 더 편하다고 보고 있고.
뱀다리: 혹여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찔리거나 역겹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패션 정치인의 말마따나, 내 글에 '주어' 는 없다. 괜히 열폭하거나 넘겨짚지 마시길. 열받으면 웬 돌아이가 칭얼대나 하고 조용히 무시하시던가, 나처럼 그냥 당신의 블로그나 홈페이지의 차단 목록에 올리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