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잡설
네 번째 가본 촛불집회-가장 평온하고 문제없던 집회.
머나먼정글
2008. 6. 30. 23:41
기말고사가 끝나고 종강하면서 한숨 돌리나 싶었더니 공모전용 작품의 압박, 그리고 극적으로 맡게 된 모 대학교 아마추어 관현악단의 지휘자까지 해서 이래저래 바쁜 와중에 천주교 성직자들이 중심이 되어 서울광장에서 특별 미사를 집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도 나름대로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참여했던 성향의 종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대규모 집회를 교단 차원에서 연다고 해서 궁금하기도 했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통산 네 번째로 집회에 참석했다. 물론 미사답게 광장 주변에서 '다함께' 라던가 하는 급진적인 단체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중에 가두 행진할 때는 뒷쪽에 대기하고 있었는지 전교조나 민주노총,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성공회대 학생회 등의 깃발은 볼 수 있었다.) 서울광장에서 잔디 교체 작업을 하는지 약 60~70% 정도의 잔디가 걷어져 있어서, 참가한 신도들이나 시민들은 신문지를 한 장씩 나눠가며 모래바닥에 깔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미사 집전 시작이 임박했음에도 그 많은 인원들에게 집전을 '중계해 줄' 방송차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는데, 대략 6시 40분 쯤에 한 신부가 '경찰이 미사용 방송 차량이 오는 길을 막고 있어서 미사가 지연될 것 같다' 는 말을 앞에서 뒤로 구두로 전하고 있었다. 약 30분을 더 기다린 뒤인 7시 10분에 방송 차량이 도착했고, 마이크와 스피커, 앰프 등을 세팅하느라 약 20분 정도가 더 소요됐다. 방송 차량은 대책위가 쓰는 정도로 크지는 않았고, 앰프 출력도 비교적 약해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와중에는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방송 차량의 음향기기 세팅이 끝난 뒤, 대략 7시 28분 쯤부터 사제단이 광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전국 각지의 교구와 성당에서 올라온 신부들이었지만, 그 중에는 불교 승려나 개신교 목사도 몇 명 섞여 있었다.
그리고 사제단이 앞에 다 자리를 잡을 즈음인 7시 40분 쯤에 양초와 종이컵이 시민들에게 나뉘어지면서 미사가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 무교이고, 더군다나 미사를 직접 경험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식을 집전하는가 궁금하기도 했다. 물론 모차르트나 베토벤, 브루크너 등의 미사를 들어봤기 때문에 대충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음악이 없는 부분은 어떻게 이끌어 나가는지에 관한 관심도 있었고.
미사는 통상적인 입당 예식부터 시작해서 참회송(키리에)과 대영광송(글로리아)의 순서를 그대로 밟았는데, 강론에서부터는 의식의 틀을 조금씩 변형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강론에서는 성직자들이 이 미사를 집전하게 된 이유, 보수 언론의 편파 보도 비판, 정치인들의 국민 기만 비판, 정부의 물신 숭배적인 자세 비판이 이어졌다. 그리고 사제와 신도들의 결의 표명과 정부에 대한 호소-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 철회와 재협상 요구, 국민과의 진실한 대화 촉구, 검역 주권의 수호, 경찰청장 해임, 연행자 석방-와 더불어 시민들에게도 비폭력 집회를 해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 읽혀졌다.
그리고 봉헌가로-정말 이게 쓰일까 싶었는데, 놀라웠다-'대한민국 헌법 제 1조' 가 불려졌다. 물론 의식 중간중간에 천주교 성가도 불려졌지만, 이런 노래를 의식에 끼워넣을 줄은 몰랐고. 그리고 성체 의식 동안에는 신도들이 상당히 많이 참석해 그랬는지 꽤 오랫동안 집전이 됐는데, 그 동안에도 노래는 계속 반복되었고. 심지어 '광야에서' 까지 성가들의 사이에 불려졌다.
성체 의식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될 즈음이었던 8시 30분 쯤, 진행하던 신부가 '6시 30분 쯤 시민 두 명이 전경 버스로 끌려가 구타당했다는데, 그것을 목격한 시민이 있을 경우 증언을 부탁한다' 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미사는 8시 48분 쯤 종료되었고, 가두 행진이 시작되었다. 행진을 시작하면서 신부들은 끊임없이 비폭력 집회를 해줄 것을 당부했고, 신부와 수녀들을 따라 앞에 있던 시민들부터 차례로 광장을 빠져나가 걷기 시작했다.
청와대로 향하면 향할 수록 경찰의 진압 강도도 강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는지, 사전에 행진 경로를 확실히 알려주고 시작하고 있었다. 청와대를 등지고 숭례문으로, 거기서 좌회전해 명동을 거쳐 다시 을지로에서 좌회전해 서울광장에 되돌아온다는 경로를 택했는데, 처음에는 구호를 계속 외치다가 한국은행을 지날 즈음 침묵 시위로 방법을 바꾸어 걸었다.
도중에 롯데백화점 맞은편의 SK 건물에서 잠깐 실랑이가 있기도 했지만, 물리적 폭력이 가해지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전경들의 모습도 볼 수 없었고, 시민들과 성직자들은 예정된 도착지인 서울광장에 그대로 돌아왔다. 무언가 또 하려나 하고 광장에 앉아 있었는데, 한 신부가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고, 이제 내일부터 매일 오후 7시에 계속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니 집에 돌아가 주기를' 당부하는 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청역을 통해 집에 가기로 했는데, 역에 가는 도중 신부들이 시청 앞 천막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가기 위해 모인 것을 보기도 했다.
물론 시위의 방법과, 그에 대한 정부와 공권력의 대응에 대해서는 꽤 많은 의견들이 계속 제시되고 있어서 나도 딱히 어느 편을 들기는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집회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특히 이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다고 당장 '천주교 신자가 돼야 하겠다' 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성직자들의 건승을 기원하는 바이다.
p.s.: 그리고 나는 그 성직자들만큼 관대하지 않다는 것도 뱀다리지만 첨언하고 싶고. 지금 뉴스 밸리에 인기글로 올라와 있는 'CG' 들의 글 또한 관용있게 보아주고 싶지 않다. 성직자와 시위대를 '나누어' 평가하거나 모두를 '미쳤다' 로 싸잡는, 익스트림하게 시크하고 엘레강스하며 럭셔리한 해석이라니. 물론 그들도 내 이글루에 뭐라고 태클을 걸고 싶겠지만, 아마 못하지 않을까나.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통산 네 번째로 집회에 참석했다. 물론 미사답게 광장 주변에서 '다함께' 라던가 하는 급진적인 단체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중에 가두 행진할 때는 뒷쪽에 대기하고 있었는지 전교조나 민주노총,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성공회대 학생회 등의 깃발은 볼 수 있었다.) 서울광장에서 잔디 교체 작업을 하는지 약 60~70% 정도의 잔디가 걷어져 있어서, 참가한 신도들이나 시민들은 신문지를 한 장씩 나눠가며 모래바닥에 깔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미사 집전 시작이 임박했음에도 그 많은 인원들에게 집전을 '중계해 줄' 방송차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는데, 대략 6시 40분 쯤에 한 신부가 '경찰이 미사용 방송 차량이 오는 길을 막고 있어서 미사가 지연될 것 같다' 는 말을 앞에서 뒤로 구두로 전하고 있었다. 약 30분을 더 기다린 뒤인 7시 10분에 방송 차량이 도착했고, 마이크와 스피커, 앰프 등을 세팅하느라 약 20분 정도가 더 소요됐다. 방송 차량은 대책위가 쓰는 정도로 크지는 않았고, 앰프 출력도 비교적 약해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와중에는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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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차량의 음향기기 세팅이 끝난 뒤, 대략 7시 28분 쯤부터 사제단이 광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전국 각지의 교구와 성당에서 올라온 신부들이었지만, 그 중에는 불교 승려나 개신교 목사도 몇 명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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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제단이 앞에 다 자리를 잡을 즈음인 7시 40분 쯤에 양초와 종이컵이 시민들에게 나뉘어지면서 미사가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 무교이고, 더군다나 미사를 직접 경험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식을 집전하는가 궁금하기도 했다. 물론 모차르트나 베토벤, 브루크너 등의 미사를 들어봤기 때문에 대충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음악이 없는 부분은 어떻게 이끌어 나가는지에 관한 관심도 있었고.
미사는 통상적인 입당 예식부터 시작해서 참회송(키리에)과 대영광송(글로리아)의 순서를 그대로 밟았는데, 강론에서부터는 의식의 틀을 조금씩 변형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강론에서는 성직자들이 이 미사를 집전하게 된 이유, 보수 언론의 편파 보도 비판, 정치인들의 국민 기만 비판, 정부의 물신 숭배적인 자세 비판이 이어졌다. 그리고 사제와 신도들의 결의 표명과 정부에 대한 호소-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 철회와 재협상 요구, 국민과의 진실한 대화 촉구, 검역 주권의 수호, 경찰청장 해임, 연행자 석방-와 더불어 시민들에게도 비폭력 집회를 해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 읽혀졌다.
그리고 봉헌가로-정말 이게 쓰일까 싶었는데, 놀라웠다-'대한민국 헌법 제 1조' 가 불려졌다. 물론 의식 중간중간에 천주교 성가도 불려졌지만, 이런 노래를 의식에 끼워넣을 줄은 몰랐고. 그리고 성체 의식 동안에는 신도들이 상당히 많이 참석해 그랬는지 꽤 오랫동안 집전이 됐는데, 그 동안에도 노래는 계속 반복되었고. 심지어 '광야에서' 까지 성가들의 사이에 불려졌다.
성체 의식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될 즈음이었던 8시 30분 쯤, 진행하던 신부가 '6시 30분 쯤 시민 두 명이 전경 버스로 끌려가 구타당했다는데, 그것을 목격한 시민이 있을 경우 증언을 부탁한다' 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미사는 8시 48분 쯤 종료되었고, 가두 행진이 시작되었다. 행진을 시작하면서 신부들은 끊임없이 비폭력 집회를 해줄 것을 당부했고, 신부와 수녀들을 따라 앞에 있던 시민들부터 차례로 광장을 빠져나가 걷기 시작했다.
청와대로 향하면 향할 수록 경찰의 진압 강도도 강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는지, 사전에 행진 경로를 확실히 알려주고 시작하고 있었다. 청와대를 등지고 숭례문으로, 거기서 좌회전해 명동을 거쳐 다시 을지로에서 좌회전해 서울광장에 되돌아온다는 경로를 택했는데, 처음에는 구호를 계속 외치다가 한국은행을 지날 즈음 침묵 시위로 방법을 바꾸어 걸었다.
도중에 롯데백화점 맞은편의 SK 건물에서 잠깐 실랑이가 있기도 했지만, 물리적 폭력이 가해지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전경들의 모습도 볼 수 없었고, 시민들과 성직자들은 예정된 도착지인 서울광장에 그대로 돌아왔다. 무언가 또 하려나 하고 광장에 앉아 있었는데, 한 신부가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고, 이제 내일부터 매일 오후 7시에 계속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니 집에 돌아가 주기를' 당부하는 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청역을 통해 집에 가기로 했는데, 역에 가는 도중 신부들이 시청 앞 천막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가기 위해 모인 것을 보기도 했다.
물론 시위의 방법과, 그에 대한 정부와 공권력의 대응에 대해서는 꽤 많은 의견들이 계속 제시되고 있어서 나도 딱히 어느 편을 들기는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집회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특히 이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다고 당장 '천주교 신자가 돼야 하겠다' 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성직자들의 건승을 기원하는 바이다.
p.s.: 그리고 나는 그 성직자들만큼 관대하지 않다는 것도 뱀다리지만 첨언하고 싶고. 지금 뉴스 밸리에 인기글로 올라와 있는 'CG' 들의 글 또한 관용있게 보아주고 싶지 않다. 성직자와 시위대를 '나누어' 평가하거나 모두를 '미쳤다' 로 싸잡는, 익스트림하게 시크하고 엘레강스하며 럭셔리한 해석이라니. 물론 그들도 내 이글루에 뭐라고 태클을 걸고 싶겠지만, 아마 못하지 않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