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을 일으키고 패전한 나라들 중 흔히 '과거청산' 의 자세를 가지고 지금도 비교용 떡밥으로 등장하는 것이 독일과 일본이다. 대개 전자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과와 배상을 했으며, 후자는 그러지 않고 있다는 의견과 생각이 많은 것 같고.
다만, 독일 내에서도 자신들의 과거청산 작업이 허술했다고 비판이 계속 제기되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실제로 나치 시대의 관료나 당원들 상당수가 전후에도 각종 요직에 앉아 유명세를 지켜나간 사례를 발견할 수 있고-대표적으로 카라얀이나 하이데거, 베르너 폰 브라운, 칼 슈미트 등-, 전후 집권한 아데나워 등의 정치인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 보다는 '미래를 위한 재건' 에 신경을 쏟도록 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에는 독일 최고의 악단이라고 흔히들 꼽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erliner Philharmoniker)가 자신들의 현재와 과거를 다룬 두 다큐멘터리의 제작을 지원하고 나서서 화제가 되었는데, 특히 과거를 다룬 것에 관심이 많았다.
과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바로 에스파냐계 독일인 영화감독인 엔리케 산체스 란쉬(Enrique Sánchez Lansch)의 '제국관현악단(Das Reichsorchester)' 이었는데, 대개 이런 다큐멘터리 영화는 국내에 정식 개봉되는 일도 별로 없기 때문에 주한독일문화원에서 개최한다는 상영회를 특별히 주목하고 있었고.
독일문화원 어학강좌 수업을 마치고 나니 꽤 시간이 많이 비어서 주변에 있는 남산도서관과 용산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열람하며 시간을 때웠는데, 개중에는 만주국에 관해 일본인이 저술한 책도 있었고 거기서 만주의 음악 활동에 관해 서술한 자잘한 부분을 보고 복사해 놓기도 했다.
시간이 되어 다시 문화원으로 돌아가 행사가 열리는 오이로파잘(Europa-Saal)에 들어갔다. 그리 크지는 않은 공간에 의자가 서른 개 정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혹시나 자리가 없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다행히도 없었고.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기는 했다.)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행사 주최자-아마도-가 한국어와 독일어로 개최사를 발표하고, 이어 이 상영회를 위해 초빙된 음악학 박사 이경분의 짤막한 세미나가 이어졌다(역시 한독 병용). 세미나는 란쉬의 다큐멘터리가 다루고 있는 꽤 복잡하고 무거운 주제-음악의 힘과 정치, 사회의 상관 관계-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시작되었고, 이어 베를린 필의 간단한 역사와 나치 시대의 행적, 영화의 진행 방식 등을 우선 다루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다만 문제는 영화를 상영할 때부터였는데, 오이로파잘이라는 공간 자체가 다목적으로 지어진 데다가 바닥 경사가 없었고 스크린 밑에 뜨는 자막이 앞사람들의 뒷통수에 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영상 보느랴 자막 확인하느랴-참고로 영어 자막이었다-고개를 쉴새없이 움직여야 했다. (그러고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영화는 흔히 등장하는 나레이터가 하나도 없이 관련 자료와 인터뷰 만으로 엮어졌는데, 나레이터가 등장함으로 인해 다큐멘터리의 방향성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로 보였다. (다만 음성이나 영상 자료가 없는 육필 혹은 기사를 제시할 경우, 원고의 캡처나 출처 표시와 함께 낭독하는 나레이션이 깔리기는 했다.)
인터뷰는 대체로 나치 시대에 활동한 베를린 필 단원이나 그 친족들의 회고담 위주로 진행되었는데, 저마다 당시 상황을 회고하면서 자신들의 관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란쉬는 여기서 마치 토론 프로그램을 연상시키는 편집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인물이 그 주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면 다른 인물의 인터뷰에서 그와 반대되는 장면을 집어넣거나 하며 균형을 맞추고 보는 이로 하여금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질문을 던지는 듯한 연출이었다.
이러한 편집술을 쓴 대목은 베를린 필에서 쫓겨나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껴 스스로 퇴단해야 했던 동료 유태인 혹은 유태계 단원에 대한 견해, 점차 늘어가던 나치 당원 연주가 혹은 친나치 성향의 연주가에 대한 평가 등이었다. 심지어 괴벨스의 연설이나 편지, 포고문, 당시 기록영화의 장면을 반론이나 보론처럼 사용하는 대목도 있었고.
이미 알려진 것처럼, 베를린 필은 자립 악단으로 항상 재정난에 허덕이다가 결국 1930년대 초반에 베를린 시와 정부에 보조금을 신청하기 시작했고, 나치 집권 후에는 '제국 관현악단' 의 자격을 부여받아 전황 악화에도 불구하고 재정 지원과 공연 기회 마련, 병역 면제 혜택 등을 누렸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베를린 필은 잃어야 했던 것도 많은데, 이 영화에서는 자립 악단으로서의 자존심이나 긍지를 버려야 했던 것은 물론이고 친하게 지내던 동료 단원이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떠나는 것을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보거나 좀 더 나은 생계 유지라는 이유로 나치에 입당하는 단원이 생기던 것을 특히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었다.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 달리 그들의 수장이었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 당시 단원들이 공연을 하면서 가졌던 다양한 생각들에 대해 듣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 더 흥미로웠고 가끔은 고민스럽기도 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푸르트벵글러가 나치 시대에 남긴 방송 녹음들을 꽤 많이 소장하고 있고 지금도 자주 듣고 있는 편인데, 그들이 과연 '나는 음악만 하고 살 수 있다면 다른 건 아무 상관 없어' 라고 생각했는 지를 늘 마음 속에 담고 있었다. 하지만 전황이 악화되면서 수도 베를린도 폭격과 포격으로 안전하지 못했을 때를 회상할 때, 단원들이나 친족들은 저마다의 경험담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결국 우리도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는 의견을 공통적으로 내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자신들이 행한 행동이 현명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릇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다. 전쟁 말기와 전후 연합군 군정 당국에 의해 진행된 비나치화 작업에 대해서도 영화는 그 동안 좀처럼 공표되지 않았던 사실들을 계속 밝히고 있었는데, 나치 당적을 가졌던 단원들 대부분이 다른 악단들로 이적해 계속 활동했다는 것도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제시되고 있다. (물론 이들의 실명과 사진, 영상 자료도 그대로 공개되고 있다.)
베를린 필은 나치 시대에도 이런저런 특권을 누렸고, 점령지와 동맹국, 중립국의 순회 공연을 통해 '독일 음악과 정신' 을 알림과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고 지원하는 군사 조직이나 관변 단체가 주최하는 공연에 참가했다. 그리고 전후에도 해단되는 일 없이 계속 존속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중이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나치 시대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무비판적으로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당시에 대해 담담한 입장을 취하는 쪽을 좀 더 '까고' 싶기는 했다. 최근 발간된 헤르베르트 하프너의 푸르트벵글러 평전에서 필자가 주장하듯이, 그들은 독일에 '진정한 독일 음악과 예술' 이 존재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자행된 홀로코스트나 전쟁 범죄에 대해서 '나와는 그다지 상관없었다' 라고 너무나도 쉽게 판단하는 듯했다. 분명히 당시 독일에는 베를린 필과 아름다운 음악이 있었지만, 강제수용소나 재즈/유태인 작곡가 음악에 대한 금지 조치도 공존하고 있었다.
당시 영상 자료들은 대부분 일본 드림라이프에서 만든 DVD 등을 통해 봐왔던 것들이라 그다지 신선한 느낌은 없었지만, 그것들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던 조르제 조르제스쿠와 베를린 필의 리허설 장면이나 브루노 키텔 합창단과 그 지휘자였던 키텔의 공연 모습,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개막식에서 자작의 '올림픽 찬가' 를 지휘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모습 등은 처음 보는 영상들이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모두 인터뷰에 참가한 이들이 자신들의 나치 시대 활동지를 아무 말 없이 돌아보는 장면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BGM으로 베토벤 교향곡 5번의 3-4악장 이행부를 넣고 있다. 하지만 두 장면 모두 4악장의 승리감에 찬 팡파르로 향하는 부분을 일부러 잘라버렸는데, 꽤 의미심장한 편집이었고.
이 영화는 2008년 초에 아트하우스(Arthaus)에서 DVD로도 내놓은 바 있는데, 상영회에서 사용한 것도 DVD였다(재킷 디자인은 영화 포스터와 동일함). 아직 국내에 수입도 되지 않은 품목인데, 좀 더 제대로 보고 싶어서라도 지르고 싶어졌고. 음악가는 음악만 하고 살면 다른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던, 아니면 음악가도 결국 사회 현실과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건 보고 뭔가 나름대로 느끼고 고민할 것이 분명 있을 영화다.
"예술가들에게는 스스로를 비정치적이라고 칭할 권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민족의 드라마를 그리고, 낡은 가치가 떨어지고, 다른 가치가 상승하여 세계가 뒤집히는 순간에는 예술가라 할지라도 무관계를 주장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예술가에게도 크게 관계되는 문제인 것이다."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 나치 선전성 장관.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 중에서 인용)
"클래식 음악에서 '마에스트로 이미지' 는 구시대적이라 생각한다. 지휘자라는 것과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는 것은 음악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간적인 면에 있어서도 어떠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쟁점이 되는 이슈들에 대해서 관객, 그리고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알렉산더 리브라이히(Alexander Liebreich. 뮌헨 실내 관현악단 지휘자. 2007년 내한 공연 때의 프로그램 노트에서)
p.s.: 상영회가 끝난 뒤 오이로파잘 밖의 카페테리아에서 간단한 뒷풀이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굉장히 싫어하는 한 언론사에서 인터뷰를 시도하고 있었다. 본성이라면야 '당신네같이 썩어빠진 언론사랑은 인터뷰 않겠습니다' 라고 콱 쏘아붙였겠지만, 지인들도 있고 유명 인사들도 섞여 있는 곳에서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성의없이 간단하게만 대답했다. (이름도 밝히고 싶지 않아 성만 가르쳐 줬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밝히지는 않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나치 시대의 음악가들이 가졌던 현실 인식에 대한 생각 외에 이 나라의 예술계에 대한 숱한 문제와 다툼도 굉장히 많이 떠올라 꽤 복잡한 느낌이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의 해단,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사퇴, 현 문화관광부 장관의 문제 발언들, 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지휘하고 연주한 인물들, 대통령 선거철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이에서 너무나도 쉽게 입장을 바꾸고 있는 모 락 밴드 등등.
독일만큼, 혹은 독일보다도 더 근현대사의 질곡을 경험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이 화두는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더군다나 독일이나 일본처럼 자기 나라와 민족에 충성한 것도 아니고, 식민 지배를 가한 나라와 민족에 충성한 '친일' 이라는 부역 행위를 자행한 이들이 대부분의 문제를 가지고 있으니.
하지만 한국의 문화예술계는 아직 이 화두에 대해 그다지 설득력 있는 반응을 보이지는 않고 있는데, 얼마나 더 시간이 걸려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