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노래들은 대개 '선율성' 은 거의 본좌급이지만 뭔가 깊은 감동을 주기는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인 선입견이다. 물론 이러한 선입견도, 때로는 언어와 음악이 너무 밀접하게 연관되어 가끔 이해하기 힘든 독일 가곡같은 다른 언어/문화권의 노래와 대조되는 장점으로 일컬어지기도 하고.
다만 이런 선입견은 항상 이곳저곳에서 박살나기 마련인데, 개인적으로는 프란체스코 파올로 토스티(Francesco Paolo Tosti, 1846-1916)의 가곡들을 대표적인 '열외 사례' 로 들고 싶다.
토스티는 이탈리아 중동부의 오르토나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음악 교육은 주로 나폴리 음악원에서 받았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탓에 수업료 내기도 빠듯한 상황이었고, 결국 스승이었던 사베리오 메르카단테가 자신의 봉급에서 얼마를 떼어 대신해 주기도 했다고 하고.
하지만 결국 영양실조에 이를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생계 유지를 위해 이 때부터 가곡들을 많이 작곡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가곡은 이런저런 출판사에 보내진 뒤 딱지맞고 반송되었고, 로마로 활동 영역을 옮길 때까지 가난한 상태로 연명했다고 한다.
그나마 로마에 도착한 뒤에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던 조반니 스감바티의 후원을 받아 형편이 피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스감바티는 그 동안 이곳저곳에서 뻰찌먹었던 토스티의 가곡들을 공연 무대에 자주 올릴 수 있도록 주선해 주고 사보이의 마르게리타 공비-훗날 이탈리아 여왕이 됨-직속 성악 교습 강사로 추천해 주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재정 형편을 차츰 개선시키며 유명세를 조금씩 굳혀나가던 토스티는 1875년에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이 때 영국 상류층들과 탄탄한 인맥을 만들면서 아예 한동안 눌러앉아 작곡과 연주 활동을 벌였다. 토스티는 모국어인 이탈리아어 노래 외에도 영어 가사에 의한 노래들도 여럿 작곡했고, 이들 노래는 영국의 뮤직홀과 음악출판사에서 굉장한 인기를 모았다.
심지어 이러한 부와 인기 외에 명예도 주어졌는데, 이탈리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국 왕실의 성악 교사로 활동한 공적을 인정받고 '경(Sir)' 의 호칭을 받았다. 1913년에는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갔고, 로마에 머물며 안락한 여생을 보내다가 1916년에 타계했다.
토스티 가곡들 중 지금까지 애창되고 있는 곡들은 대개 영국 체류 시절에 작곡되었는데, 당시 영국에는 이탈리아 오페라나 가곡도 많이 보급되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영어로만 곡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인기를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개중에는 위에 쓴 것처럼 영어, 심지어 프랑스어로 쓴 곡도 있고, 나폴리에서 배우던 시절 습득한 방언으로 나폴리 칸초네 스타일의 곡도 작곡했다.
어느 언어로 쓴 곡이던, 토스티의 곡은 종래의 이탈리아 노래에 대해 선입관을 갖고 있던 이들을 개심시키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탈리아 특유의 낭랑한 선율미를 완전히 버리지 않고 있지만, 거기에 보편적인 서정성이나 가사에 대한 각별한 배려 등을 더해 '예술성' 을 획득한 것이 큰 업적이라고들 하고 있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토스티를 '이탈리아의 슈베르트' 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 곡은 지금도 수많은 성악가나 그 지망생들이 입시와 콩쿨에서 꼭 빼놓지 않고 부르는 필수곡이 되어 있는데, 아예 토스티 가곡들만 가지고 음반을 출반하거나 독창회를 여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토스티 가곡만을 담은 음반 중 예전에 이 포스팅에서 구매 희망 의사를 밝혔던 것이 있었는데, 그 음반을 해당 포스팅에서 언급한 나폴리 칸초네집을 구입했던 바로 그 곳-황학동 장안레코드-에서 최근 입수할 수 있었다.
ⓟ 1989 Philips Classics Productions
호세 카레라스가 에도아르도 뮐러 지휘의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반주로 녹음한 것인데, 관현악 편곡도 나폴리 칸초네집과 마찬가지로 피터 호프가 담당하고 있다. 다만 녹음만은 1년 전인 1979년 10월에 런던에서 진행했다고 되어 있다(아날로그). 수록곡은;
세레나데 (La Serenata)
비밀 (Segreto)
마레키아레 (Marechiare)
나는 죽고 싶소 (Vorrei morire)
매혹 (Malia)
이별의 노래 (Chanson de I'adieu)
마지막 노래 (L'ultima canzone)
새벽은 빛으로부터 (L'alba separa dalla luce l'ombra)
4월 (Aprile)
이상 (Ideale)
꿈 (Sogno)
귀여운 입술 ('A vucchella)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리 (Non t'amo più)
안녕히 (Good-bye)
대부분 널리 알려진 곡들이고, 주로 이탈리아어 가곡을 많이 고르고 있다. 다만 '마레키아레' 는 나폴리 사투리 가사를 쓴 칸초네고, '이별의 노래' 와 '안녕히' 는 각각 프랑스어와 영어 가사의 원전을 따르고 있다(이후 이탈리아 출판을 위해 이탈리아어 번역 가사로 된 악보가 나오기도 했다).
1년 뒤에 내놓은 나폴리 칸초네집과 달리, 이 앨범에는 특별히 우발도 가르디니가 이탈리아어 코치로 섭외되었다고 표기되어 있다. 물론 그 시점에서 카레라스는 세계 각지의 이탈리아어 오페라 무대를 석권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어 문제가 별로 없었겠지만, 굳이 언어 코치까지 둬가며 음반 작업을 한 것에서 볼 때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 것 같고.
(언어 코치를 둬가며 독창곡집 작업을 하는 경우는 이외에도 여럿 있는데, 조수미도 데카에 프랑스 오페레타 아리아집을 녹음할 때 마리-클레르라는 프랑스어 코치를 초빙한 바 있다.)
아직 백혈병의 마수가 뻗치던 때도 아니었고, 드라마틱한 오페라 배역에 너무 과도하게 도전하면서 목소리가 변하기 시작했던 때도 아니었던 만큼, 노래 쪽에서는 별로 걱정할 것이 없다. 반주 악단도 편성이 너무 크지 않은 실내 관현악단으로 잡았기 때문에, 노래를 절대 잡아먹는 일도 없고. 오히려 약간은 감정 과잉이라고 생각되었던 칸초네집보다도 더 차분한 편이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이 음반도 나폴리 칸초네집과 마찬가지로 폐반된지 오래고, 기껏해야 이런저런 베스트 앨범에 몇 곡 끼워진 것만을 쉽게 구할 수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상업적이고 대중 영합적인 크로스오버 앨범들보다는 차라리 이런 풋풋한 시절의 독창곡집이 훨씬 좋은 인상을 주는데, 개중에는 꽤 놀라운 컨셉의 것들도 끼어 있어서 더더욱 그렇다.
*'놀라운 컨셉' 이라 함은, 베르디와 파야의 가곡들을 관현악 반주로 녹음한 필립스 앨범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이런 컨셉은 사실 놀랍지도 않고 오히려 흔해빠진 것이긴 하지만, 곡들의 편곡과 지휘를 이탈리아 현대 작곡가의 거두였던 루치아노 베리오가 맡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고. 물론 저 앨범도 마찬가지로 폐반 상태인데, 다행히 명동 '부루의 뜨락' 에서 입수하는데 성공했다.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