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촛불집회에 나가서 처음에는 뭔가 긍정적인 기대를, 그리고 이후 엄청난 실망과 모종의 '쪽팔림' 을 감수했던 것이 2002년에 한창이었던 효순미선 사고의 추모 때였다. 그 때는 내가 원치도 않았고, 원했다고 해도 완전히 나이브한 생각이었을 전경과 시위대의 고전적인 '밀고 밀리기' 에 휩쓸려 옷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밀려다니고 온 몸이 멍 투성이가 될 정도로 쓸려다녔었다.
'개인적인' 피해야 그렇다 쳐도, 내가 그 집회에서 크게 실망했던 것은 소수의 선동가가 주도하면서 그 양상이 과격화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어떠한 종류의 정치사회 집회에 참가하지 않고 병역 의무도 마치면서 거의 6년을 '조용히 찌그려져' 보냈다. 그리고 어제서야 다시 집회에 참가할 용기를 한 번 내봤고.
그 때와 달리 집회 장소는 서울광장이었고, 광장 내의 잔디밭에서 경찰의 통제는 거의 없었다. 대략 학교 강의를 모두 듣고 6시 45분을 좀 넘어서 도착했는데, 몇몇 블로그에서 본 참가 권고 스펙-가방은 절대 들고 가지 말고, 신분증도 지니지 말라는-을 모두 '어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좀 켕겼고. 하지만 초기처럼 경찰이 강제 진압이나 연행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기 때문에 '깡' 을 부려볼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화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간단한 노래의 제창, 강기갑 의원의 특별 발언, 구호 제창, 시민들의 자유발언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자유발언 때 프락치 의심을 받았다는 한 시민의 연설 때 누군가가 단상으로 뛰어올라가 진행이 중단된 것을 제외하면 큰 불상사는 없었다. 그리고 그 시민은 나중에 사회자가 해명하기로는,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오른 것이 아니라 태안반도의 삼성-허베이 스피리츠 기름유출 사고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를 항의하기 위해 그랬다고 했다.
예전처럼 즉흥적으로 흥분해서 '죽여라' 같은 과격한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점에서 예상 외로 상당히 차분하다는 인상이었고, 쇠고기 수입의 문제점 외에도 신정권에서 계속 강행 처리로 문제가 되고 있는 대운하, 의료보험/상수도 민영화, 조중동 등 메이저 족벌언론의 편향된 보도 행태 등에 대한 비판 여론 등 다양한 주제의 의견들이 나왔다는 점이 특이했다. 심지어 위에 쓴 것처럼 집회에서 프락치로 몰려 곤욕을 치르면서 집회에 흔히 등장하는 선동가나 경찰 측의 교란 인력을 조심하자는 의견까지 개진되었고.
초대가수 한 분이 노래하는 것까지 듣고 일단 '물도 빼고', 뺀 속에 충전도 할 겸 국가인권위원회 옆의 편의점에 들어갔다. 골목길에서는 전경들이 상관의 지침을 들으며 도열해 있었고, 가끔 대오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마 이어질 예정인 행진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었을 것 같았고. 어쨌든 점심도 빵조각이랑 음료수 한 캔만으로 때웠기 때문에, 컵라면에 삼각김밥 두 개로 저녁을 해결하고 나왔다.
편의점을 나온 뒤 광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뒤였는데, 어디로 갔냐고 물어물어 플라자호텔과 하나은행 건물 사이로 행진해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도 그 쪽으로 계속 사람들이 걷고 있었고, 예비군들도 대열을 지어 걷고 있었다. 가끔 '지름길' 을 찾아가는 시민들 등으로 대오가 흐트러지기도 했지만, 기본적인 루트를 따라서 계속 걸었다. (명동-광교사거리-U턴해서 숭례문까지-다시 서울광장 옆의 세종로)
걷는 중에 혹시 전경이 골목에서 갑자기 몰려나와 급습하지는 않을지, 혹은 곁다리 루트로 가는 행렬에 휩쓸려 길을 잃지는 않을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걸었다. 심지어 구호 제창도 자제하면서 격한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촛불만 들고 얌전히(??) 걸었고. 하지만 예상대로 세종로에서 행렬은 경찰 병력의 '합법적 도로 점거' 로 발이 묶였다.
나는 그 때 행렬의 앞쪽에 있었는데, 행진 루트가 바뀔 때마다 계속 뛰어다니며 '예비군 라인' 을 만들고 다니던 예비군들이 맨 앞에 나와 스크럼을 짜서 일부 과격한 시위대원들이나 전경의 예상치 못한 진압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로이터 통신 등의 해외 언론과 인터뷰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인상적이면서 유쾌했던 것은' 해산을 종용하기 위해 몸소 나타난 한 경찰서장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의 발언 태도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더 '재미가 없었을' 집회였다. 그는 수십 년을 일하면서 몸에 밴 상명하복 식의 관료주의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위에서 우매한 군중들을 바라보며 딱하다는 듯이 훈계하려는 권위주의적인 태도로 무장하고 나왔는지 간간히 시민들을 충분히 '자극할 만한' 언사로 야유를 샀다. 시민들은 거기에 '노래하면 집에 간다' 라던가 하는 야유조의 구호를 외치면서 응대하기도 했고, 언론에서 비쳐진 시위대의 모습이 극히 부정적으로 시민들에게 각인되고 있다던가 하는 '설득' 에서는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시위대 뒷쪽의 플라자호텔 앞에서는 '닭장차' 가 움직이고 덕수궁 돌담길을 전경 중대들이 봉쇄하는 등 계속 병력 움직임이 있었고, 예비군들도 조별로 계속 스크럼 대형을 바꾸거나 어딘가로 뛰며 이동하는 모습이 계속 보였다. 그 와중에 도로 중앙선에 박혀 있던 사다리꼴 모양 경계석 몇 개에서 갑자기 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거기서 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꽤 신기했다. 하지만 굳이 물이 나올 이유가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경찰이 선두 진영을 와해시키기 위해 일부러 물을 틀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행진은 막혀 있었지만, 곳곳에서 군중 속에 섞여 있던 경찰 채증 요원이 발각되어 곤욕을 치르는 장면, 플라자 호텔 앞에 있던 닭장차가 사람을 다치게 했다고 그 쪽으로 몰려가는 장면들이 계속 보였다.
그 와중에 들고 있던 초의 종이컵에 불이 붙어서 황급히 발로 밟아 끄고, 물로 흥건해진 도로를 빠져나오다가 예의 '이오지마' 에도 올라갔었던 lumi님을 비롯한 이글루스 유저들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 사실 내심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수만 명의 인파 속에서 그들이 아무리 튀는 옷차림으로 있더라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었고.
어쨌든 그 뒤로는 일종의 '소강 상태' 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광장 쪽에서 맴돌면서 추이를 지켜보았다. 그 사이 전경들은 광화문 쪽으로 일단 후퇴했고, 그 사이에 형성된 공간에는 예비군들이 스크럼을 짜고 중립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시민들 중에는 그 뒷쪽에서 자유 발언을 하는 모습도 보였고, 간혹 만취한 어르신들이 분위기를 깨는 모습도 있었지만 폭력 등의 불상사는 내가 관찰한 한 없었다. 진보신당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은 만일의 진압과 연행 사태에 대비해 변호인단의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돌리고 있었다.
경찰 측의 선무방송차가 전진 대열로 배치되고, 하이바를 쓴 전경 부대들이 구호를 외치며 그 뒷쪽으로 집합하면서 다시 긴장감이 생겼는데, 이 때도 앞에서 스크럼을 짜며 대비하던 무리가 예비군들이었다. 대부분의 예비군들은 채증을 피하기 위해서였는지 마스크를 쓰고 이름표를 녹색 테이프로 발랐는데, 대열을 조정하는 역할을 했던 중사 약장의 두 사람은 얼굴도 가리지 않고 표찰도 그대로였다. 나중에 저 대열에 있었다는 미션루스님의 말로는, 그 사람들이 일부러 '연행이나 진압이 시작될 경우 자신들만 잡아가도록' 표적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무력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이 병력과 차량을 철수 혹은 후방 배치하면서 어떠한 안내 방송도 없이 교통을 정상화하는 바람에 시위대도 자동적으로 인도로 흩어져 와해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흥분한 시민들은 차량 중 순찰차를 둘러싸고 항의했고, 무슨 이유로 시위대 쪽에 왔는지 모르지만 예의 경찰서장은 갑작스러운 교통 통제 해제에 대한 항의와 야유를 퍼붓는 시민들과 그것을 찍는 취재진, 경호 요원들에게 묻혀 한참을 잡혀 있었다.
그 시점에서 사람들은 시민을 다치게 했다는 닭장차 쪽에 많이 몰려 있었는데, 전경 병력들은 그 차를 빼내기 위해 대열을 만들면서 도로와 사람, 그리고 차를 격리시키고 있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차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면서 다쳤는지 의료진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경찰들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지만 의료지원팀이 그 쪽으로 들어가 응급처치를 했고, 뒤이어 출동한 앰블런스가 그 부상자를 싣고 갔다. 부상자는 머리에 깁스를 하고 다리도 다쳤는지 휠체어에 실려서 나왔는데, 그 분도 그렇고 닭장차에 다치신 분도 그렇고 부디 무사하시길.
전반적으로-물론 취객이나 몇몇 '선동꾼' 의 트러블도 분명히 있었지만-예상한 것보다 훨씬 부드럽게 진행되고 끝난 집회였다. 다만 오래 걷고 서있다 보니 다리는 분명히 아팠지만, 다리 외에 2002년처럼 몸이 멍투성이가 되도록 '으쌰으쌰' 를 안한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고. 집회가 끝난 후 lumi님과 미션루스님을 위시한 이글루 유저들은 의료지원단의 활동에 감사를 표하고 일행 중 한 분이 가져온 차로 이동하는 동안 담소를 나눈 뒤 새벽 세 시쯤 흩어져 귀가했다. (미션루스님과 또 한 분은 집이 의정부에 있다고 했는데, 택시도 타지 못하고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부디 무사히 돌아가셨기를.)
오늘은 주말이고, 그래서 어제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모일 것이라고 한다. 아마 경찰 병력도 그 규모에 맞추어 더 많이 출동할 것이고. 인원이 느는 만큼 시민 쪽이나 경찰 쪽이나 통제에 겪는 어려움도 있을 것이고, 선동꾼이나 프락치에 대한 경계심과 소란도 분명 더 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제처럼 양 측의 폭력 행사 없이 진행된다면야, 충분히 참가할 수 있는 집회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예비군의 활약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찬탄을 아끼지 않을 수 없다. 예비군들은 집회 참가보다는 질서 유지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몸빵' 으로서 충실하게 기능했고, 그 결과 집회가 과격화되거나 하는 불상사를 막는데 크게 기여했다. 나도 예비역 2년차긴 하지만 아직 전투복을 입고 나설 정도의 뱃심이나 뒷심은 없는데, 어쨌든 같은 신분으로서 응원이라도 해주고 싶다. 마초이즘이라는 말 보다는 기사도라던가 술자리에서처럼 장난스레 '흑기사' 정도로 농조로 불러주고도 싶고.
뱀다리: 갖고간 핸드폰으로 이컷 저컷 찍긴 했지만, 그걸 컴퓨터로 옮기는 방법을 몰라 싣지 못한 점을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바이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는 방법을 최근(7월 20일) 알게 되어, 사진 두 장을 추가로 올림. 다만 크기를 줄이고 경계석 살수 장면은 밝기를 원본보다 더 밝게 해 물줄기가 잘 보이도록 보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