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

새삼스럽게 구매욕이 든 앨범 세 종류. 조플린 & 테이텀

머나먼정글 2008. 5. 9. 14:40
재즈 음반이 없다고 찌질댄게 몇 년 지났지만 여전히 내 음반 수집 목록에서 재즈 음반의 비율은 답보 상태다. 물론 돈도 없다는게 가장 큰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의외로 내가 찾고 있는 음반들이 구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따라다니고 있고.

다만 재즈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 단초를 제공해준 음악을 최근에 접하고 나름 버닝중이다. 바로 스콧 조플린(Scott Joplin, 1867-1917)의 피아노곡들.

조플린의 이름은 몰라도 영화 '스팅' 에도 나왔던 래그타임(ragtime) 곡인 '디 엔터테이너(The Entertainer)' 는 아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데, 아마 일반 래그타임 팬이나 재즈 팬이 아닌 이상 조플린 작품 중 가장 대중적으로 보급된 작품일 듯 하다. 물론 조플린 곡 중 일반적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단풍잎 래그(Maple Leaf Rag)' 겠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 흑인 음악가들 중 자신을 '예술가' 라고 당당히 내세운 인물은 상당히 드문 편이었는데, 조플린이 그 선구자 격이었던 인물 중 하나였다. 물론 조플린이 작곡한 음악들의 대다수는 당시 미국에 몰아치던 래그타임 열풍을 반영하고 있지만, 조플린이 생각한 래그타임은 통속화되어 있던 여타 래그타임과는 차원이 높은 예술 작품이었다는 것이 나름대로의 차이점이었고.

조플린은 어렸을 적에 접한 흑인들의 노동요나 여타 미국화된 흑인 음악들을 물론 듣고 자랐지만, 어릴 적에 독일 출신 피아니스트에게 교습을 받으면서 바로크에서 낭만에 이르는 전통 클래식 피아노곡들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후자가 조플린의 '예술가적인' 태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은데, 실제로 조플린은 단순해 보이는 래그 한 곡을 쓰는 데도 몇 달을 고심했고 래그타임 곡들의 템포 설정을 무시하고 무조건 빨리 연주하는 기교 과시형 피아니스트들을 경멸했다.

재즈 평론가나 미국음악 전문가들에 따르면 래그타임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템포가 더 느리고 정확한 박자로 연주되는 형태의 음악이라고 하는데, 특히 행진곡과 대단히 유사한 템포와 박자를 가지고 있어서 빨리 연주하면 폴카나 갈롭처럼 상당히 변질되어 버린다는 주장이다.

아무튼 조플린의 래그타임 작품이나 여타 피아노곡들은 1차대전을 전후해 래그타임 거품이 꺼지면서 잊혀져 버렸는데, 그나마 제대로 리바이벌된 것은 197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바로크 음악 전문 연구가이자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였던 조슈아 리프킨이 과감하게 조플린의 피아노곡들을 모은 음반을 연속으로 취입한 것이 도화선이었고, 위에 쓴 것처럼 영화 '스팅' 에 쓰인 것이 크게 히트했던 것도 불을 붙여준 격이 되었고.

리프킨의 시도 후에 전문 클래식 피아니스트들도 미국 출신 연주자들을 주축으로 점차 조플린의 작품을 음반 목록에 추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 같은데, 낙소스(Naxos)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메리칸 클래식스(American Classics)에서도 두 장이 나와 있다. 내가 구매욕이 든 것이 바로 저 앨범들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