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 정권이 바뀌고 나니까 뭔가 70년대에나 유행했을 법한 좀 엄한 느낌의 유행어가 갑자기 자주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코렁탕' 이다. 모처에 사상 불온 등의 이유로 끌려가 취조받을 때 설렁탕을 시켜먹는 데서 유래했다는 말인데, 이걸 코에 부어서 고문을 하네 어쩌네 하는 상상을 하면서 만든 유행어인 듯.
아무튼 설렁탕이라는 음식 자체는 고기 구경하기 힘들었던 옛날 뿐 아니라 지금도 나름대로 대중 식사의 위치를 여전히 잃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수입 쇠고기-특히 미국산-와 관련한 이런저런 뒷말이라던가 석연찮은 협상 과정 등의 이유 때문에, 원산지 표기를 확인하지 않으면 뭔가 켕겨서 잘 먹지 않게 되기도 했다지만.
사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가게는 확실히 마이너스 점수 하나는 먹고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원산지 표시는 둘째 치고 메뉴까지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인데, 일단 맛있게 먹고 오기는 했으니 한 번 써갈겨 본다.
이번 가게는 광장시장 안에 자리잡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런저런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자주 소개되었던 녹두빈대떡이며 굵직한 순대, 보리밥 등을 팔고 있는 노점과 가게들로 곧장 통하는 남1문으로 우선 가야 했다.
들어가기 직전. 겉보기에는 그냥 재래시장 같이 보이지만, 들어가다 보면 음식 냄새와 여러 노점들의 모습을 맡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노점들에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일단 패스.
일단 남1문에서 오른쪽 길로 쭉 붙어서 가보다 보면 위와 같이 수입 식품이나 기타 상품들을 늘어놓고 파는 가게 서너 곳이 나 있는 좁다란 골목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짤방 오른쪽 위에 보면 어렴풋하게 오늘 목표한 가게의 간판이 나와 있다.
가까이 가서 찍어본 간판. 가게 이름은 아마 아래층에 있는 다방인 '한일다방' 에서 따온 것 같았다.
간판을 따라 마찬가지로 좁다란 건물 계단을 올라갔다.
다방을 지나 올라가다 보니 통로 오른쪽 옆구리에 살짝 열려 있는 나무 문간이 보인다. 여기가 이 뻘글의 최종 목적지인 한일 설농탕.
가게 안은 '여기 정말 식당 맞나?' 싶을 정도로 좀 이상한 분위기였다. 통로 쪽에 좁다랗게 있는 공간을 주방 삼아 쓰고 있었는데, 한켠에서는 사골과 양지머리가 푹푹 끓고 있었고, 국수솥과 밥솥도 용케 어떻게 들여놓았는지 신기할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통로를 지나서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안방 분위기의 식사 공간 두 칸이 나 있었다. 다만 이 쪽은 작기는 커녕 오히려 천장이 꽤 높아서, 창고로 쓰던 공간을 개조한 듯한 모양새였다.
물론 시장 안의 소탈한 식당이다 보니 먹는 공간의 분위기도 약간은 소란스러운 편이었다. 한켠에 이렇게 높이 쌓여 있는 냅킨 박스며 고장났는지 어쨌는지 들여놓고 쓰지 않고 있는 텔레비전 등등. 거기에 이런저런 화분들까지 더해져서 생긴지 얼마 안되는 듯한 포스도 풍기고 있었다.
수저통, 양념통, 냅킨통, 소줏잔과 물잔이 올라앉은 자그마한 쟁반, 시원한 보리차가 든 주전자. 소줏잔이 있는 걸 보면 설렁탕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어르신들도 오시는 모양이다. 다만 설렁탕집에 사이드 메뉴로 늘 갖춰져 있는 수육은 없는 것 같았다.
그냥 가게 이름에 있는 설농탕(설렁탕)만이 이 집의 유일한 메뉴다. 아마 그래서 메뉴판이 아예 없는 것 같고, 주로 시장 상인들이나 택배 기사들, 거래처 사람들 같이 여기 지리와 위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와서 먹는 분위기라 따로 표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좀 기다리다가 받은 설렁탕 한 상. 크게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만 여느 설렁탕집들과 마찬가지로 배추김치는 겉절이였고, 깍뚝썬 무김치에서는 약간 콤콤한 액젓 맛이 많이 났다. 뚝배기 그릇도 플라스틱 등이 아니라 나름대로 정통적인 묵직한 질그릇이었고.
시장통 가게라 뭔가 석연치 않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설렁탕임을 강하게 어필하고자(???) 했는지, 나름대로 큰 편인 양지머리 고깃조각이 너댓 개 정도는 들어 있었다.
매운 다대기 양념은 잘 먹지 않기 때문에, 후추와 소금만으로 간을 보고 국수를 건져먹은 뒤 밥을 말아 먹어치웠다. 원산지 표시가 없는지, 아니면 있는데 예상 외의 곳에 있어서 못봤는지 좀 꺼림직한 기분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불과 4000원이라는 가격에 기본적인 구색을 갖춘 설렁탕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는 꽤 괜찮았고, 심지어 수지맞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엄연히 광장시장 내에 자리잡고 있는 식당임에도 불구하고, 광장시장 홈페이지에 가게 등록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홈페이지 관리자의 귀차니즘인지 아니면 여타 어른의 사정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충 갈겨본 약도는 이렇다. 워낙 초야에 묻혀 있는(??) 가게라 몇 번은 실수를 하면서 가야 할 확률이 높을 듯. 그래도 '남1문' 과 거기서 오른쪽으로만 붙어가다가 수입식품 파는 가게 사이의 골목만 찾아내면, 그 뒤로는 간판만 믿고 갈 수 있다.
겸연쩍기는 했지만 쇠고기 맛을 좀 봤으니, 다음에는 식물성 노선(???)을 타 콩나물밥이나 두부요리나 둘 중에 하나 택해 먹어 볼 생각이다. 물론 '고기분' 이 부족하면 그냥 다른 곳부터 가겠지만 어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