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 총서로 시공사에서 간행되고 있는 책들 중 몇 권을 갖고 있는데, '한국 작곡가 사전' 의 경우에는 국내 작곡가들 뿐 아니라 재중 조선족이나 북한 작곡가들도 광범위하게 소개되어 있어 나름대로 가치가 충분한 데이터베이스다. 하지만 나온지 10년 가까이 되고 있기 때문에 출판 이후 해당 작곡가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따로 찾아봐야 하고, 중국이나 북한 외에 다른 지역에 터를 잡고 있던 작곡가들에 대해서도 좀 미흡한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특히 개인적으로는 제목에 적은 저 인물이 왜 누락되어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독일의 원로급 현대음악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한스 첸더가 '내가 높이 평가하는 한국 출신 작곡가는 윤이상과 박영희 두 사람 뿐이다' 라고 했을 정도로 지명도가 상당히 높은 인물인데도 말이다.
박영희는 1945년에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고, 1965년에 서울대 음대 작곡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배우고 독일 학술교류 재단의 국비 장학생(DAAD)에 선정되어 독일로 유학했다. 처음에는 베를린으로 갔다가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고등음악학교로 옮겨가 클라우스 후버와 브라이언 퍼니호에게 각각 작곡과 음악이론을 배웠고, 재학 중 발표한 독주곡이나 실내악 작품들이 독일의 여러 현대음악제에 발표되면서 서서히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1979년에 졸업한 뒤 이듬해에 다름슈타트 국제현대음악제와 쌍벽을 이루는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에서 관현악 '소리' 를 발표했는데, 1981년에 작곡/초연된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 에 앞서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 내 민주화 세력에 대한 군사 정권의 탄압을 비판하는 취지로 쓴 작품이었다. 이 곡은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박영희의 첫 국제적 출세작이 되었다.
1983년에는 세계 각지에서 창궐하기 시작한 극우 세력들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취지로, 나치 독일 시절 뮌헨에서 활동하다가 대부분이 붙잡혀 처형되고 투옥되었던 비밀 결사 '백장미' 의 지하 출판물을 가사로 한 '봉화' 라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1991년부터는 객원 교수 자격으로 칼스루헤와 그라츠의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1994년에 브레멘 고등예술학교 작곡과 정교수로 임명되면서 그 곳에 눌러앉아 살고 있다.
그래서 현재 국적도 독일로 되어 있는데, 다만 마찬가지로 독일 국적을 보유했던 윤이상의 경우에는 저 사전에 꽤 길고 중요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반해 박영희는 일언반구도 없다는 것이고. (참고로 윤이상 외에 저 사전에서 유럽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인물로 소개된 이는 진은숙 정도임)
박영희의 독일 이름은 제목 옆에 괄호로 주기한 것을 사용하고 있는데, 성 뒤에 하이픈 치고 'Paan' 이라고 붙인 것은 한국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호' 다. 도올 김용옥이 붙여줬다고 하는데, 한국식 한자 독음으로는 '파안(琶案. 책상에 놓인 비파를 보며 생각한다는 뜻이라고 함)' 이다.
박영희가 독일에서 주목받은 것은, 물론 독일 전위 작곡가들이 치열하게 파고드는 '음색' 에 대한 집중적인 탐구 때문이기도 했다. 거기에 한반도의 전통음악 어법을 서양 악기에 응용하는 점 때문이기도 한데, 물론 이렇게만 보면 단순한 오리엔털리즘때문에 성공했다고 매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같은 동양적 작품이라도 거기에 '창작자의 진실됨(아마 창작자의 진지한 예술적 태도를 지칭하는 개념 같음)' 이 없다면 맹렬히 비판하기 때문에, 그 성공이 단순히 동양적이라서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고 하고.
작품들의 제목도 위에 쓴 '소리' 외에 '만남' 이나 '편경', '우물', '노을', '지신굿' 같이 한국어 단어를 독일어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내놓은 것이 많은 것도 특징인데, 그 만큼 자신의 뿌리를 상당히 강조하는 타입이라고 한다. 윤이상이 그런 것처럼 박영희도 해외에서 만들어진 음반이 여러 종류 있는데, 내가 신촌기차역 근처 중고음반점에서 입수한 것도 프랑스 음반사인 오비디스(Auvidis)에서 제작한 것이었고.
ⓟ 1994 Auvidis
쾰른의 서부독일 방송국(Westdeutscher Rundfunk. WDR)의 녹음을 소스로 만든 CD인데, 수록곡은;
1. 일곱 악기를 위한 '우물(U-Mul)' (1991-92)
(연주편성: 알토플루트/클라리넷/타악기(주자 1명)/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2. 비올라,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노을(No-Ul)' (1984-85)
3. 플루트 독주를 위한 '드라이잠 노래(Dreisam-Nore)' (1975)
4. (프리페어드)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편경(Pyon-Kyong)' (1982)
5. 첼로 독주를 위한 '아가(雅歌) I(Aa-Ga I)' (1984)
6. 클라리넷과 현악 3중주를 위한 '만남 I(Man-Nam I)' (1977)
연주는 여섯 곡 모두 독일의 현대음악 전문 연주 단체인 '앙상블 레셔르쉬(Ensemble Recherche)' 가 맡았는데, 이 CD 녹음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저 앙상블 소속이었던 뉴질랜드 출신 오보이스트 피터 빌(Peter Veale)의 특강과 연주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디씨 식으로 표현하면 정말 '흠많무' 였는데, 100여 가지의 멀티포닉스(복합음. 대개 불협화음들로 구성됨)나 키 클릭, 입술 글리산도, 순환호흡(숨을 내쉼과 동시에 들이마시는 호흡법) 등을 아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달인이었다.
현대음악의 웬만한 작품들은 작곡자가 표제를 붙이는게 예삿일인데, 저 곡들도 그러한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수록곡들 중 가장 초기의 작품인 '드라이잠 노래(Dreisam-Nore)' 는 유학 시절 프라이부르크에 흐르는 강줄기를 일컫는다는 '드라이잠(Dreisam)' 에 한국어의 '노래' 를 섞은 하이브리드 타입 표제인데, 유학생의 초짜 작품이라고 해도 온갖 현대 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어서 플루티스트들에게는 꽤 까다로운 난곡이라고 한다.
그 외의 작품들에는 한국어 단어를 그대로 표제에 사용했는데, 드라이잠 노래와 마찬가지로 첼로 독주에 고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아가 I(Aa-Ga I)' 의 경우에는 천상병의 시에서 소재를 얻어서 썼다고 하고 있다. 물론 이 곡 외에도 정철이나 문병란, 김지하 같은 한국 시인들의 텍스트를 사용하거나 거기에서 '필이 꽂혀서' 쓴 곡들도 꽤 많고. (그렇다고 외국 텍스트를 등한시하지는 않음. '봉화' 의 경우를 참조)
'우물' 의 경우에는 고전적인 개념으로 보자면 소규모의 7중주지만, 현대음악에서 저 정도면 대규모 실내악으로 치고 있기 때문에 저 곡에만 유르크 비텐바흐(Jürg Wyttenbach)라는 지휘자가 따라붙었다. 옛적부터 한 공동체가 나누는 천연자원이라는 주제를 현대 사회의 물 부족 현상에 대입시켜서 사회적인 경고도 하고 동시에 노장 사상에서 뜻하는 물의 개념을 집어넣었다고 하는데, 윤이상이 그랬던 것처럼 박영희도 이 시점부터 작품에 도교 사상의 영향을 도입하기 시작했다고 하고.
물론 박영희는 지금도 계속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작년에는 한국의 두 번째 가톨릭 사제였던 최양업의 라틴어 서간집을 가사로 한 두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고 한다. 또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내세운 '국가브랜드 공연' 에서 '온누리에 가득하여, 비워지니...' 라는 국악관현악 작품도 발표했는데, 국악관현악용 작품이라고 해도 절대로 고정된 전통이랑 타협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서 현대음악에 익숙치 않던 청중들이 듣기엔 힘들었다는 평도 나왔고.
저 CD 말고도 콜레뇨(col legno)나 독일 하르모니아 문디(Deutsche Harmonia Mundi) 등의 음반사들 뿐 아니라, EMI에서도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이 섞인 컴필레이션 등으로 음반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수입된게 얼마나 있을 지는 잘 모르겠고. 오비디스 CD도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됐다가 지금은 이렇게 중고음반점 신세를 지고 있는 것 같은데, 현대음악에 관한 한국인들의 인식이나 관심이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서 그럴 지도.
p.s.: 현대 음악이 난해하고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편견이고, 나도 얼마 간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작곡세미나 수업 시간에 들었던 교수님의 일갈을 첨언하자면;
"베토벤 교향곡이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듣기 편한 음악이었을 것 같아? 그거랑 마찬가지야. 지금은 청중들도 그렇고 연주자들도 그렇고 듣기 이상하고 연주하기 힘들어도, 미래의 청중들이나 연주자들은 그걸 즐길 수도 있을 거라고. 전위음악 작곡가들은 지금의 진보적인 청중들이나 연주자들도 고려하겠지만, 미래의 사람들이 지니게 될 또 다른 가능성을 위해 작곡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