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라는 나라가 지나치게 수도에 편중된 형태라는 것은 그 수도에서 태어난 토박이 시민인 나로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불행히도 문화 면에서도 그런 모습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가령 한국의 관현악단들이 이곳저곳에서 서울로 올라와 치르는 교향악축제에서 연주를 들어보면 그렇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서울-또는 더 광범위하게는 수도권 포함-과 지방 사이의 편차가 좁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격차라는 것을 이번에도 느껴야 했다는 것부터 먼저 확실히 해두고 싶다.
#1
10월 19일에 울산에 내려간 이유는 단 하나였다. 슈만의 교향곡을 듣기 위해서였는데, 아무래도 일본 쪽에서 양악을 들여온 만큼 한국 악단들의 교향곡 레퍼토리 선호도도 그 쪽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편이다. 베토벤, 브람스, 차이콥스키, 드보르자크 네 작곡가의 교향곡은 막말로 '신물날 정도로' 자주 연주되고 있는데, 슈만의 경우는 그다지 빈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더 주목하던 프로그램이었다.
지금까지 공연에서 들어본 슈만 교향곡은 1번 '봄' 한 곡 뿐이었고, 이번에 울산시향에서 한다는 곡은 '라인' 이라는 제목이 붙은 3번이었다. 공교롭게도 작년에 반 년 정도 저 라인강을 끼고 있는 도시인 뒤셀도르프에서 체류한 적이 있었는데, 물론 슈만이 살던 때와 지금과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지만 그 체류 시절의 추억도 내가 울산까지 이 곡을 들으러 간 의도와 무관치 않다.
2부의 메인 곡 외에 1부에서는 슈베르트의 극음악 '로자문데' (또는 오페라 '마법의 하프') 서곡과 모차르트의 바이올린+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가 연주되었는데, 모차르트는 꽤 자주 들어봤지만 슈베르트 곡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임에도 지금껏 공연장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곡이었다.
결과적으로 들어보지 못한 곡들의 연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슈베르트는 맨 첫 곡이라 종종 나타나던 악단의 집중력이 좀 부족하다는 핸디캡은 있었지만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의 연주였다. 좀 더 흐름을 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했지만, 그걸 빼면 괜찮은 편이었다.
반면 모차르트 연주는 이 날 가장 불안하면서도 뭔가 힘겨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독주는 악단 악장 지성호와 MIK 앙상블 멤버로 유명한 김상진이 나눠 맡았는데, 연습 시간이 부족했는지 독주자들의 연주가 종종 삐끗하거나 불안하게 넘어가는 대목이 너무 자주 있었다. 특히 좀 빠른 음형에서는 음정이 계속 부정확했고 '협주곡' 으로서 관현악과 요구되는 조화로움도 자주 침해되는 모습이었다.
가장 기대하고 온 슈만의 경우에도 솔직히 표현하자면 많이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었다. 물론 슈만 교향곡 자체가 관현악법에 서투른 작곡가의 작품이라고 디스당해온 게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말러 같은 작곡가이자 지휘자는 그 모양새를 못참고 아예 전면적인 관현악 재편곡을 단행해 무대에 올렸을 정도니까 악단이나 지휘자 입장에서도 별로 고르고 싶은 곡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슈만의 원보에 손을 많이 대는 대신 그대로 정직하게 나가자는 컨셉을 취한 것으로 보였는데, 일단 소위 '한국 관현악단들의 종특' 인 밀어붙이기로 원곡의 난잡한 관현악 사운드를 상쇄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 의도는 특히 1악장과 마지막 5악장에서 어느 정도 실현되었지만, 3악장과 4악장에서는 곡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유연함이 같이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일단 그 동안 실연으로 듣지 못한 곡들을 일정 수준의 연주로 들었다는 포만감은 있었지만, 약간의 소화불량이 느껴졌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부산에서도 비슷했다.
#2
부산은 내게 일종의 '환상향' 으로 여겨지는 도시다. 2009년에 윤이상의 초기 실내악 작품 악보를 구하러 한 번 갔던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음악회 관람 등의 추가 문화 이벤트는 즐기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뒤에야 거기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가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울산 공연 때와 마찬가지로 2부 공연 곡목이 무척 땡겨서였다.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전경. 이렇게 해서 국내 6대 광역시에서 모두 공연을 관람한 기록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곳도 시설 노후화가 지적되어 대규모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뒤라고 해서 공연장 음향은 어떨 지도 관심거리였다.
11월 2일에 있었던 부산시향 공연은 악단 창단 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기도 했는데, 그 때문인지 상당한 규모의 작품인 홀스트의 모음곡 '행성' 을 메인으로 올렸다. 점성술에 기인했던 작곡가의 의도와 달리 태양계 행성들을 상징하는 음악처럼 인식되고 있는 곡인데, 물론 그 덕에 오디오파일들을 비롯한 매니아들이 많기는 하지만 실연에서 성공적으로 연주하기가 까다로운 곡인 것도 사실이다.
행성 외에도 울산 때와 마찬가지로 서곡도 흥미로운 선곡이었다. 아예 음반이나 음원으로도 듣지 못한 시완춘이라는 중국 작곡가의 '축일 서곡' 이라는 곡이었는데, 들어 보니 주지안얼이나 천치강, 탄둔, 브라이트 솅 같은 작곡가들의 작품 보다는 다소 보수적인 어법의 전형적인 중국식 음악이었다. 특히 한국의 태평소와 흡사한 모양새와 음색인 수르나이-아마 중국의 쒀나-를 독주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었는데, 물론 이 파트는 시하이빈과 왕잔잔이라는 두 중국인 연주자가 특별 초빙되어 연주했다.
이어 연주된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실연으로 몇 차례 들어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관심이 있었던 곡이었다. 이번 공연에서 협연은 아직 열한 살인 이수빈이 맡았는데, 상당히 어린 연주자였음에도 오히려 당당한 모습의 연주를 보여줘서 의외였다. 하지만 대극장의 음향 상태 덕에 만족할 만큼의 소리가 빠지지 않은 것이 상당히 아쉬웠다. 물론 내가 2층에서 들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예당 2층에서는 이렇게 소리가 힘없이 산란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리모델링을 했는 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들어본 바로는 적어도 음향 면에서는 세종문화회관과 비슷하게 그 막대한 시공 비용이 도대체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 흐리멍텅하고 산란된 음향은 2부에서 상당히 치명적인 결과로 돌아왔다.
홀스트의 저 작품은 일단 관현악이 잘 울려줘야 연주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곡이다. 하지만 첫 곡인 화성에서부터 뭔가 기운이 빠지는 모습이었다. 지휘자가 의도적으로 곡의 폭력성을 줄이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쟁을 가져오는 자' 라는 부제에 별로 걸맞지 않은 우유부단한 모습이었다. 이어진 금성에서는 섬세함과 유연함이, 수성에서는 순발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강했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행부 사이사이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토막난 듯이 부자연스럽게 흐르는 모양새였다.
그나마 목성에서부터 이런 부진이 점차 만회되는 느낌이었고, 천왕성에서는 화성에서 기대했던 포텐이 확 터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해왕성에서는 내가 가장 기대한 그 '무대 뒤의 여성 합창' 이 부산시립합창단과 김해시립합창단의 여성 파트의 노래로 그대로 구현되었는데, 2층 로비에서 불렀기 때문인지 소리가 좀 큰 감은 있었지만 '보이지는 않는데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듯한 노랫소리' 의 마성은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오디세우스나 오르페우스가 그렇게 홀리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드뷔시도 자신의 '야상곡' 에서 구현하려고 했던 세이렌의 노래를 재현하려는 모습 만으로도 온 보람이 있었다.
그럼에도 몇 군데 태클을 걸고 싶은 점은 여전했다. 악기 편성 면에서는 홀스트가 '특수 악기들' 의 경우 만약 구하지 못했을 경우 대체할 수도 있도록 다른 파트에 오시아(ossia) 악보를 만들었기 때문에 베이스 오보에 (또는 헤켈폰)를 구하지 못한 것은 충분히 넘어갈 수 있지만, 전자 오르간도 아닌 키보드의 오르간 음원으로 묵직한 소리를 구현하려고 했던 것에서는 뭔가 측은한 느낌까지 들었다. 사용한 앰프와 스피커까지 출력이 영 아니었는지, 묵직한 페달 톤도 풀 오르간의 위압감 느껴지는 총주도 앗카링~전혀 들리지 않았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기독교 문화권도 아니고, 천주교든 개신교든 간에 성당이나 교회에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해둔 경우가 드문 편인 나라인 만큼 공연장에서 파이프오르간을 구경할 수 없다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열악한 대체품을 사용해 거의 있으나 마나인 수준으로 존재감이 사라진 파트를 그대로 끌고 간 것이 모양새가 이상하다는 느낌도 마찬가지였다.
창단 50주년이라는 '희년' 을 기념하려고 한 의도 자체는 괜찮았지만,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역량이라던가 지원은 좀 부족해 보였다는 점에서 입맛이 씁쓸했다.
사실 한국의 '시립' 을 포함한 공립 관현악단들이 이렇게 기형적으로 성장한 원인은 마찬가지로 기형적으로 이루어진 '조국 근대화' 와 비슷하다는 게 개인적인 견해다. 급속한 미국화와 서구화에 편승하려다 보니 좀 큰 도시들에서는 시립 교향악단을 갖는 것이 일종의 '문화 근대화' 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는 시각을 갖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대부분 자생적인 것이 아닌 '위에서 만들어주는 악단' 이 되었다는 점에서 근대화의 모델인 미국이나 유럽과는 동떨어진 것이 되어 버렸다.
시작만 이랬으면 모르겠지만, 그들이 예속된 집단이 갖는 매너리즘이나 비효율적인 관행, 예술적 자질에 대한 몰이해 같은 단점이 결국 악단에도 그대로 옮겨가 정체된 연주력이나 선곡의 지리멸렬함, '인서울' 과 '지방' 의 악단 사이에 생기는 격차나 괴리감을 낳았다는 점에서는 단기간에 고쳐지리라고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게 같은 시립이라도 '본고장의 시립' 과 엄청난 차이를 만드는 요인인데, 전시 행정이 문화에 파고들 경우의 전형적인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음악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지금까지 들어보고 있는 바로는, 적어도 나아지면 나아지지 악화되는 경우는 별로 없으니 꾸준히 듣고 또 비판적이든 어떻든 관심을 가져주며 그 점진적인 변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물론 정상의 위치에 있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이미지를 구겨버린 악단도 있다. ㅋㅂㅅ향이라던가 ㅋㅄ향이라던가...
아무튼 지방 공연에 대한 만감 주절주절은 여기까지고, 그 다음에는 울산에서 처묵한 한 끼와 부산에서 처묵한 네 끼, 제한적 철덕으로 경험한 두 노선의 탑승기들을 올릴 예정이다. 역시 포스팅 거리 떨어지면 서울 바깥으로 좀 나다녀야 하는 것 같다. 차례대로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