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

(레어 아이템) 금난새 지휘의 1988년 실황 음반 한 장.

머나먼정글 2008. 3. 19. 14:44
1988년에 서울에서 개최된 24회 하계 올림픽은 (물론 그 당시에는 좀 부풀려진 면이 없지 않다고 해도) 나름대로 의미깊은 이벤트였다. 1980년과 1984년의 올림픽이 체제 대립으로 인한 '반쪽 올림픽' 으로 꾸려진 뒤 처음으로 두 진영이 모두 참가했다는 것은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도덕/윤리 교과서에도 나와 있던 내용이었고.

올림픽에 발맞추어 서울의 면모를 일신하는 작업도 진행되었는데, 물론 그 과정에서 불거진 '보신탕 문제' 같은 지나친 사대주의적인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어쨌든 올림픽 기간 동안 '문화예술축전' 이 부대 행사로 개최되었는데, 음악 공연은 이미 10년 전에 개관한 강북의 세종문화회관과 그 해에 (일부분이긴 하지만) 갓 개관한 강남의 예술의 전당 두 공연장을 중심으로 열렸다.

세종문화회관에서는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를 프랑코 제피렐리 연출의 호화찬란한 라 스칼라 오페라단 버전으로 상연한 것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러한 대규모 내한 공연 외에도 녹음으로 남아 음반으로 만들어진 공연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게 이번에 다룰 소재고.

1988년 당시 예술의 전당 건축물 중 완공되어 있었던 것은 음악당과 서예관이었다. 음악당은 국내 최초로 콘서트 전용으로 설계된 콘서트홀과 리사이틀홀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무대 작품은 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콘서트는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하는 식으로 배분되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문화예술축전 공연 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은 건국 이후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사회주의권 국가의 관현악단인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이었고. (이후 KBS 교향악단 상임을 맡았던 드미트리 키타옌코가 지휘함)

그리고 모스크바 필 정도는 아니었지만, 단원들 대부분이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국가였던) 불가리아 출신이었던 소규모 현악 합주단도 내한 공연을 가졌다. 악단 명칭은 '유러피언 마스터 오케스트라(European Master Orchestra)' 였고, 제 1바이올린 6/제 2바이올린 6/비올라 4/첼로 4/콘트라베이스 2로 구성되어 있었다.

저 악단은 상설 단체는 아니었고, 음반 해설지를 참고하자면 '베를린 필, 빈 필, 런던 교향악단,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 전 멤버들의 발의로 창단한' 일종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라고 한다. 하지만 단원 프로필에 저 네 악단의 단원이라고 표시된 인물은 한 사람도 없었는데, 물론 게재된 프로필이 1988년 당시의 직위였기 때문에 무조건 의심할 수는 없다(퇴단하고 다른 악단에서 활동한다는 무리수도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보다 더 흠좀무였던 것은, 악단의 음악감독으로 내세운 지휘자였다. 바로 금난새였는데,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금난새는 1980년에 홍연택이 상임 지휘자로 있던 국립교향악단(현 KBS 교향악단)의 전임 지휘자로 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제적인 지명도는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개방에 발빠르게 대처해 그 틈새를 파고들면서 나름대로 내세울 수 있는 해외 활동 경력을 만들기 시작했던 거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