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가기 한 달 남짓이라는 시간을 남겨두고서야 처음 찾았던 대중옥이었는데, 그 때까지는 뉴타운 개발을 위해 싹 밀어버린 땅에 불가사의한 모습으로 남아있던 곳이 재작년에 귀국한 뒤 다시 찾아가 보니 마찬가지로 싹 밀려 있었다. 대체 어디로 갔을까?
대중옥 홈페이지는 계속 살아 있어서 찾아보니, 근처의 어느 주상복합 건물로 옮긴다는 팝업 창이 떠 있었다. 하지만 직접 찾아간 그 건물에서도 여전히 대중옥의 대 자 하나 찾아볼 수 없었고, 그렇게 미각의 기억을 제외하고는 점점 그 곳이 있었는지 어쨌는지 이대로 희미해지는 건가 싶었다.
그러다가 작년 11월 중순에 얼핏 다시 생각이 나서 홈페이지를 다시 들어가 보니, 이전 장소와 개업 시기가 바뀌어 있었다. 이전한 곳은 이전의 청계천 근처가 아닌 강 건너 강남구의 역삼초등학교 사거리로 되어 있었는데, 교통편이 좀 불편하기는 했지만 상당히 반가운 소식이라 며칠 뒤 자세한 약도와 교통편 정보를 알아보고 가봤다.
해가 빨리 떨어지는 늦가을이라, 오후 다섯 시 반 좀 넘어서 갔는 데도 이렇게 어두웠다. 하지만 하얀 바탕의 대중옥 간판은 매우 선명하게 보였고, 글씨체도 그 때 그대로라서 제대로 찾아온 거라는 확신도 섰다.
파워블로거지인지 공갈 맛집 프로그램인지는 다 집어치우고, 가게에 붙은 현수막을 보니 여기가 언제 문을 열었는지 알 수 있었다. 8월이라면 꽤 됐다는 얘기였는데, 메뉴도 보니까 왕십리 시절과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일단 들어가서 계산대 뒤에 붙은 메뉴판부터 봤는데, 전체적으로 오른 가격과 함께 메뉴판의 대격변 상황이 그대로 들어왔다. 해장국과 설렁탕, 갈비찜은 예전부터 있었던 메뉴였지만, 추어탕 대신 들어간 갈비탕과 새로 추가된 등심은 좀 낯설었다. 먹어볼 일은 없었지만 머릿고기와 간, 처녑, 우랑(고환), 송치(암소 뱃속에 있던 송아지), 등골(척수) 같은 특수부위 메뉴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테이블 세팅. 예전의 국밥집 분위기에서 여느 대형 고깃집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전체적인 가게 내부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여서, 왕십리 시절의 대중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꽤 강한 인상을 받을 것 같다.
왕십리 시절 찾아갔을 때는 설렁탕을 먼저 먹었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해장국부터 먹기로 했다. 예전처럼 배추김치와 깍두기가 깔린 것은 똑같았지만, 거기에 배추겉절이가 추가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밑반찬과 밥에 이어 나온 해장국. 우거지와 선지를 주로 사용하는 점은 예전과 같았는데, 고기도 몇 점 들어 있었고 특이하게 풋고추 송송 썬 종지가 따라나왔다.
선지는 여전히 찰선지였고, 국물은 구수한 된장 베이스인 것도 똑같았다.
바로 밥을 몽땅 말고, 풋고추도 조금씩 넣어서 처묵처묵을 시작했다. 풋고추 덕에 꽤 맵싸했지만, 쌀쌀한 날씨인 만큼 일부러 맵게 먹는 게 나아 보여서 계속 넣어가며 입에 끌어넣었다.
물론 밥과 국은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이게 얼마 만의 재회인데.
그리고 바로 다음날에도 비슷한 시간대에 들어가 설렁탕을 주문했다. 마찬가지로 먼저 나온 김치 3종 세트.
그리고 펄펄 끓는 위압적인 모습의 설렁탕 뚝배기가 나왔다. 해장국의 경우 별로 변동 사항은 없었지만, 이 설렁탕의 경우 꽤 많이 변한 모습이었다.
김 나가라고 저어준 뒤. 예전에 먹었을 때는 쫄깃한 양지머리 편육이 건더기의 대부분을 차지했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차돌박이와 사태, 우설(소혀) 같은 다른 부위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쫀득한 양지의 식감을 즐길 수 없던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반대 급부로 우설이 들어갔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심각한 변화는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먼저 면을 어느 정도 건져먹은 뒤 밥을 말아서 먹기 시작했다. 고기도 부드러웠고, 우설도 독특한 씹는 맛이 있었다. 사실 그 동안 우설은 구이로든 탕으로든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식감이 어떤 지를 알 수 있었다.
물론 이것도 싹 비워냈다. 대체로 비싼 가격과 회식 위주의 메뉴로 구성된 음식점들만 유명한 탓에 뭘 먹으러 간 적이 거의 없는 서초구와 강남구에서 이 만큼 만족스러운 식사를 비교적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것이 흥미롭기는 했지만, 강북 주민으로서는 거리가 꽤 멀어졌다는 것이 아쉬운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또 이사를 가면서 예전의 소박한 분위기가 사라져서 아쉬운 이들도 있겠지만, 왕십리 시절에는 먼 곳에 살던 입장이었던 강남 사람들이 이 '강남스타일' 로 변모한 음식점에서 부담 없이 한 끼를 먹고 술자리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역지사지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올라가 보지는 못했지만, 2층에 왕십리 시절의 가게 문짝을 비롯한 '유물' 들이 보존되어 있다고 하니 그걸로나마 그 시절을 추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 그리고 왕십리 시절에는 24시간 영업하고 있었지만 역삼동 이전 후에는 인력 부족 때문에 당분간 9시부터 23시 까지만 영업한다고 한다. 이걸 몰라서 올해(2013) 1월에 수원에서 음악회 보고 난 뒤 늦은 저녁을 저기서 먹으려다가 문이 닫혀있는 걸 보고는 맥없이 돌아가야 했는데, 홈페이지에는 24시간 영업으로 계속 나와 있어서 '설마 여기서 또 이사가려나' 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나중에 와서 자유게시판을 찾아보니 저렇게 나와 있었는데, 혹시 나 말고 또 헛걸음칠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