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
슈트라우스 형제들의 이색작 모음.
머나먼정글
2008. 3. 7. 12:19
왈츠나 폴카, 카드리유 등 '빈 춤곡' 의 작곡가들 중 가장 화려한 경력과 작품들을 자랑하는 이들이 슈트라우스 가족들일 것이다. 아버지인 요한 1세(Johann Strauss, Vater. 1804-1849)부터 시작해서 아들들인 요한 2세(Johann Strauss, Sohn. 1825-1899), 요제프(Josef Strauss. 1827-1870), 에두아르트(Eduard Strauss. 1835-1916), 그리고 에두아르트의 아들 요한 3세(Johann Strauss, Enkelsohn. 1866-1939)까지 나름 빈 음악계에 미친 영향이 꽤 되고, 왈츠의 태동과 발전부터 전성기, 그리고 황혼까지 거의 모든 시기에 걸쳐 활동했기 때문에 가족들의 존재 자체가 역사적인 사료로도 이용될 수도 있겠고.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영광 뒤에는 분명히 그늘도 있었다. 요한 1세는 자신이 정상의 자리에 오르면서 겪었던 시련을 아들들에게 대물림시키고 싶지 않아서, 혹은 아들들이 자신의 지위를 넘볼까봐 두려워서 자식들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극렬히 반대했다. 그러나 바람을 피우고 별거를 하면서 요한 1세의 통제력은 삽시간에 무너졌고, 그 틈을 타 요한 2세와 요제프, 에두아르트가 차례로 음악계에 입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들들도 경력을 쌓으면서 늘 영광의 순간만 누렸던 것도 아니었다. 요한 2세는 아버지뿐 아니라 다른 라이벌 작곡가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너무 무리한 활동을 계속 강행한 까닭에 30대도 되기 전에 신경쇠약 진단을 받고 요양소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 때 대리로 동생 요제프가 악단 지휘자로 나서면서 공백을 메꾸었고, 요제프도 자작곡이나 편곡들을 발표하면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고.
그러나 요제프는 요한 2세보다 건강이 더 좋지 않았고, 결국 무리한 활동 끝에 1870년에 과로로 쓰러져 40대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나마 요한 2세는 병에서 회복되어 70대까지 장수하면서 온갖 부와 명예를 누렸으나, 요제프에 이어 댄스음악 작곡가와 지휘자의 길을 걸었던 막내 에두아르트는 왈츠의 인기 하락과 그것을 지탱해 주던 왕족과 귀족 등 상류층의 몰락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리고 형들의 유언인지 자의적 판단인지는 모르지만, 소중한 자필악보들과 악기들을 불태워 버리고 악단을 해체하는 쓰디쓴 작업도 맡아야 했고.
어쨌든 가족들의 이름은 음악사에 '댄스음악 작곡가이자 지휘자' 로 주로 남게 되었는데, 그런 영광의 그늘에 가려있던 작품들도 물론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듣보잡' 으로 여겨져 있거나, 혹은 출판도 되지 않은 채 에두아르트의 손에 태워없어져 버렸거나, 혹은 도서관들의 고문서 자료실에서 먼지를 뒤집어써가며 방치되어 있던 것이었고.
가장 많은 곡을 남긴 요한 2세의 경우 그러한 '외도' 로 남긴 작품이 꽤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곡들 대부분이 낙소스(Naxos) 산하 희귀 레퍼토리 전문 레이블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에서 진행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대전집' 을 통해 발표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 (아래 곡명들의 옆에 적는 숫자는 해당 CD의 시리얼 넘버와 수록 트랙임)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영광 뒤에는 분명히 그늘도 있었다. 요한 1세는 자신이 정상의 자리에 오르면서 겪었던 시련을 아들들에게 대물림시키고 싶지 않아서, 혹은 아들들이 자신의 지위를 넘볼까봐 두려워서 자식들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극렬히 반대했다. 그러나 바람을 피우고 별거를 하면서 요한 1세의 통제력은 삽시간에 무너졌고, 그 틈을 타 요한 2세와 요제프, 에두아르트가 차례로 음악계에 입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들들도 경력을 쌓으면서 늘 영광의 순간만 누렸던 것도 아니었다. 요한 2세는 아버지뿐 아니라 다른 라이벌 작곡가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너무 무리한 활동을 계속 강행한 까닭에 30대도 되기 전에 신경쇠약 진단을 받고 요양소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 때 대리로 동생 요제프가 악단 지휘자로 나서면서 공백을 메꾸었고, 요제프도 자작곡이나 편곡들을 발표하면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고.
그러나 요제프는 요한 2세보다 건강이 더 좋지 않았고, 결국 무리한 활동 끝에 1870년에 과로로 쓰러져 40대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나마 요한 2세는 병에서 회복되어 70대까지 장수하면서 온갖 부와 명예를 누렸으나, 요제프에 이어 댄스음악 작곡가와 지휘자의 길을 걸었던 막내 에두아르트는 왈츠의 인기 하락과 그것을 지탱해 주던 왕족과 귀족 등 상류층의 몰락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리고 형들의 유언인지 자의적 판단인지는 모르지만, 소중한 자필악보들과 악기들을 불태워 버리고 악단을 해체하는 쓰디쓴 작업도 맡아야 했고.
어쨌든 가족들의 이름은 음악사에 '댄스음악 작곡가이자 지휘자' 로 주로 남게 되었는데, 그런 영광의 그늘에 가려있던 작품들도 물론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듣보잡' 으로 여겨져 있거나, 혹은 출판도 되지 않은 채 에두아르트의 손에 태워없어져 버렸거나, 혹은 도서관들의 고문서 자료실에서 먼지를 뒤집어써가며 방치되어 있던 것이었고.

가장 많은 곡을 남긴 요한 2세의 경우 그러한 '외도' 로 남긴 작품이 꽤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곡들 대부분이 낙소스(Naxos) 산하 희귀 레퍼토리 전문 레이블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에서 진행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대전집' 을 통해 발표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 (아래 곡명들의 옆에 적는 숫자는 해당 CD의 시리얼 넘버와 수록 트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