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잡설

레어 애청곡선-78.무소르그스키/푼텍

머나먼정글 2008. 1. 12. 19:13
'러시아 5인조' 라는 집단은 그 구성원들이 모두 음악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 어떤 전업 작곡가들보다도 음악사에 끼친 영향력이 막강했다. 특히 림스키-코르사코프나 보로딘, 그리고 무소르그스키(Modest Mussorgsky, 1839-1881) 세 사람의 경우가 그렇고.

물론 '아마추어' 로 시작한 만큼 어느 정도의 핸디캡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는데, 무소르그스키 같은 경우가 그랬다. 무소르그스키는 오페라나 관현악 장르에 도전하고 싶은 열망은 강했지만, 막상 그 열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관현악법이나 악기론 같은 것에서 물을 많이 먹은 듯하다.

그래서 동료였던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무소르그스키 사후에 미완성 스케치나, 완성되었어도 뭔가 불완전한 느낌의 작품들을 나름대로의 주관으로 편집한 악보들이 출판되었다. 물론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선의로 행한 편집이었지만, 그 작업이 무소르그스키 음악 특유의 신랄함이나 어두움을 오히려 약화시켰다는 지적도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소련 성립 후 파벨 람(Pavel Lamm)이라는 음악학자가 가능한한 무소르그스키의 원전에 충실한 편집으로 신전집을 출간했는데, 이와는 별도로 쇼스타코비치도 림스키-코르사코프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보리스 고두노프' 나 '호반쉬나(호반시치나)' 같은 오페라의 관현악 재편곡과 '죽음의 노래와 춤' 의 관현악 편곡 등을 행한 바 있다.

하지만 람의 편집으로 간행된 악보는 소위 '서방 자유진영' 에서 입수하기 힘든 것들이었고, 그래서 한동안 림스키-코르사코프 편집의 악보들이 상용될 수밖에 없었다. 무소르그스키의 피아노곡 중 가장 유명한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 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곡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손을 본 버전이라도 피아노곡이라기 보다는 관현악곡에 가깝다고 여겨질 정도로 색감이 강렬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래서인지 무소르그스키 사후 10년도 채 안된 1886년 경 미하일 투슈말로프가 첫 관현악 편곡을 발표했는데, 그림 사이에 있던 모든 프롬나드를 비롯해 상당히 많은 대목이 생략된 채였다. 1915년에는 영국의 지휘자였던 헨리 우드가 관현악 편곡을 내놓았으나, 우드도 네 곡의 프롬나드를 생략한 채로 편곡했다.

'전람회의 그림' 관현악 편곡이 일종의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 1922년이었는데, 이 해에만 세 편의 편곡판이 선을 보였다. 바로 모리스 라벨과 레오 푼텍(Leo Funtek, 1885-1965)의 정규 관현악용 편곡과 주세페 베체의 살롱 오케스트라용 편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