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CD를 발매한 관현악단은 생각보다 많은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 해도 KBS 교향악단,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대구 시립 교향악단, 제주 시립 교향악단, 전주 시립 교향악단, 서울 바로크 합주단 등 꽤 많다. (그 외에 구입 혹은 입수는 못했지만 수원 시립 교향악단과 화음 체임버 오케스트라도 CD를 냈음)
하지만 그 CD들 대부분이 시중에 유통되지 않는 '비매품' 인 탓에 구하기가 꽤 어려운 실정인데, 그나마 KBS 교향악단의 경우에는 전임 지휘자였던 금난새의 지휘로 꽤 일찌감치 녹음을 해서 '판매용' CD를 출반하기도 했다.
KBS향의 첫 CD는 1989년에 처음 등장했는데, 서울음반의 클래식 전문 레이블인 '칸타빌레' 상표를 달고 나온 프로코피에프의 '피터와 늑대'+생상의 '동물의 사육제' 였다. 둘 다 '아동용' 작품인 만큼 나레이터를 전문 성우로 기용했는데, 그 성우란 다름아닌 은철의 메텔 역으로 유명한 송도영 여사였다. 아마 한국 성우 팬들이라면 수집 가치가 충분한 물건이라 생각되지만, 아직까지 중고음반점에서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CD는 그 후속타로 1990년에 발매된 물건인데,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을 구 소련 작곡가 로디온 쉐드린(Rodion Shchedrin, 1932-)이 발레 모음곡으로 개작한 '카르멘 모음곡' 이다.
ⓟ 1990 Seoul Records, Inc.
쉐드린은 2차대전 후에 주로 활동한 소련 작곡가들 중 알프레드 슈니트케와 미치스와프 바인베르크,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갈리나 우스트볼스카야 등과 함께 서방 세계에도 알려진 꽤 드문 인물에 속하는데, 부인이 7년 연상의 발레리나 마야 플리체스카야였다.
아마 그 때문인지 발레 음악도 다섯 편을 남기고 있는데, '카르멘 모음곡' 은 1967년에 만든 작품이다. 어찌 보면 '편곡' 작품임에도 자신있게 작곡가로 이름을 올린 점이 특이한데, 쉐드린 자신은 편곡이 아닌 '재창작' 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선배 쇼스타코비치가 '둘이서 차를' 이라는 뮤지컬 넘버로 만든 관현악 '타히티 트롯' 과 비슷한 사례)
제목 대로 '카르멘' 에서 상당 부분의 주제를 인용하고 있는데, 8번곡 '볼레로' 와 10번곡 '투우사와 카르멘' 에서는 각각 극음악 '아를의 여인' 중 파랑돌과 오페라 '아름다운 퍼스의 처녀' 중 보헤미아 춤곡을 사용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발레 모음곡이지만 편성은 상당히 간소한데, 현악 합주와 타악기 앙상블이 전부다. 다만 타악기 앙상블의 경우에는 요구하고 있는 악기가 상당히 다양해서 네 명의 주자들이 스무 가지도 넘는 악기를 필요로 하고 있고. 하지만 그렇게 따져도 중극장 규모의 공연장에 있는 오케스트라 피트에도 딱 알맞을 것 같은 조촐함을 자랑한다.
아마 그 '경제적' 편성과 현대적인 편곡 때문인지 서방 세계에서도 비교적 자주 연주되고 있는데, 심지어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도 BGM으로 쓰는 것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고. 하지만 이 곡이 유명해지기까지는 이런저런 태클을 막아내야 했다.
초연부터 말썽이었는데, 작곡된 해였던 1967년에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되었지만 소련 문화성이 탐탁치 않게 여겼는지 극장 측에 공연 중지를 요구했다. 당황한 극장 관계자들은 쉐드린의 작품을 빼고 대신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을 올려야 했는데, 다행히 쇼스타코비치가 나서서 쉐드린을 비호해준 덕분에 다시 정상적인 상연이 진행될 수 있었다.
한국에는 대략 1980년대에 소개된 것으로 생각되는데, 박정희 정권 시대까지도 공산권 국가의 작품 연주와 음반 수입의 금지 조치가 계속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뉴욕 필 내한 공연때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을 지휘한 번스타인이나 카발레프스키 첼로 협주곡을 연주한 정명화 등 몇 가지 예외 사례는 있었지만)
해금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과감히 선곡한 것이었는데, 이전 CD의 프로코피에프와 생상도 비교적 소규모 관현악 작품인 만큼 이 선곡에서도 편성이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 듯 하다. 금난새의 책을 보면 그 당시 KBS향의 기량에 맞추기 위해 고심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현악 합주와 타악기 앙상블이라는 편성이 적합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세션은 1989년 2월 2일에 KBS 서울 본사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는데, PD와 엔지니어는 각각 독일인 게오르크 세틀러와 (아마 불가리아인) 니콜라이 난체프가 맡았다. 이 둘의 이름을 주목해야 될 필요가 있는데, 이들은 약 1년 전에 이미 금난새와 알고 지내던 인물들이었다.
금난새는 1988년에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의 일환으로 진행된 '유러피언 마스터즈 오케스트라' 의 내한공연을 지휘했는데, 그 중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한 실황이 서울음반에서 2년 뒤 CD로 나왔었다. 그 때 녹음을 맡은 인물이 게오르크 세틀러였는데, 금난새 책에는 '본업은 변호사지만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던 인물' 이라고 되어 있다. 바이올린 외에도 녹음 기술까지 익히고 있었던 모양이었는데, 그래서 PD로 기용된 것 같고.
난체프의 경우에는 '유러피언...' 의 악장이었는데, 저 악단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동유럽을 중심으로 한 각지의 오케스트라 수석 혹은 부수석 주자들이 결성한 '올스타' 현악 합주단이었다. 아마 그 인연으로 엔지니어를 맡은 것 같은데, 다만 전문 기술을 요하는 엔지니어 직책을 어떻게 바이올리니스트가 맡을 수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선곡이나 기획 면에서 상당히 의욕적인 물건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초기 작업물에 늘상 따르는 갖가지 시행 착오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현악 합주는 느린 악구에서는 물론 나름대로 빼어난 연주를 들려주고는 있지만, 템포가 빠르거나 리듬이 복잡한 부분에서는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녹음도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 이었던 디지털 녹음이지만, 12번곡 '예언' 의 초반부에서는 기계 이상인지 테이프 불량인지 커다란 잡음이 살짝 들어가 있다. 세션이 단 하루였기 때문에 재녹음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판단되는데, 차라리 예산을 좀 더 들여서 이틀 정도로 잡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게다가 미니멀리즘 디자인을 예견케 하는, 뭔가 부족해 보이는 커버 아트도 그렇고. OTL
금난새와 KBS향의 스튜디오 녹음은 이것으로 종료됐는데, 그 이후에 나온 CD들은 실황녹음으로 만든 것들이었다. 1991년의 신년음악회와 교포 성악가들을 초빙해 공연한 '세계한민족초청음악회' 두 장이었는데, 오히려 금난새의 주요 녹음 세션은 외국-특히 러시아-에서 활발히 진행됐다.
내가 아는 한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녹음해 발매한 서울음반 CD만도 차이코프스키와 하이든, 모차르트 작품이 담긴 것들이 네 장 있었는데, 서울음반과의 녹음이 주춤해질 즈음이었던 1990년대 중반에는 삼성전자의 나이세스에서도 녹음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IMF 등으로 인해 잠시 주춤해 있다가 '자신의' 오케스트라인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이후 녹음을 다시 시작했는데, 현재 레코드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금난새의 CD들은 모두 유라시안 필과의 '신녹음' 이다.
서울음반과 나이세스에서 나왔던 CD들은 모두 폐반되어 있는데, 기껏해야 중고음반점에서 가끔씩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것들이 한두 장 나올 뿐이다. 이 CD도 명동의 '부루의 뜨락' 에서 단돈 3000원을 주고 구입한 거였는데, 어떤 대답이 나올 지는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떠보기 위해' "이거 왜 이렇게 싸죠?" 라고 물어봤을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일부 애호가들과 전공자들에게는 각각 '상업성에 의지하는',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인물로 까이는 일이 많은 지휘자가 금난새인데, 내 생각으로는 그런 면에서 어쩔 수 없이 까인다고 쳐도 1990년대의 '클래식 CD 벤처 지휘자' 로서의 면모는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것이 비록 실패로 돌아갔다고 해도 말이다.
어쨌든 저 CD를 왜 샀는지 궁금해할 사람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뭐, 뭐 그렇다고 마음에 들어서 사는건 아냐! 그, 그냥 싸서 주서온거 뿐이라니깐!! 착각하지마!!